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 위너
애나 위너 & 유대인
"내가 유대계인 줄 어떻게 알았을까 의아했지만, 어찌 보면 충분히 알아차릴 법도 했다. 큰 매부리코에 만화 캐릭터처럼 툭 튀어나온 눈, 안경에 닿을 만큼 긴 속눈썹이 영락없이 유대인이었으니까. 또 나는 그의 말마따나 관능적인 유대인의 후손답게 몸이 굴곡지기도 했다.(171쪽)"
신간, <언캐니 밸리>의 저자, 애나 위너의 자기자신에 대한 자조적 표현이다.
유대인은 3천 년이라는 긴 세월, 디아스포라로 이산의 고통을 겪은 역사를 소유한 민족이다. 고통스러웠던 역사의 정점에는 세계대전 당신 나치의 대학살이 있다.
3천 년 전 몇 평 안 되는 자그마한 지역,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유대민족의 끈질기고도 장구한 생존 투쟁은 수많은 희비극을 낳았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었으며 계산적이었던 그리스인들을 상대로 경제 권력을 위한 투쟁에서 유대민족이 판정승을 거둘 수 있었던 배경은 역시 선민사상을 잉태한 종교의 힘이었다.
주류 무대의 주인공이 되기 힘들었던 주변인 또는 경계인이기도 했던 유대인들은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이익을 위해 로마와 그리스인, 페니키아 인들이 좌시하고 있던 금융 영역의 비즈니스를 파고들었다.
고리대금업과 무역업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 것이다. 현재 미국 방송사와 석유회사 등 굴지의 기간산업과 수많은 셀럽들, 그리고 로스차일드와 같은 상당수 금융 대기업들이 유대인의 지배를 받게 된 배경이다.
영리한 비개발자 & 여성
애나 위너 조상들의 배경을 생각하며 책을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저자의 태생적 생존 스킬을 포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문학을 전공한 후 출판사에 입사하지만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된 세상에서 종이책의 물리적 유통은 당연히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형편없는 급여와 대우에 만족할 수 없었다. 전자책 출판 스타트업에 취직하지만 디지털 지능 부족으로 한계에 부딪힌다. 그런데 이 불쾌한 경험이 종이로 된 책을 만드는 전통적인 출판사에만 있었더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이주, 즉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 실리콘 밸리의 잘 나가는 스타트업으로 옮겨가는데 기여한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사이에는 3시간의 시차가 존재한다. 애나의 이러한 도전은 어쩌면 먼 조상들의 디아스포라 시절에 생성됐을 노매드 DNA가 작동한 결과였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러한 선택이 과연 그녀를 행복한 삶으로 이끌었을까?
20대 남성들이 주축이 된 조직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소프트웨어 하나로 벼락부자가 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조직에서 주변인일 수밖에 없는 비개발자로 일하는 30대 유대인 여성이 겪은 다양한 경험과 깨달음을 기록한 책이 <언캐니 밸리>다.
그래서 이 책에는 마초적 남성 집단의 횡포, 페미니즘, 성 정체성, 마약, 능력주의, 속물근성과 같은, 지금은 불거질 대로 불거져 터지기 일보직전인 자본주의 사회가 가진 병리현상들의 극단적 형태들이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으면서 허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비개발자지만 애나 위너가 지니고 있던 감성지능은 과소평가되고 있었다.
"직원들의 월급과 주식 할당에도 위계질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프로그래밍 언어나 애자일 개발과 달리, 감성지능은 배워서 터득할 수 없음이 이미 입증되었고 인간의 공감능력은 인공지능이 쉽게 넘볼 수 없는 장벽이었음에도 소프트 스킬은 언제나 과소평가되었다.(129쪽)"
그녀가 목격하고 난해해 한 또 다른 결정적 장면은, 창의와 혁신을 자랑하던 젊은 남성 CEO들이 벼락부자가 되자마자 자신들의 창업 정신과는 정반대의 길로 표표히 사라져 가는 것이었다. 저자는 평등과 공정의 대명사로 군림했던 실리콘 밸리라는 곳이 결국, 돈벼락 맞은 괴물들이 새로운 권력을 향해 돌진하는 발판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스타트업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이 유토피아적일 수 없지 않겠느냐는거다.
