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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태산이높다하되 Mar 13. 2022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오이디푸스 왕 & EMDR

2천 년도 훨씬 더 전에 테베에서 한 왕자가 태어난다. 그런데 왕 라이오스와 왕비 이오카스테는 그들의 아들인 이 왕자가 부친을 살해하게 된다는 끔찍한 내용의 신탁을 받게 된다. 그래서 부하를 시켜 갓 태어난 아들을 숲으로 데리고 가서 죽이라고 명령한다.


부하는 갓난아기를 차마 죽일 수 없어 이웃나라 코린토스의 목동에게 넘긴다. 아들은 그 나라의 왕가에 입양된다. 코린토스의 왕자가 된 그 아들도 성년이 되면서 자신이 부친을 살해하고 모친과 결혼하게 된다는 내용의 신탁을 받게 된다. 양부모를 친부모로 알고 있던 왕자는 급기야 코린토스를 떠나 테베를 여행하게 된다.


여행하던 중 한 노인을 만나게 되고 왕자는 그 노인을 죽이게 된다. 왕자는 테베의 골칫거리 스핑크스를 제거하면서 영웅이 되고 급기야 자신의 조국, 테베의 왕이 된다. 그리고 아리따운 여인을 왕비로 맞게 된다. 아들과 딸을 낳고 선정을 베풀며 행복하게 살게 된다.


그런데 역병이 돌고, 신탁의 내용을 알게 된다. 모친이자 아들의 아내가 된 이오카스테는 목을 맨다. 테베의 왕으로부터 버려졌던 아들은 바로 오이디푸스였다. 자신이 테베를 여행하던 중 살해한 노인은 자신의 친부였고 아내로 맞았던 아리따운 여인은 친모였던 것이다.


이상은 소포클레스의 비극 서사시 <오이디푸스 왕>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문학은 인간 생물학에서 제기되는 심리적 도전에 맞서도록 돕는 서술적 감정적 테크놀로지(26쪽)"라고 하는 주장의 근거로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의 저자 앵거스 플레처가 예시한 작품이다. 아니, 정확히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예시한 작품을 앵거스가 소개한 것이다.


플롯 반전 plot twist

부모와 아들은, 부친을 죽이고 모친과 동침한다는 저주와도 같은 신탁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부모는 갓난아기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즉각 조치를 취한다. 그러나 아이는 이웃나라로 보내져 입양된다. 성장한 아이도 신탁의 내용을 알게 된다. 자신이 친부모로 알고 있던 부부를 떠나 방황한다. 그러다가 우연하게 노인을 살해하게 되고 한 나라의 왕이 되어 미모의 여성과 결혼한다. 노인은 친부였고 미모의 여성은 친모였다.


확장 stretch

플롯 반전은 경이 wonder를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경이는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삶(34쪽)"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러한 반전의 효과는,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은유나 강조를 통해 강화되고 확장된다. 오이디푸스가 영웅으로 완전무결함을 갖춘 인물이 되어야 그의 파국이 드라마틱해진다.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에서 저자는, 문학이 단순한 놀이나 유흥의 한 가지가 아니라 일종의 치유제 또는 정신 고양제와 같은 의학적 기능도 갖춘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주장하며 갖가지 근거를 대고 있다. 카타르시스, 외상 후 두려움, 상처 지연 등등.


지난 9일 제20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통해 우리도 지금 문학이 필요하게 됐다. 반전을 거듭한 결과, 투표를 한 유권자들 중 절반은 윤석렬을, 또 다른 절반은 이재명을 지지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24만 7천 표라는 역대급 최소 표 차이는 커다란 의미를 낳았다. 이러한 우연적이면서도 치명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을까?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람에게는 자신을 지지한 사람 수만큼 반대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낙선한 사람에게는 자신을 반대한 사람 수만큼 지지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 사실은 권력을 쥔 자는 권력의 달콤함 만큼이나 쓴 맛도 함께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권력을 놓친 자에게는 포기나 좌절, 또는 분노 보다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새롭게 들어설 정권에 대한 견제와 협력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통합의 정치를 강조하는 이유다.


이번 선거는 정말 기이한 선거였다. 여당인 민주당에서 내세운 후보를 민주당 국회의원들 상당수가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지적한 언론인이 혼쭐이 나기도 했다. 심지어 민주당의 다른 후보를 지지하던 사람들 일부가 경선에서 이재명으로 후보가 결정되자 그를 떨어뜨리기 위해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하는 사태까지만들었다. 개인에 대한 혐오의 뿌리가 이렇게 깊었던 적이 있었던가? 이것은 언론과 기자, 일부 정치모리배들의 조직적이고도 섬세한 기획과 연출의 결과라고  수밖에 없다.


언론은 시종일관 혐오와 비호감을 강조하고 조장하며 후보들의 표정과 행위만 보도했다. 공약을 꼼꼼히 보도한 언론은 없었다. 청년 배당, 65세 연금개시 전 소득 진공 기간 동안 백만 원 지급, 코로나19 방역 기간 소상공인들의 손실 100퍼센트 보상, 무담보 무신용 천만 원 대출 등 소득 취약계층들을 타깃으로 하는 공약들은 전혀 언론에서 다루지 않았다. 이런 공약들은 당선자가 받아들이면 좋겠다. 공약은 저작권도 없다니까.


모친과 동침해 아들 둘과 딸 둘을 두게 된 오이디푸스는 아내이자 모친의 브로치로 자신의 눈을 찌른다. 그러나 브로치로 마음의 눈까지 찌를 수는 없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오이디푸스를 향해 코러스가 노래한다. "우리는 당신의 고통을 이해합니다. 그것은 재앙 중의 재앙입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45쪽)"

koros 즉 '코러스 chrorus'라는 열두 명의 배우가 구호를 연호하며 몸을 흔들며 오이디푸스를 위로했다. "그리스 비극의 경우, 춤을 추는 공간이 굉장히 넓었다. 직경이 20미터 넘는 반원형의 야외극장 바닥이 그들의 무대였다.(41쪽)" 


양쪽 무대를 좌우로 번갈아 가며 보는 것과 책을 펼치고 좌우로 눈을 움직이며 읽는 것, 모두 현대의학에서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 eye movement desensitizing and reprocessing, EMDR>이라는 트라우마 치료법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EMDR은 미국 정신의학협회와 세계 보건 기구, 재향군인회 등에서 공식적으로 추천되고 있다고 한다. 눈을 좌우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상처가 치료된다고 하는데 2천 년도 훨씬 전 시인들은 문학을 공연을 통해 소개하면서 당시의 사람들을 치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이디푸스도 이오카스테도 잘 못한 일은 없다. 그러나 잘 못 되어버렸다. 비극은 그래서 두렵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이다. 이재명도 잘 못한 것이 없다. 이재명 지지자들도 잘 못한 것이 없다. 그래서 더욱 고통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고통은 이재명이 당선됐어도 내외부의 갈등으로 심했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지금이 민주당에서 제대로 일하지 않고 무임승차하려고 했던 인간들을 솎아낼 수 있는 좋은 기회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안구를 좌우로 움직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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