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습관의 동물
갑작스러운 폭염 속에서 라운딩을 하면서 영화 <핀치>를 생각했다. 영화 속 도시의 외부 기온은 섭씨 100도, 톰 행크스는 우주복을 입고, 중장비 트럭을 운전해 폐허가 된 거리를 누빈다.
대형 트럭을 몰고 나선 이유는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역시 폐허가 된 마트에서 혹시 남아있을지 모르는 통조림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적막에 따르는 공포는 먼지에 쌓인 건물들 틈을 비집고 밀려드는 토네이도가 집어삼킨다.
섭씨 40도
10시 28분에 시작된 라운딩은 2시가 넘어서야 18홀 그린 위에서 마무리됐다. 기온이 절정에 이른 시간대였다. 바람이 불었지만 열풍이었고 햇빛은 강렬했다.
애들레이드에 드디어 불청객, 염천(炎天)이 찾아든 것이다. 첫 티샷은 나쁘지 않았지만 시원한 타격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가뿐한 회전이 잘 안 됐다. 정립이 안된 스윙 동작은 홀을 거듭할수록 자꾸 흐트러졌다.
5개 홀에서 더블보기, 1개 홀 트리플, 파는 6개, 버디가 1개,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내 핸디에서 2개를 오버한 것이니 그렇게 아쉬운 라운딩은 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더워져서 체조를 하지 않았더니 스윙 감각이 뚝 떨어졌다. 특히 아이언 샷이 중구난방으로 흩어져서 숏게임에 의존해야 했던 라운딩이었다.
몸통 회전을 소홀히 했더니 회전이 어색해진 것이다. 임진한 프로가 말했다.
"평소에 하지 않는 몸동작이라서 꾸준히 골반을 돌리는 체조를 해줘야 합니다."
동반 플레이어들
피지오(Physiologist)가 직업인 에머슨이란 친구는 핸디캡이 10이었다. 근육질의 거구였는데 확실히 거리가 남달랐다.
아이언 티샷이 내 드라이버 샷보다도 멀리 나갔다. 유쾌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의 소유자로 라운딩 성적도 매우 훌륭했다. 이렇게 찌는 날씨에도 자신의 핸디보다 4타를 줄였으니 오늘 6 오버를 한 것이다.
그다음은 나와 친구가 된 요양보호사 줄리언, 그는 새롭게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직은 흔들리는 샷이 많았지만 롱게임은 확실히 좋아지고 있었다.
이제 드라이버나 롱 아이언 샷은 안정감 있게 할 수 있는 듯 보였다. 그의 핸디는 20 언저리니까 자칫 방심하면 아직은 100타를 훌쩍 넘게 칠 수도 있는 실력이다.
골프는 멘털이 90퍼센트
17번 홀에서 버디가 나왔다. 16번 홀에서 버디가 될 뻔한 퍼팅 샷이 홀을 맞고 튕겨 나오는 불운을 겪고 난 다음 홀이었다. 오늘도 퍼팅은 자신 있었다. 홀을 살짝 스치거나 들어갔다가 돌아 나오는 퍼팅이 여러 번 있어서 아쉽긴 했지만 위협적인 퍼팅이 여럿 있었다.
버디 한방이 꽤 기분을 끌어올린다. 그것도 10미터쯤 되는 롱 퍼팅이었다. 미리 머릿속에서 상상한 라인을 타고 홀컵을 찾아 들어가는 작은 공의 구름을 보고 있노라면 황홀할 지경이다.
골프는 미소를 지으며 해야 한다. 화를 내거나 실망하면 게임을 망치기 십상이다. 긍정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지나간 샷은 잘 된 샷이든 못된 샷이든 과거다. 잊어야 한다.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샷은 다음 샷이니까.
습관의 결과
핀치는 오랜 기간 토네이도가 위협하자 자신의 아지트를 떠나기로 작정한다. 자신이 개발한 로봇, 제프와 강아지 굿이어, 그리고 바구니를 이고 운반하는 로봇과 함께 골든게이트 브릿지가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출발한다.
여러 날 트럭을 타고 달린 핀치 일행은 나비가 날아다닐 정도로 안전하고 쾌적한 장소에서 파라솔을 펴고 의자에 앉아 최후의 만찬을 한다.
가장 아끼는 아이보리 색 양복과 중절모를 쓰고, 제프와 어느 모녀가 남긴 강아지와 함께 파라솔 밑에 앉은 핀치는 자신의 삶이 지구의 운명처럼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음을 알고 있다.
상징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핀치가 공을 던지고, 굿이어가 물어오기를 몇 차례, 그는 제프에게 공을 던지게 한다. 이젠 제프가 굿이어와 놀아줘야 하니까. 제프가 공을 던져도 핀치에게 공을 가져오는 굿이어! 그때 핀치는 말한다. “Dogs are creatures of habit! 개는 습관의 동물이야.”
상실과 허무가 영화가 제공하는 주된 정서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뚜렷하다. 의미가 있든 없든 삶은 습관적으로 계속된다는 것이다. 정작 습관의 피조물은 인간이었다. 그러니 핀치는 외치는 것이다. 지구를 망치고 있는 인간들이여 제발 잘못된 습관을 중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