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은 날카롭고 희망은 견고하니
행복은 하늘에 달렸다

2021년 10월 나무(11화)

by 정태산이높다하되

몸이 크고 몸빛은 암갈색을 띠며 부리 밑 부분은 노란색, 목은 길고 다리는 짧으며, 몸무게는 1.5~4킬로그램쯤 된다. 곡물의 종자를 먹이로 하는 새, 위키백과에 소개된 기러기에 관한 내용이다. 전 세계 14종이 서식하고 있다는 기러기, 나는 2012년 어느 날 기러기 15번째 종이 되었다.


나무

1년 반만에, 애들레이드의 집에 와서 처음 한 일은, 앞마당에서 추정컨데는 100여 년의 수령을 자랑하고 있던 두 그루의 나무를 제거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읍참마속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가옥의 안전을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아름드리나무 두 그루는 호주에서 가장 흔한 상록교목(Cedar tree)체리나무(lilly pilly tree)였다.

집을 완전히 가리고 있는 체리나무, 그 바로 뒤엔 상록교목인 세다 트리가 보인다


상록교목인 세다 트리는 호주에서 가장 흔한 사철나무고, 체리나무인 릴리 필리 트리는 식용 가능한 열매를 맺는 과실수이면서 넓고 푸른 잎사귀를 자랑한다. 이 나무 두 그루는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 주어 고마운 나무들이었다. 반대로 겨울엔 집에 그늘을 드리워 해가 드는 것을 방해하니 야속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하찮은 이유 때문에 이 집안의 큰 어른과도 같은 나무들을 제거하기로 결정한 것은 아니다.


나무를 제거하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는 간절기에 부는 강풍 때문이었다. 사람 몸통만큼 두꺼운 육중한 가지가 시속 100킬로미터 이상의 강한 바람에 쩍쩍 갈라지면서 앞마당에 떨어지는 일이 몇 회 발생했다. 아내는 간담이 서늘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커다란 가지가 지붕이나 창문 방향으로 떨어지게 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강풍에 쓰러지는 나무가 담벼락을 부수는 일은 이곳 애들레이드에서 종종 있는 일이었다.


나는 일단, 수목 재배가로 번역되는 Arborist를 찾아 연락했다. 그랜트 Grant라는 전문가가 우리 집에 와서 두 그루의 나무를 보더니 잘라내지 않으면 위험할 수도 있다고 충고하면서 견적을 주고 갔다. 잘라내고 잔여물까지 모두 제거하는데 이틀이 소요된다고 했다. 비용은 무려 호주달러 3,800불이었다. 이틀 일하는 것 치치고는 과하게 비싼 거 아니냐고 했더니 나무를 제거하는 일은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고 또, 매우 위험하다고도 하면서 한 푼도 깎아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랜트에게 일을 그랜트Grant(?)할 수 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Cedar나무가 오벨리스크처럼 변했다

몇 주 뒤, 약속한 날짜에 그가 동료와 도착했다. 작업은 2인 1조로 이루어졌다. 워낙 굵은 데다가 높이 또한 30미터 이상 되는 대형 나무여서 잘라내는 과정은 매우 섬세하고도 체계적인 공정을 필요로 했다. 톱이 달린 긴 장대를 이용해 늘어진 얇은 가지들을 잘라내는 일이 먼저다. 그리고 나면 한 명은 로프를 나무에 연결해 안전장치를 한 다음, 암벽 등반하듯이 나무에 오른다. 그래서 맨 꼭대기부터 아주 조금씩 조심스럽게 잘라 내려온다.


높이 있는 가지들을 잘라내기 위해서는 일단 잘라낼 가지의 중간쯤을 로프로 묶은 다음 다른 한쪽의 로프를 밑에 있는 가지에 묶는다. 그래야 가지가 땅에 바로 떨어지지 않고 다른 가지에 걸려서 혹시나 발생할 사고를 막는다.


하루 종일 걸려서 한그루의 나무를 제거했다. 나무가 속절없이 깎이는 모습은 왠지 서글퍼 보였다. 우리 집을 상징하던 아름드리나무가 모두 사라진다는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일까.



나무와 딸기

여름이 되는 12월이 되면, 체리나무에 꽃이 피고 꿀벌들이 찾아들었다. 그중에 한 마리가 길을 잃고 뒷마당으로 들어오는 일은 늘 있는 일이었다. 우리의 반려묘, 딸기가 우리집에 입양된 첫해의 여름, 딸기는 멋모르고 벌한테 달려들어 장난을 치다가 입을 쏘인 적이 있었다 -2017년(6화) 참고-. 대형사고였다. 하마터면 딸기는 그때 죽을 뻔했던 것이다. 당시 치명적인 사고로 토사곽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딸기는 동물병원에 하룻밤 입원을 해야 했다. 그 아픈 추억을 안겨준 장본인이 알고 보면 체리나무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이라 나는 즐겁게 회상하곤 한다.


