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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태산이높다하되 Feb 25. 2022

책, 그 존재 이유

리뷰, <말하는 보르헤스>를 읽고

읽다 보면 책도 책 나름이지요. 쉽게 읽히는 책도 있지만 아무리 되풀이 읽어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책도 있으니까요. 저자가 자신의 지적 유희를 위해 만연체를 하염없이 늘어놓은 경우, 책이 그저 자기 만족적인 기획의 일환인 경우, 또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나열하느라 애만 쓴 경우도 만나게 됩니다. 그러다가 여러 번 읽을수록, 때마다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경우, 비로소 책은 높은 가치와 미학적 완성도를 갖춘 보물이 되지요.


어느 박사님이 '어려운 책을 좋아할 거 같아서 선물한다'는 덕담과 함께 제게 건넨 책은 <말하는 보르헤스>! 칭찬인지 격려인지, 아무튼 어리둥절해하며 받아 책장에 고이 모셔두고 있다가 지난 주말 저녁에야 펼쳐보게 됐습니다. 역시 책은 읽지 않더라도 보관하고 있어야 되네요. 막상 읽어보니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다만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더라고요. 여러 번 탐독할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말하는 보르헤스>는 친절한 책입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는 것도 많고 그 깊이도 커다란 마을의 우물만큼 되는 것 같아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말입니다.


책은 1부와 2부로, 각 부는 5개와 7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더라고요. 철학자와 시인, 소설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이 동서고금을 망라하고 나옵니다. 작은 책에 어떻게 그 많은 것들을 함축적으로 담았는지 보르헤스가 아르헨티나, 아니 라틴 아메리카의 대표적인 지성이라고 하더니만 정말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1부의 타이틀이 책 제목과 같은 '말하는 보르헤스'인데요. 을 비롯해 불멸, 스베덴보리, 탐정소설, 시간 등 다섯 가지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읽다 보면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되요. 이상하게 흥미진진하다니까요. 그리고 2부 '7일 밤'에서는 단테의 <신곡>과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또 불교와 꿈, 그리고 시(詩) 등 저 같은 독자가 문학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주제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보르헤스는 놀라운 통찰력을 발휘해 어려운 주제를 쉽고 재미있게 들려주는 재주도 있습니다.


보르헤스는 첫 번째 챕터부터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책의 기원에 대해 두 가지를 말하는데요. 첫째로 책(or 글)이라는 것이 원래가 말의 대체재로 출발했다는 거지요. 글로 뭔가를 남기는 일이 무언가 위대한 행위라고 인식된 것은 얼마 안 된 일이라는거예요. 소설(novel)이라는 장르도 불과 몇 백 년 밖에는 안된다고 말하면서요. 소설은 그야말로 새로운 이야기인 거였네요. 그러고 보니 2천5백 년도 더 된 이야기, 호머의 <일리아드>는 시입니다. 장편 대서사.


"책을 숭배하는 우리와 달리 책을 다루는 고대의 개념에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그들은 항상 책에 적힌 문자를 입에서 나오는 말의 대용품으로 생각했습니다.(17쪽)"라고 말하지만, 동양에서 <코란>과 <성경>을 창조해내면서부터는 책을 성스러운 어떤 것으로 여기게 됐다네요.


그리고 괴테와 빅토르 위고, 또 세르반테스를 위대한 저자로 소개하지만 보르헤스는 한편으로 우려를 표하지요. 책이 자칫 성스럽고 어려우며 때로는 한도 끝도 없는 노력을 기울여야 독파가 가능한, 넘어야 하는 장벽 또는 하나의 과제처럼 여기게 될 수 도 있으니까요. 그런 상황은 미연에 방지해야 하니까 보르헤스는 독자들을 위해 몽테뉴의 말을 인용합니다. "나는 즐거움이 없는 일은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22쪽)"


