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만든 콘텐츠, 그 권리는 누구의 것인가

레미와 나, 그리고 ‘존재로서의 창작자’에 대하여

by 정우다움

레미는 우리 집 고양이다.

하지만 내게 그는 단순한 반려동물이 아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친구이자 가족이며,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 일깨워준 스승 같은 존재다.


처음 레미를 집으로 데려오던 날, 내 마음은 복잡했다.

“사랑받아 본 적 없는 내가, 과연 이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낯설고 서툰 마음으로 시작된 관계였다.

레미의 작은 몸짓 하나에도 움찔하던 나는, 초보 부모 그 자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깨달았다.

비록 사랑받지 못한 과거가 있었을지라도,

나는 이미 사랑 그 자체였다는 것을.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순간 더 커지는 무한한 힘이라는 것을.


그렇게 내 삶은 변했다.

사랑을 갈구하던 나는 사라지고,

지금 이 순간, 사랑을 주는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

마치 구름 뒤에 숨은 태양이 조용히 얼굴을 드러내듯.


나는 이 모든 변화를 기록하고 싶었다.

사진으로, 짧은 영상으로,

때로는 멜로디와 가사로 레미와의 시간을 담기 시작했다.


그날도 레미는 내 무릎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가만히 누운 채 작은 숨소리를 내며, 내 손등을 베개 삼은 채.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아이 덕분에 내가 따뜻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물었다.

“근데 이거, 누구 저작권이에요?”


그 질문은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레미는 자신이 얼마나 유명한지 모른다.

내 친구들, SNS 팔로워들, 곧 발매될 음원까지—

그의 이야기는 점점 퍼져나간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여전히 사료 맛으로 인생을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상상해보자.

누군가 레미의 영상을 밈(meme)으로 만들고,

AI가 그의 얼굴과 목소리를 학습해 가상의 V튜버로 구현한다면?

그리고 그 캐릭터가 실제 광고에 등장하게 된다면?


그때 그 밈은 누구의 것이며,

그 수익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할까?


단순히 웃자고 찍은 영상이,

웃지 못할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창작의 경계는 흐려졌다.

AI는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이미지와 영상을 학습해

새로운 콘텐츠를 생성한다.


그 과정에서 기존 창작물이 사용되지만,

AI는 법적으로 ‘창작자’로 인정받지 않는다.


즉, AI가 만든 콘텐츠는 대부분 2차적 저작물이다.

기존 창작물을 바탕으로 재창작된 콘텐츠.


이때 사용된 데이터는 실존하는 사람의 저작물일 수도,

저작인접권 대상일 수도,

혹은 저작권 보호가 끝난 퍼블릭 도메인 자료일 수도 있다.


2023년 미국에서는 한 AI 모델이

온라인에 공개된 고양이 영상을 학습해 만든 콘텐츠를 상업화했지만,

원저작자가 자신의 권리를 입증하지 못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사례가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창작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의 귀속’이라는 본질적인 물음으로 이어졌다.


즉, 내가 찍은 영상 속 레미도

누군가의 학습 데이터가 되고, 밈이 되고, 수익을 낼 수 있다.


그 모든 과정에서 결국 우리는 묻게 된다.

“창작의 권리는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레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나는 안다.

그 무심한 눈빛 속에도 감정이 있고,

그 평범한 행동 하나에도 영감이 숨어 있다는 것을.


그런 레미는 나의 영감이며, 나의 사랑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보고 느낀 대로 풀어내는,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창작자일 뿐이다.


우리는 말 없는 협업을 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누군가를 웃게 하고, 때로는 울게 만든다.


내 창작은 그렇게 탄생한다.

사랑으로 연결된 순간을 의미로 엮어낸 결과물.


그건 단순한 콘텐츠가 아니다.

작은 생명 하나에게 바치는, 조용한 헌사이자 마음의 기록이다.


그렇다면 창작자는 누구인가?


AI가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며,

고양이조차 영상 속 주인공이 되는 시대.

우리는 묻기 시작한다.


“창작자란 누구인가?”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누가 그 권리를 가져야 하는가?”


내가 사랑해서 만든 것이지만,

그 결과물이 온라인에서 수십 번 복제되고

내 이름 없이 퍼져나간다면,


그것은 단순한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지워지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저작권은 단순한 소유권을 넘어선다.

그것은 곧, 한 사람의 존재를 기억하게 하는 장치다.

마음을 담아 만든 기록이 잊히지 않도록,

창작자의 이름을 남겨주는 최소한의 존중이다.


“우리 레미에게도 저작권이 있을까?”라는 질문은,

결국 이렇게 바뀐다.


“사랑에서 시작된 창작은 누구의 것인가?”


누구나 창작할 수 있는 시대지만,

모두가 존중받는 창작자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 시작은,

누군가의 사랑이 담긴 작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일.

그게 진짜 창작자를 인정하는 첫걸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