이젠 그 체리나무의 꽃과 열매도, 꿀벌들도 볼 일이 없어졌다. 새들도 놀이터가 없어진 우리 집에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안전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자연의 이웃들을 내쫓게 되었다.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걸 알지만, 나는 이런 상황이 매우 불편하다. 바람과 나무와 별, 그리고 새와 벌은 모두 자연의 일부면서 전부다. 우리 집만 인공물이다. 그런데 그 인공물인 우리 집 때문에 나무와 벌과 새가 모두 갈 곳을 잃었다는 자책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무와 에미 할머니

앞마당 나무 두 그루를 보면서 떠오르는 추억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2018년 12월 말에 우리 집에 도착한 한 장의 엽서에서 시작된다.

봉투에 찍힌 소인(post mark), 2018년 12월 11일에 영국에서 에미 할머기나 2.25파운드(한화 약 3,700원)를 지불하고 보냈다


엽서의 원본

다음은 위 엽서의 내용을 읽기 편하게 다시 적고, 내가 나름대로 해석을 해보았다.


"Dear Inga & Michael

So another year has passed and we are still around. I had my 95th birhday lately. A very nice family party, and now with 4 great grand children, in age of 3 months to 7 years. I had a very nice visit of Niels not long ago on one of his flying visits. We have had the most wonderful autumn with lovely colours, but it has now turned cold with night frost, we are from a very cold winter!

With Love and best wishes


from Emmy

Hope you are keeping well.


인자와 마이클에게

그래서 또 이렇게 한 해가 지났군요,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 살아있고요. 나는 최근에 95번째 생일을 맞이했어요. 아주 훌륭한 가족 파티를, 3달부터 7살이 된 4명의 증손주들과 함께 했어요. 그리고 그리 접때 니엘이 비행기를 타고 나를 방문하러 왔었지요. 우리는 아주 사랑스러운 때깔을 보여주는 가장 놀라운 가을을 보냈어요. 그렇지만 얼어붙는 밤이 오는 혹독한 추위가 왔네요. 우린 아주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오.

사랑과 염원을 담아서~


에미로부터

당신들이 건강하기를."


이 엽서의 봉투에는 '마이클 부부에게(Mr.&Mrs. Michael)'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받는 사람 측에 우리 집 주소가 적혀 있었다. 우리가 2014년 봄(한국은 가을)에 이 집으로 이사를 했으니까 아마도 엽서를 보낸 95세의 에미 할머니는 약 4~5년 만에 친지였던 마이클 부부에게 안부를 전하고자 엽서를 썼던 것으로 추정된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가 이사 오기 전, 이 집에 살았던 노부부는 이미 이 세상 분들이 아니었다. 부동산 사장의 전언에 따르면, 상속을 받게 된 자녀가 이 집을 경매로 내놨다고 했다.

2018년 12월 마지막 주의 어느 날, 딸아이는 우편함에 있던 엽서를 내게 보여주었다. 엽서의 겉봉을 면밀히 살펴 본 결과, 사적인 사연이 담긴 안부 편지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보낸 이의 주소가 적혀 있지 않아 반송이 불가능했다. 소인을 보니, 영국에서 보낸 것이었다. 날짜가 찍혀 있고, 엘리자베스 여왕의 옆모습이 보였다. 봉투는 풀칠이 되어 있지 않고 덮개가 그냥 안쪽으로 접혀 있었다.

한참을 엽서에 담긴 몇 줄 안 되는 내용을 읽고 또 읽었다. 나는 뒤늦게 행간에 담긴 의미를 발견하게 됐고, 그분들을 기억하고 있을, 앞마당에서 수십 년의 시차를 두고 에미와 인자와 마이클이 우리집에서 있던 시절과 나와 내 딸이 엽서를 읽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을 나무 두 그루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답장을 하고 싶었지만 에미 할머니는 본인의 주소를 적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일부러 적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엽서를 받을 노부부가 아직 생존해 있다면 그들이 에미 할머니의 주소를 모를 리 없기 때문에 반갑게 엽서를 읽어본 후, 에미 할머니가 받아볼 수 있도록 답장을 하게 됐을 것이고, 엽서를 보내고 나서 그녀에게 한동안 답장이 오지 않는 일이 생긴다면 할머니는 '그러려니'하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지 짐작해 보게 되었다.


엠마 할머니와 마이클 부부가 젊은 시절 이 집에서 단란한 한 때를 보냈을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두 그루의 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는 것이었다. 20세기 초였다면 1~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해 유럽의 국민들 대부분이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었다. 19세기 초, 영국이 특별히 자발적으로 이주하고자 하는 자국민들을 위해 개발된 도시가 애들레이드였다고 한다. 이주의 물결은 세계대전 즈음에는 매우 가속화 되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이 일제시대, 만주와 연해주, 심지어는 동유럽까지 이주해야 했던 시절과 맥이 닿는다. 지구위의 인생은 모두 연결되어 있는 법이다.


친인척이 한 가족처럼 지내던 100년 전 대가족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노인의 짧은 몇 줄의 안부는 마이클 부부에게만 전달된 것이 아니라, 나의 눈과 귀와 마음을 통해 다른 민족과 세대에게도 전달되고 있었다.


엽서를 받은지도 벌써 3년이 흘렀다.

에미 할머니는 아직 살아계실까.


나무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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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했던 나무(좌)가 사라지고 앙상한 전봇대와 전선들(우)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