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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성장 Nov 11. 2023

암시

타인에게서 타인에게로 전해진 믿음과 생각

 수많은 아이스크림 상자를 싣고 달리는 낡은 냉동 트럭 안 조수석. 어린 나는 그곳에 앉아 아버지의 말에 귀 기울이곤 했다. 아버지를 유난히 좋아했던 어린 나는 조수석에 앉아, 일하시는 아버지를 따라다녔다. 아이스크림 도매업을 하셨던 아버지는 슈퍼마켓 주인과 아이스크림 납품 가격을 놓고 10원 단위로 흥정하시고는 했는데, 차 안에서 작은 돈, 10원의 소중함과 삶의 치열함에 대해 말씀해주시곤 했다. 그때가 6살, 7살 정도였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했던 대화내용을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아버지는 차에서 보이는 세상의 모습을 교육의 도구로 삼으시려는 듯했다. 아니, 그보다는 본인이 그동안 자연과 사람을 관찰하며 스스로 깨우친 인생의 교훈을 나에게 전해주시려 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추운 겨울, 아버지와 나는 한 어린 나무를 보았다. 그 나무의 기둥은 담요 같은 지푸라기로 꽁꽁 싸매어져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나무토막 지지대가 어린 나무가 쓰러지지 않게 지탱해주고 있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지금은 엄마 아빠가 너를 저 어린나무처럼 지탱해 주고, 보호하고 있지만 때가 되면 이 모든 보호막을 거둘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넌 오히려 보호막 때문에 더 크게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너도 때가 되면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어린 나는 지지대로 보호를 받고 있는 나무를 보며 나를 위한 엄마 아빠의 보호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묘한 긴장감과 어린아이 치고는 제법 비장함까지 느꼈던 것 같다.


 "너는 아주 강한 아이야" 아버지는 나에게 이런 말씀을 자주 해주셨다. "너는 의지가 강해서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너는 승부욕이 강하고 집중력이 강한 아이야." 그때는 아버지의 말은 전부 진리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이런 긍정적인 믿음과 확신은 마치 내 미래를 미리 보고 오신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나에 대한 믿음이 실린 아버지의 말씀을 몇 시간 듣고 냉동차에서 내릴 때면, 나는 정말 더 강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어느새 나는 어린 나를 태우고 운전하시던 그 당시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다. 몇 개월 전  한 심리 전문가의 강연을 들었는데 무의식과 암시와 관련된 강연이었다. 그 심리 전문가는 5살에서 7살 사이의 아이의 뇌에서는 성인이 눈을 감고 최면상태에 빠질 때 나오는 알파파가 계속 나온다고 했다. 이어서 전문가는 말했다. "그 나이에 아이에게 전달된 부모의 암시는 무의식에 깊이 새겨집니다. 그리고 피그말리온 효과로 무의식에 깊이 자리 잡은 그 암시의 내용이 현실이 되곤 합니다."


 아버지가 나에게 준 암시처럼 내가 정말 의지가 강하고 훌륭한 사람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삶을 살아오면서 주저앉고 싶었던 순간, 삶의 정상 궤도를 크게 이탈해 버릴 뻔한 순간마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고, 바로 잡아준 것은 아버지가 심어주신 나에 대한 그 믿음이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나에게 건 최면이 아직도 유효한 것이다. 나 또한 아이를 양육하게 된다면 아버지에게 받은 이 긍정적인 암시를 유산처럼 물려주고 싶다.


 이쯤에서 의문이 생긴다. 아버지는 그러한 암시를 누구로부터 받은 것일까? 내가 아는 한 아버지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하셨다. 아버지는 오히려 부정적이고 냉혹한 암시를 들으며 성장기를 보내신 분이었다.

그 심리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암시의 고리를 깨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부모의 부정적인 암시의 고리를 깼다?
그는 대단한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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