책을 읽는 것은 행복을 위한 행위고 그런데 행복은 노력을 과하게 요구하는 일이어서는 곤란하다는 말도 합니다. 또, 책은 기억하기 위해 읽는 것이라고하는데요. 그런데 기억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투입 -노력- 하면서 읽어야 한다기보다는, 읽다 보면 저절로 기억에 남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 좋은 책이 아닌가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책에 대한 두번째 개념으로 "책이 곧 하나님의 작품(19쪽)"일 수도 있다는 말을 합니다. 이것은 버나드 쇼가 "여러 번 읽을 가치가 있는 모든 책은 성령이 썼다고 할 수 있지요."라고 한 것과 통하는 얘기인데요. 이를 두고 보르헤스는 "작가의 의도는 틀릴 수도 있는 가련한 인간의 산물이지만, 책에는 그 이상의 것이 있어야 한다.(18쪽)"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위대한 정신과 중요한 가치가 사라지지 않고 유전된다면 그것이 인간의 불멸을 설명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보르헤스는 말하고 있습니다. 또 17세기 스웨덴 사람, 스베덴 보리 얘기를 듣다보니 실사구시나 경세치용을 부르짖던 정약용으로 대표되는 우리 조선의 실학자들이 생각나더군요. 스베덴 보리가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가 되는 57세부터의 이야기, 즉 천국과 지옥이 균형을 이루어야 하고 인간이 자유의지로 천국이나 지옥을 선택할 수 있다는 대목에 가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에드거 앨런 포가 창시한, '지성을 바탕으로 전개되어야 하는(83쪽)' 탐정소설, 그리고 보르헤스는 같은 강물에 두번다시 발을 담글 수 없다면서 흐르는 강물을 시간에 비유합니다. 심오한 철학적 접근으로 시간을 바라보는데요. 현재는 물론, 미래도 과거도 대표할 수 없음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시간을 규정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변하는 존재이자 변하지 않는 존재"라고 합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말하는 보르헤스>는 좋은 책입니다. 보르헤스가 말한대로 책을 읽고 난후에도 저자의 의도 이상의 무엇인가가 몇 가지 뇌리에 남아 기억할 수 있으니까요.


2부를 읽다가 발견한 인상적인 장면을 소개하겠습니다. 첫째 밤에 소개하는 주제는 단테의 <신곡>입니다. 물론 저는 읽은 적이 없지요. 그런데 보르헤스를 읽다가 '어? 내가 <신곡>은 왜 읽을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자문(自問)을 하게 됐어요. 사브작사브작 읽다 보면, 그러다 보면 어쩌면 기억날 장면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지요. 간접경험이기는 하지만 드디어 보르헤스를 통해 그러한 장면을 만나게 되네요.


단테는 <신곡>의 '지옥'편에서 파올로와 프란체스카가 사랑에 빠지고 파멸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추적하는데요. '이 두 연인이 어떻게 하다가 왜 사랑에 빠졌을까'하는 의문을 품게 됩니다. 의문을 품은 이유는 단테가 "사랑은 우리를 하나의 죽음으로 이끌었습니다.(123쪽)"라는 프란체스카의 말을 발견한 때문이었죠.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왜 그녀는 파올로를 사랑하게 되었을까요.


우리의 해박하고도 지혜로운 보르헤스가 그 단서를 발견합니다. "<신곡> 중 '지옥편'의 다섯 번째 노래에서 영감을 받은 게 틀림없는 이 부분은 1922년 출판된 <황금의 시간>에서 수록된 소네트 중 하나인 '복 받은 영혼'의 첫 구절입니다.(124쪽)" 시는 레오폴드 루고네스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날 오후가 반쯤 지나갔을 때

내가 일상적인 작별의 인사를 하러 갔을 때,

당신을 버려둔다는 막연한 당혹감이

바로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소.(124쪽)


서로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던  연인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한 순간(또는 장면)을 통해서 '사랑'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이고도 내밀한 감정의 실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지옥에서조차 프란체스카는 자신이 선택한 사랑을 거두어 들이지 않습니다.


이어서, <악몽>, <천하루 밤의 이야기>, <불교>, <시>, <카발라>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밤인 7일째 밤에서 보르헤스는 자기 신체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한쪽 눈을 실명했고, 다른 한쪽 눈은 검은색과 붉은색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고백인데요.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그는 자신 스스로에게 외쳤던 말을 소개합니다.


“이제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을 잃어버렸으니, 다른 것을 만들어야 해. 나는 미래를 만들어야 해. 내가 정말로 잃어버린 가시적인 세상을 이어받을 미래를 말이야.(267쪽)"

  

이 책의 제목이 <말하는 보르헤스>가 된 이유가 있었네요. 그는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의 강의를 책으로 엮은 것이 바로 제 앞에 놓인 <말하는 보르헤스>가 된 겁니다. 이 책은 해박한 지식과 지혜의 넓디넓은 지평, 그리고 끊임없는 사색을 돕는 일종의 촉진제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사람  사람이 보르헤스가 보기에는  권의 책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요. 과연 각각의 사람들은 타인에게 어떤 책으로 읽힐까요.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저절로 기억에 남는 사람' 되면 좋겠습니다.


snake leg: 글자들이 책 속에 누워있잖아요. 누군가 펼쳐서 읽지 않는 한 그것들은 자고 있거나 죽은 것이라는 이 말은, "스크립타 마넨트, 베르바 볼란트 Scripta manent, verba volant. '입에서 나온 말에는 날개가 있지만 글로 쓰인 말은 그대로 있다.'"라는 말에 대한 보르헤스의 해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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