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국관광공사 (전북 익산 나바위성당, 저작권자명 황성훈)
가을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쬐는 들녘 사이로 붉은 벽돌 건물이 고요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에서는 종소리보다 바람이 먼저 이야기를 건네고, 오랜 시간의 흔적이 한 겹씩 쌓여 사람의 마음을 다독인다.
익산의 평야 한가운데 자리한 이 성당은 단지 종교의 상징이 아니라, 한 세기의 세월을 품은 문화유산이다. 누군가는 이곳을 찾은 뒤 마음이 고요해졌다고 말한다.
아마 그 이유는, 이곳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시간이 멈춘 풍경’이기 때문일 것이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전북 익산 나바위성당, 저작권자명 황성훈)
전라북도 익산시 망성면 나바위1길에 자리한 나바위성당은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다.
1845년, 조선의 첫 사제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서품을 받고 귀국하며 황산 나루터에 발을 디딘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초대 주임신부인 베르모렐 요셉(한국명 장약슬)이 중심이 되어 1906년에 공사를 시작했고, 이듬해 성당이 완공되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전북 익산 나바위성당, 저작권자명 황성훈)
설계는 명동성당의 포아넬 신부가 맡았으며, 시공은 중국인 기술자들이 담당했다. 성당의 외관은 서양식 고딕 구조와 한국 전통 목조건축의 조화를 이룬다.
기와지붕 아래 회랑이 둘러져 있어 한국적 정취가 배어 있으며, 낮에는 햇살이 은은히 스며들고 밤에는 팔각형 창문 사이로 불빛이 흘러나와 더욱 아름답다.
1987년 사적으로 지정된 이곳은 단지 신앙의 터전이 아니라, 근대 건축사와 종교사의 교차점이라 할 만하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전북 익산 나바위성당, 저작권자명 황성훈)
본래 ‘화산성당’이라 불리던 이곳은 산의 이름을 따라 명명된 것이었다. ‘화산’이란 이름은 송시열이 이 지역의 절경을 보고 붙인 데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완주군의 화산면과 혼동을 피하기 위해 1989년부터 지금의 이름 ‘나바위성당’으로 불리게 되었다.
나바위성당은 일제강점기에도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신앙을 지켰고, 6·25 전쟁 중에도 미사가 중단되지 않은 유일한 본당이었다.
1900년대 초 신자 수가 수천 명에 달할 만큼 이곳은 이미 호남 천주교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으며, 훗날 군산과 익산의 여러 본당이 이곳에서 분리되어 나갔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전북 익산 나바위성당 망금정)
성당의 뒤편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김대건 신부의 순교 100주년을 기념해 세운 순교비가 눈에 들어온다. 그 옆으로는 ‘망금정’이라 불리는 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이름 그대로 ‘아름다움을 바란다’는 뜻을 지닌 망금정은 1915년 베르모렐 신부가 세운 것으로, 드망즈 주교의 피정을 돕기 위해 지은 곳이다.
화산의 끝자락, 넓은 바위 위에 세워진 이 정자는 주변의 풍경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너럭바위 아래에는 마애삼존불이 새겨져 있다.
어느 여행객은 “가을의 익산 근교를 거닐다 이곳에 오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경건해진다”고 전했다. 작은 성당 하나가 주는 울림이 이토록 크다는 사실이,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전북 익산 나바위성당)
나바위성당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오래된 벽돌 사이로 스며든 세월의 온기, 그리고 회랑을 따라 흘러드는 바람이 전하는 평온함은 다른 어떤 명소보다 진한 감동을 남긴다.
주차 공간과 접근로가 잘 갖춰져 있어 누구나 편히 찾을 수 있으며, 장애인 전용 화장실도 마련되어 있다. 입장료는 없고, 문은 늘 열려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종교인이 아니어도 마음이 맑아지는 경험을 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고요함’이라는 이 장소의 본질 때문이다.
익산의 들녘 속,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이 성당은 오늘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리고 누구든 그 앞에 서면, 묵묵히 세월의 이야기를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