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도 인생도 기세氣勢다

핸디 조정기(87)

by 정태산이높다하되

1등 후유증

흐름을 잘 타야 한다. 오전부터 35도 넘는 더위가 시작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해는 뜨겁고 발걸음도 채의 헤드도 무겁게 느껴졌다. 2주 전, 클럽 경기에서 하루 걸러 2등과 1등을 했던 그 한 주는 지난 두어 달 동안 훈련한 결과를 확인하는 날들이었다.


과하게 집중을 했던 것 같다. 1등을 한 뒤 긴장이 풀린 나머지 오늘은 게임이 잘 풀리지 않았다. 덥기도 했고, 동반자와의 해프닝도 있었기 때문에 집중력이 뚝 떨어진 탓도 있으리라.


그래도 내 핸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기본은 한 것이다. 드라이버 샷과 아이언이 나름 유효하게 일을 했다. 결국 그린 주변의 플레이가 스코어를 결정한다. 3 퍼트가 서너 번 나오고 어프로치 실수가 두어 번 나오면 스코어는 90타 가까이 된다.


내리막 오르막, 좌우를 확인하는 작업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그린 위에서 너무 많이 얼쩡거리면 동반자들 중 불만을 표시하는 이도 있다. 나도 다른 동반자가 너무 왔다 갔다 하며 시간을 끌면 불편하다. 골프는 매너다. 불만을 표시하기보다는 웃으면서 충고하는 형태를 취하면 서로 기분 상하지 않고 플레이할 수 있다.


골프는 매너 운동

오늘의 멤버는 나와 친구가 된 싱가포르 사람, 줄리안이라는 친구와 배관공(plumber) 릭,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이민 왔다는 자칭 부호(富豪), 트레보, 이렇게 세 명이었다.


트레보라는 양반은 전기카트를 자가로 소유하고 있었다. 이렇게 더운 날은 전기 카트를 타고 다니면 골프 칠 맛이 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걷지 않게 되니까 운동은 안 되는 단점이 있다. 여기서는 골프를 하는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걷기 운동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없는 농담이긴 하지만 줄리안이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를 좋게 만들었다. 릭과 트레보가 웃으면서 줄리안의 농담을 받아주었고, 끝까지 즐겁게 라운딩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줄리안에게 실망하게 되었다. 나와 스코어링 파트너가 된 그는, 타수를 한 타 두타씩 자꾸 속이는 것이었다. 더블 보기를 보기로, 트리플이 분명한데도 보기나 더블을 했다고 말했다.

이런 톱밥 위에 공이 떨어져 있으면 낭패다

나는 두 말하지 않고 그의 말대로 스코어를 입력했다. 골프는 매너 운동이다. 본인이 자신의 스코어를 정확하게 기록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스스로에게 페널티를 부과하고 실수를 받아들이며 동반자의 게임도 눈여겨보아야 하는 운동이 골프다.


나는 어차피 몇 주 뒤면 한국으로 돌아갔다가 한참 뒤에나 올 것이기 때문에 그와 사소한 일로 언쟁을 벌일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스코어를 다시 세기에는 시간도 모자랐다. 그냥 그가 부르는 데로 스코어를 기입했다.


하지만 다른 동반자, 릭과 트레보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나를 보고 미소를 짓거나 고개를 좌우로 돌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우리 동양인에 대한 신뢰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서, 쥴리 -줄리안Julian을 줄여서 줄리Juli로 부른다- 가 부르는 데로 기입은 하면서도 나는 반드시 되물었다.


“Juli, are you sure you hole out in 5th shot only in this hole?, 쥴리, 이 홀에서 5번 만에 홀 아웃한 거 확실해, 아까 나무 밑에서 한번 더 친 것도 포함한 거지?" 그러면 그는 다시 카운팅을 하는 시늉을 한다. "티샷 했고, 세컨드이 나무 밑이었고, 써드 샷을 레이업 했고, 등등" 그러면서 "다섯 번 친 거 맞아"할 때도 있었고, "아 더블보기네 6야 6." 하는 것이었다.


나는 쥴리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여기 로컬 사람들하고 할 때는 더 정확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해야 해, 괜히 망신당하면 안 되니까."


이곳 클럽의 토박이들은 깐깐하다. 우리 동양인들에게 지는 것도 아주 싫어한다. 그래서 나는 매우 정확하게 정직하게 타수를 카운팅 해야 하고 페널티나 여타 룰이 헷갈릴 땐 무조건 동반자들에게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퍼팅은 목탁 치듯이?

생각보다 잘 되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동반자에게 미안하다 보니 쥴리에게 "솔직해야 한다. 정직해야 한다. 타수를 헤아릴 때엔 어떤 채로 쳤는지 기억하면 된다. 드라이버 한번 우드 한번 웨지 샷 두 번 퍼터 몇 번 등등" 몇 홀 남겨두고 충고랍시고 몇 마디 했더니 잘 되던 내 플레이에 제동이 걸렸다.

6홀을 더블보기, 퍼팅과 어프로치의 실수 탓이다


퍼팅과 어프로치 실수가 이어졌고, 스테이블 포드 점수는 36점이 기본인데, 35점을 얻는데 그쳤다. 내 핸디에서 1 오버를 친 것이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점수였다. 그러나 1등을 한 후유증인가.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퍼팅 노하우, 해가 쨍쨍한 날이었다. 이런 날은 그린이 매우 빠르다. 임진한 코치가 퍼팅은 목탁 치듯이 톡톡 쳐야 한다고 했는데, 내 생각엔 10미터 이상 되는 거리는 그렇게 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짧은 거리 또는 내리막에서 하는 퍼팅은 손목의 힘을 빼고 -그렇지만 견고하게 잡고- 오른쪽 어깨로 민다고 생각하면 빠른 그린에서는 공의 롤링이 좋아진다. 임진한 코치의 명언 중엔 “내 느낌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삶이든 골프든 내 느낌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