책리뷰, <같이 꿈을 꾸고 싶다> 코스맥스, 이경수 지음
“그거 못 보던 건데, 어느 브랜드 거야?”
“기미를 옅게 해준다고 해서 사봤는데 일단 사용감은 좋아. 잡티 신경쓰이면 이거 완전 강추!”
“오, 신기한데 기미 쿠션이라니?”
“난 이거 5년째 쓰고 있어. 인생 파데(파운데이션)여서 그냥 이걸로 쭉 가려고.”
“그거 비싼거 아냐? 난 올영(올리브영) 세일 때 이걸로 바꿔봤는데 가성비 갑이야. 올영 1위 쿠션이래. 난 당분간 이걸로 정착.”
세 명의 여성이 각자의 제품을 품평하는 사이 잠자코 듣고만 있던 여성이 가방을 뒤적이기 시작한다. 그러자 누군가가 묻는다.
“그런데 너 화장품 회사 다니잖아. 너희 회사에선 쿠션 안만들어?”
가방에서 막 파우치를 꺼낸 여성은 테이블에 놓인 쿠션들을 차례차례 바라보며 무심하게 대답한다.
“이거 다 우리 회사에서 만든거야.” (28~29쪽)
세상에는 경쟁사가 없는 회사도 있다. 오직 동반자만 있다고 믿기 힘든 주장을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경쟁사의 도전을 받는 회사나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과연 믿을만한 이야기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마지막 대사 중에 언급된 우리 회사는 바로 세계의 뷰티 플랫폼이 된 화장품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전문기업, 코스맥스다.
1994년에 창업해 만 30년만인 2024년 연매출 3조원 신화를 달성한 히든 챔피언, 코스맥스가 이경수회장과 함께 자신의 서사를 기록한 책, <같이 꿈을 꾸고 싶다>를 출간했다.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은 장치산업이다. 제조회사들이 자신들의 생산설비를 가지고는 만들 수 없는 제품을, 특화된 설비를 보유한 업체에 외주를 맡겨 생산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사업을 시작했던 이경수 회장은 끊임없는 혁신으로 진화해왔다. 단순 외주 생산에서 ODM, 즉 신제품의 기획단계부터 참여해 개발자체를 고객사와 함께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때론 OBM(Orininal Branding Manufacturing)까지 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슬기롭게 섭렵한, 코스맥스는 급기야 세계의 모든 화장품 기업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뷰티 플랫폼으로서 세상의 한복판에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이를 방증하는 사건이 2023년에 벌어졌다. 한권의 책이 영문으로 출간된 것이다. <팬데믹 이후 세계의 한류: BTS, 코스맥스, 오징어게임 The Korean Wave in a Post-Pandemic World: BTS, Cosmax and Squid Game>, 이 책은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신건철교수와 뉴욕주립대학교 마크 D, 휘태커(Mark D. Whitaker)교수의 공저로 출간됐다. (42쪽)
BTS나 오징어게임이 한류에 미친, 그리고 미칠 영향에 대해 우리가 더 이상 왈가왈부할 여지가 있을까? 그런데 여기 코스맥스는 어떻게 이슈의 중심에 서게 된걸까? 다음이 그 대답이다.
“코스맥스는 수십년간 한국의 (화장품)연구개발 및 생산 전문회사로서 보이지 않는 (한류) 세계화의 정점에 있었다. 혁신적인 기술력과 품질을 보유한 코스맥스가 한국 화장품의 글로벌 시장을 넓히며 지금의 K-뷰티 열풍을 설계했다” (44쪽)
25년 전인 2000년 한해 동안 나는 코스맥스 영업맨이었다. 화장품이 OEM 영업을 위해 브랜드 회사를 대상으로 영업을 한 것이다. 한국화장품, 도도화장품, 코리아나 등 마지막으로 맡았던 일은 일본 화장품 업체 시세이도에서 수입된 제품의 라벨을 붙이는 것이었다. 일본의 시세이도같은 세계적 화장품 기업이, OEM제조는 맡기지 않고 그런 허드렛일만 맡기던 시절이었다.
