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국관광공사 (경남 밀양 오연정 은행나무)
가을빛이 완연히 내려앉은 밀양 교동 언덕에는 고요한 정자 하나가 서 있다. 바람이 스치면 낙엽이 물결처럼 흔들리고, 오래된 나무 한 그루는 그 자리를 지키듯 묵묵히 하늘을 우러본다.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함께 밀양강의 물결이 은은하게 들려오고, 정자 아래로는 햇살이 느리게 흘러내린다.
여느 여행지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이곳에는 세월을 품은 풍경이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색과 향이 달라지지만, 정자와 나무만은 언제나 같은 자리를 지키며 세월을 말해준다.
시간의 결을 따라 걷다 보면, 이 정원에서 비로소 가을의 본모습을 만날 수 있다.
출처: 국가유산청 (경남 밀양 오연정)
밀양 오연정은 조선 명종 때 문신 추천 손영제가 학문을 닦고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정자다.
그는 퇴계 이황의 제자로서 학문과 덕을 함께 중시했던 인물이며, 예안과 김재, 울산 등 여러 고을의 수령으로 재직했다.
오연정은 처음 세워진 뒤 여러 차례의 화재와 전란으로 소실되었으나, 1936년 후손들의 정성으로 다시 세워졌다.
출처: 국가유산청 (경남 밀양 오연정)
정면 다섯 칸, 측면 두 칸의 구조로 지어진 건물은 온돌방과 대청, 누마루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팔작지붕의 단정한 곡선이 조선 한옥의 품격을 보여준다.
정자 밖에는 ‘오연(鼇淵)’이라 불리는 연못이 자리하고 있다. 과거 기록에 따르면, 연못 주위에는 대나무와 복숭아나무, 그리고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들이 어우러져 사계절의 색을 담았다고 전해진다.
지금의 오연정은 밀성손씨 문중이 관리하며 재실로 사용하고 있다.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채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이곳은 조선 선비의 정신과 풍류가 깃든 공간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경남 밀양 오연정 은행나무)
오연정을 찾는 이들이 가장 먼저 눈길을 멈추는 곳은 정자 앞마당에 서 있는 거대한 은행나무다.
수령 약 800년, 높이 20미터, 둘레 10미터에 달하는 이 나무는 천연기념물 제500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이 나무는 밀양의 마을과 사람들을 지켜보며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켜왔다.
가을이 되면 황금빛 잎사귀가 햇살에 반사되어 주변을 환하게 물들이고, 정자의 고색창연한 기와와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이룬다.
지역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이 나무를 신목처럼 여겨 제례를 지내고 모임을 열어왔으며, 지금도 그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경남 밀양 오연정 은행나무)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10월 말에서 11월 초, 은행잎이 바람에 흩날릴 때면 발걸음을 멈추는 이들이 많다.
금빛 잎이 하늘에서 쏟아지듯 내려앉아 정자와 마당을 뒤덮는 장면은 그 어떤 화려한 단풍 명소보다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오연정의 은행나무는 단순한 경관을 넘어, 생태적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동시에 지닌 존재다.
웅장하면서도 고요한 그 자태는 세월의 깊이를 말해주며, 자연과 건축이 어우러진 밀양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풍경으로 남아 있다.
출처: 국가유산청 (경남 밀양 오연정)
오연정을 둘러본 뒤에는 인근의 용평터널로 발길을 옮겨보는 것도 좋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이 터널은 신호에 따라 한 방향씩 통행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도 현역으로 사용되고 있다.
터널을 통과하면 밀양강을 따라 이어지는 길이 펼쳐지며, 산세와 어우러진 풍경이 드라이브 코스로도 사랑받는다.
오연정 방문객에게 또 하나의 즐거움은 이곳이 누구나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여행지라는 점이다.
주차비와 입장료가 없고, 아래 도로변 공터에 차를 세운 뒤 오르막길을 따라 약 5분 정도 걸으면 정자에 닿을 수 있다.
출처: 국가유산청 (경남 밀양 오연정)
가을 평일의 오연정은 관광객보다 지역 주민이 더 많아 조용한 산책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곳의 매력은 화려한 단풍놀이보다 ‘고요한 시간’을 경험하는 데 있다.
정자 마루에 앉아 밀양강을 바라보면, 천천히 흘러가는 강물 위로 조선의 세월이 겹쳐진다. 그곳에서 오래된 은행나무가 바람에 잎을 흩날리며 속삭이는 듯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밀양 오연정은 가을 한때의 여행지이자, 천년의 세월이 머무는 공간이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에서 바라본 하늘은 유난히 깊고 맑으며,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벗어나기 좋은 쉼의 장소다.
자연과 역사,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가 어우러진 이곳에서, 여행자는 ‘시간의 쉼표’를 만난다. 그것이 바로 밀양 오연정이 전하는 가을의 진정한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