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전하고픈 책
어느덧 나이 마흔에 접어들면서 부모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집어 들었던 책이 "아버지를 찾아서"다. 나는 저자가 아버지를 찾아 나선 여정에 동행하여 나의 아버지도 찾을 수 있었으면 하고 희망을 걸어보았다. 내가 어려서 엄마와 아빠는 헤어졌고 나는 엄마와 살았기 때문에 내게 아버지는 늘 비현실적인 존재였다. 어려서는 외면하고 살았던 아버지였는데 나이들고 내 아이들을 키우면서 점점 더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를 찾아서'라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을 마음에 설레였다.
저자는 아버지의 사진 필름을 통해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간다. 전직 기자였던 저자는 아버지의 모든 사진 필름을 인화하고 수첩에 적힌 메모를 해석하며 아버지는 어떤 분이었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아버지가 찍은 시위 사진을 보면서 사회현상에 대한 관심을 두고 살았던 한 시민으로서의 아버지를 발견하였고 평범한 일상을 차곡차곡 장면으로 모아 보물처럼 정리해둔 아버지의 사진들을 통해 아버지가 빚어간 소소한 행복에 미소지었다.
하지만 내게는 아버지와 찍은 어린 모습의 내 사진이 한 장조차 없다.
왜냐하면 내가 열 살도 되지않았던 어느 날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아버지가 찍힌 모든 사진을 옥상에서 태워 버렸기 때문이었다. 한때의 나의 어리석음으로 나에게 더이상 아버지와 함께 찍힌 사진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지만, 나는 아버지를 미워하며 흘려보냈던 시간들마저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아버지가 남겨준 메모지가 있다.
철이 조금 들어서 미움보다는 그리운 마음이 커져버린 아버지에게 가죽 장갑 한 켤레를 소포로 부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로 부터 장갑 한 켤레를 선물 받았었다.
거기에 작은 메모가 포함되어 있었다.
'네 마음을 받은 것 같아 너무나 고맙구나."
생전 처음으로 받은 아버지의 글씨였다. 저자도 태어난 날의 수첩 페이지에서 ‘저녁 때’ 또는 ‘하오 11시 41분 혹은 42분경’ 이라는 메모에 주목한다. 단지, 몇 날 며칠 몇 분경이라는 메모만으로도 부모가 된 아버지의 부정이 충분히 느껴진다. 만일 이 날의 내용이 빈 칸이었다면, 또는 수첩 속의 기록을 저자가 발견하지 못했다면 어찌 아버지의 사랑을 가늠하였을지 만무하다.
나는 아버지의 한 줄 메모 속에서 아버지가 얼마나 나에게 미안해하고 있는지를 느꼈다. 그리고 한 줄 메시지를 쓰기 위해 한참을 망설이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이 책의 클라이막스는 단연 저자가 아버지를 만나는 장면이다.
저자는 젊은 아버지의 수첩 안에 적혀있는 시간과 장소가 적힌 메모를 따라 똑같은 여정의 통영 여행을 떠난다. 강산도 여러 번 변한 세월이 흘렀기에 아버지가 머물렀던 기차역은 폐역이 되었다. 저자는 잠시 그곳에 앉아 쉬게 되는데, 뜻밖에도 아버지와 마주친다. 30대의 아버지가 50대의 아들 어깨에 손을 얹으며 "힘드네?"라고 말을 건넨 것이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꺼이꺼이 목놓아 울었다.
나는 저자에게 빙의하여 내 아버지를 만나는 상상을 하였다. 나의 경우는 아버지가 앉아계시고 내가 다가갔다는 것이 달랐다. 나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를 많이 그리워했어요. 단 한번도 표현한 적은 없지만요."
내 나이가 이제 아버지의 나이가 되고, 삶이라는 짐에 힘이 부칠 때마다 내 곁에 아버지가 계셨더라면 좋았을텐데 한스럽기 그지없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아련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있을 지 모르겠다. 기자출신의 저자는 아버지의 사진과 메모를 통해 그리고 아버지가 지나간 여정을 따라가다가 뜻밖에 아버지와 만난다. 이 책으로 인해 나도 내게 남아있는 몇 안되는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어쩌랴. 이제 아버지는 계시지 않으니…
그럼에도 책을 통해서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여정에 함께 했고, 나는 아버지를 만나는 상상을 해보았다.
아버지를 원없이 불러보았다.
오래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이번에는 참지않고 울었다.
아버지의 손글씨로 적은 한 줄 메모지를 참으로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나는 아버지의 미안함을 마음으로 볼 수 있었다.
참 아버지가 더 그리워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