당시의 에피소드 하나. 내가 잠실의 ‘코코상사’라는 작은 회사도 맡고 있었는데, 코스맥스가 연매출 몇 백억대로 성장(그래봐야 지금 매출의 100백분의 1밖에 안되지만) 하면서 OEM제조가 차일피일 미뤄지는 것이었다. 최소주문생산량에 전혀 못 미치는 물량이다보니 품질을 포기하기 어려웠던 ‘코코상사’ 사장님은 영업사원인 내게 제발 빨리 좀 생산해달라고 매일 독촉 전화를 해대는 것이었다.
영업회의 때 사장님(지금의 이경수 회장)께 말씀드렸더니 그날 오전 당장 나를 데리고 친히 그 업체, ‘코코상사’를 방문했던 적이 있다.
오늘날의 코스맥스는 그런 회장의 초심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50억개에 육박하는 제품을 국내는 물론, 해외 거의 모든 국가에 수출하는 화장품업계의 거인이 된 코스맥스는 현재 뿐 아니라 미래가 기대되는 기업이 됐다. 소비자들의 눈에는 드러나지 않은 코스맥스는 한눈 팔지 않고 오로지 고객사들의 판매와 매출, 그리고 한걸음 더 들어가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는 제품에만 신경을 쓴 것이다. 사업다각화나 소비자들 상대하는 BtoC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결과가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코스맥스와 이경수회장의 업적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이유는, 코스맥스라는 기업이 화장품 산업의 발전과 진화, 규모의 성장을 따라간 기업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그 변화를 선두에서 이끌었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직원들의 가슴에 코스맥스라는 기업에 대한 애사심을 너머 충성심과 코스맥스 DNA를 간직할 수 있도록 한 것 또한 넉넉한 사내복지와 임원들의 세심한 배려뿐만이 아니었던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 된다.
중국직원 800명이 상해의 코스맥스 차이나 공장 내부에서 두 달이 넘는 기간 숙식은 물론, 제품 개발과 납기를 맞춰가며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한 장면에서는 단순한 감동을 너머 무엇이 저들에게 저런 에너지와 로얄티를 갖게 했을까 생각하게 된다.
여기에 뇌과학 원리가 등장하는 대목은 참고할만하다. “뇌과학 원리를 조직관리에 적용하는 뉴로리더십(neuroleadership)분야 선구자인 데이비드 록David Rock박사는 신경과학 기반의 프레임워크를 개발해 발표했다. Status 지위, Certainty 확실성, Autonomy 자율성, Relatedness 관계성, Fairness 공정성의 다섯 가지 요소로 구성된 것이 바로 SCARF 모델이다.” (178~179쪽) 이 다섯 가지를 염두에 두고 조직관리를 하게 되면 만사불여튼튼이라는 것인데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코스맥스 매출의 60퍼센트는 해외에서 발생한다. 다국적 기업이 된 것을 의미한다. 다양한 민족과 인종, 그리고 문화로 이루어진 조직의 구성원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성과를 낼 수 있는 기업이 된 것이다. 프레임워크 SCARF모델을 비롯한 다양한 시도를 통해 각국의 임직원들을 대우해야 통합적 시너지를 낼 수 있게 된다.
책을 통해 한류에 기여한 다양한 요소들이 있지만, 코스맥스가 그 저변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K-뷰티를 이끌었다는 놀라운 뉴스를 알게 되었다. 또한, 책을 읽다보면 화장품의 발전사를 한눈에 조감할 수 있다. 그리고 테슬라와 같은 최첨단 기업들이 자신들의 특허나 노하우를 공개하는 것처럼 코스맥스도 자신의 제조법과 모든 노하우를 공개해 화장품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으며, 더 나은 제조법을 끊임없이 연구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그리고 무슨 일에서건 어떻게 하면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비법을 알게 되는 것은 덤이다. 노력은 열심히 하는데 방황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