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돈가스
그 음식의 시작
2. 돈가스
돈가스를 처음 접한 건? 당연히 텔레비전에서 먼저다. 선남선녀들이 카페나 식당에서 먹는 돈가스라는 걸 드라마에서 보면서도 별생각이 없었다. 내게 고기란? 그저 한 달에 한 번쯤 돌아오는 제사상에 올리는 돼지고기 수육이 다였다. 허여 멀 건하게 삶긴 돼지고기 수육을 난 싫어했다. 매번 돌아오는 제사의 번거로움도 싫었고, 젓가락질 다툼도 싫었다. 허옇게 삶아져서 올라가는 건 돼지고기뿐만이 아니다. 닭고기도 있다. 한 달에 한 번쯤 돌아오는 제사, 결국 제사는 고기 먹는 날이었다. 대신 평일엔 고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저 푸른 초원 위의 밥상이었다. 경쟁이라기는 웃기지만, 어릴 적 형제가 많은 집은 많은 것에서 내 몫을 지켜야 한다. 귤을 한 박스 사 오면 우리는 각자 몫으로 나눴는데, 먼저 먹으나 나중에 먹으나 매 한 가지였다. 천천히 아껴먹으면 결국 오빠나 언니들에게 뺏기기 일쑤였고, 그렇다고 후다닥 걸신들린 듯 먹기도 싫었다.
결국, 그거다. 젓가락질과 번잡함. 아예 먹질 않으니 맛도 모르니 아쉬울 것도 없었다. 그냥 조용히 아무도 젓가락질하지 않는 고사리에 숙주나물이나 먹고 있는 게 평화로웠다.
그러다가!!!
중3 졸업식 날이었다. 친구들과 시내에 나가 밥을 먹기로 했다. 졸업으로 인해 조금은 넉넉해진 주머니 사정으로, 한 아이가 시내의 경양식집에 가자는 거다. 주로 우리는 떡볶이나 라면, 순대 등을 사 먹는 게 다였다. 그리 비싸지 않은 경양식집이지만, 내겐 신세계였다. 경양식집에 가 본 적이 없는 건 나뿐이었다.
“어떤 수프를 원하십니까?”
“고기는 레어, 미듐?”
하이틴 로맨스와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서 나왔던 장면들이 뇌리를 스쳤다. 어쩌지. 손에 땀이 베였다. 그러나 개뿔!!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내 앞엔 커다란 접시와 후추가 점점이 뿌려진 희멀건 수프가 도착했다. 맛은? 황홀했다. 사실 맛을 평가하긴 어렵다. 먹어봤어야 어디랑 비교를 하지.
그 날 내가 느낀 건, 오롯이 나를 위해 나온 한 접시의 음식,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고 아이들과 웃고 떠들며 먹을 수 있는 여유, 내 몫을 사수하지 않아도 됨을 전쟁이 아닌 평화 속에 음식을 먹게 된 기쁨이었다.
그 후 오랫동안 돈가스를 즐겨 먹었다. 친구들과 조카들과 내 아이와 그렇게.
이제 조금은 촌스럽다고 느껴지는 경양식 돈가스지만, 내 마음에는 그때 그 시절의 돈가스는 미슐랭 가이드 별 다섯 개다.
음식에 추억이 깃들면 늙은 거라더라. 나 또한 자꾸만 과거의 음식들에 대해 맛보다는 추억의 깊이로 적셔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