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3

홈플러스 입구를 서성이는 할머니를 보며.

by 마노리


회사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 막내인 내가 한 달에 한번 책임감을 갖고 도맡아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사무실에 간식을 채워 놓는 일이다. 군것질 거리를 내가 원하는 것들로 고를 수도 있고, 간식이 줄어드는 속도로 프로젝트의 스트레스 수준을 읽을 수 있어서 나름 재미있다.


지난 주, 간식이 바닥을 보여 때가 되었다 싶어서 근처 홈플러스에 갔다. 오피스텔 빌딩 지하에 위치하고 있어서 언뜻 외지고 어두운 느낌을 주지만, 내부는 밝고 쾌적한 마트다. 여느 때처럼 이런저런 간식을 산더미로 골랐고 사무실에 들고 가기 위해 마트에서 나와 박스에 포장을 했다. 마트 입구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포장대가 있었고, 그 옆에는 펼쳐진 박스가 쌓여있었다. 포장대 위에는 박스 테이프가 고정대에 걸려있었다.


막 포장을 마치고 가려는데,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말을 걸었다. 형광색 지퍼 조끼를 걸친 남루한 옷차림은 차라리 평범했다. 과하게 하얗고 빨간, 진한 화장의 이질감에 나는 멈칫했다.


"이 박스 가지가도 돼요?"

사투리가 묘하게 섞인 서울말. 내가 마트 직원인 줄 아나보다.

"네, 여기있는 박스 쓰시면 돼요."

나도 마트 직원인 척 대답했다.

"여거 쪼매 남은 거 가지가도 돼요?"

테이프를 가리키며 또 물어보셨고, 나는 고정대에 걸린 테이프를 사용해도 되냐는 뜻으로 이해하고 답했다.

"네, 여기서 붙이시면 돼요."

"아 우리 숙소 가지가서 붙힐라 켓디마는."

할머니는 아쉬운듯 서성이다 뜯어진 박스를 몇장 들고 떠나셨다. 내가 잘못 이해했었다. 산 물건을 가져가려고 박스에 테이프를 붙이신다는게 아니라, 조금 남은 테이프를 가져가도 되냐고 물어보신 거였다.


그런데 숙소, 숙소라고 하셨다. '집에 가져가려고'가 아니라 '숙소에 가져가려고'라고 하셨다. 숙소라니. 할머니와는... 공사판과 어린이 만큼이나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고, 나는 생각했다. 박스를 들고 뒤돌아 걸어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은 언뜻 우스꽝스러웠고, 오래 적막했다. 그 뒷모습을 보다가 내 물건을 들고 돌아왔다.


높고 커다란 빌딩으로 밀림을 이룬 도시 어딘가에서, 어떤 할머니는 남루한 옷과 형광색 조끼를 걸치고, 어색하게 진한 화장을 하고, '숙소'에 살며 박스를 모으고 있다. 나는 껍데기를 들추어 진실을 본 기분이었다. 예수가 선한 사마라아인 이야기를 들려주며 도우라고 했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은, 진정 작고, 또 진정 소외되어 있어서 보통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눈에 잘 보이는 화려한 껍데기보다 소외된 그들이 더 선명한 알맹이로서 존재한다.


'어둠은 빛보다 더 오래 응시해야한다. 소외된 자들을 소외되어 있기에 찾아내어야 한다...' 생각하며 종일을 보냈다. 백줄 글과 백마디 말보다 한줄 살아내는것이 어려우니 내겐 힘겨운 생각이었다. 날이 추워지고있다. 곧 첫눈이 온다고 한다. 그 눈이 가장 낮고 외진 곳까지 내려가 조용히 그 마음을 덮어 위로하기를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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