"실리콘 밸리는 하나의 행동양식이자 사상이었고, 팽창인 동시에 소멸이었으며, 축약된 세계이자 의미심장한 증상이었다. 꿈이었고, 신기루였다. (중략) 샌프란 시스코 전체 노동 인구 가운데 테크 노동자는 약 10퍼센트에 불과했지만 영향력은 그 이상이었다. 집값이 치솟았다. 빈민가의 공동 주택이 사라진 자리에 공실이 남아도는 아파트가 들어섰다.(334)"
공정과 평등, 그리고 투명성 & 유태인
인터넷은 인류가 감당하기엔 너무 거대한 문명의 변화를 몰고 왔다. 불과 20년 만에 모든 사물과 사실, 사건들은 가상현실 속에 갇혀버렸다. 운전을 할 때도 내비게이션만 보고 있자면 차가 알아서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리고 의식주와 관련된 최소한의 물리적 행위들을 제외하면, 우리는 욕구와 필요가 거의 대부분 가상세계에서 충족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정보가 넘치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간단한 것조차 쉽게 선택할 수 없게 된다. 결정장애 decision fatigue를 야기하는 것으로 그친다고 생각하면 순진한 거다. 어렵게 선택한 모든 사람들의 모든 결정들은 중요한 정보가 되어 결국 깔때기가 꽂힌 IT 대기업의 주둥이 속으로 수렴된다. 이것은 돈이 되고 다시 권력으로 이어진다. 빅데이터를 독점한 몇몇 소수의 기업들이 권력기관과 거리를 유지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카카오나 네이버의 성장과정에서 불거졌던 스캔들을 상기해보면 된다. 디지털 공룡기업 또는 디지털 독재자라는 새로운 형태의 지배권력이 탄생하게 되는 배경이다.
4차 혁명의 시대에도 결국, 공정과 평등, 그리고 투명성은 기대난망이다. 권력과 금융은 집중적으로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기업과 개인들에게 쏠릴 것이 뻔하니까.
"나는 옳다는 느낌을 좋아했다. 나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감각을 사랑했다. 하지만 행복하고 싶기도 했다. 또 가능하다면, 내가 의미 있다고 느끼는 나만의 삶을 찾고 싶었다.(376쪽)"
애나 위너의 이 말이 책의 주제이자 결론이다. 그녀는 한두해 근무한 회사에서 스톡옵션을 행사해 2억 원가량의 돈을 손에 쥘 수 있었고, 회사를 그만두고 홀로서기를 한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유대인이었고, 실리콘 밸리의 스타트업에서는 그림자와도 같았던 비개발자, 애나 위너는 그렇게 출판업계에서, 그리고 이 시대의 신데렐라가 된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그녀의 경험이 가진 특이점 외에 유대인이라는 종교적 인종적 배경이 그녀의 성공에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았을까?
초겨울 연못이 얼지 못하도록 헤엄쳐 보지만 한겨울 꽁꽁 언 빙판을 두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오리처럼, 애나 위너의 이 책도 가상현실의 시대로 가는 삭막한 경로 상에서 반짝 하고 사라질 반딧불 쯤 될 듯 하다. 위트와 유머, 솔직함을 담고 있는 자전적 에세이가 이만큼이나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기는 쉽지 않았을테니까.
유대 여성들의 인류애와 페미니즘에 대한 의문
자신의 외모가 유대인의 전형이라고 자조적으로 고백했던 이유는,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던 한 프로그래머가 저자에게 다가와 함부로 내뱉은 말때문이었다. "나는 유대계 여자들이랑 잘 맞더라고. 다들 어찌나 관능적인지." 이러한 성희롱적 발언에 대해 그녀는 혼잣말로 자신에 대해 묘사한 뒤 이렇게 마무리한다. "나는 유대인들은 교육을 아주 중요시한다는 말을 웅얼거렸다.(171쪽)" 이 에세이의 추전자 중 한명인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든다>의 저자, 리베카 솔닛 또한 유대인이다. men과 explain의 합성어, mensplain이라는 조어가 이 책에서 유래했다.
이러한 유대 여성들의 섬세하고도 감성적인 에세이 행렬이 왜 자신들의 조국에 속해 있는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으로 가는 길목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