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매마을에서의 작은 기적
3월, 탐매마을은 계절을 앞서 나가는 듯하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홍매화는 뜨거운 약속이라도 한 듯 피어나 마을 곳곳을 수놓는다.
잿빛 하늘 아래, 작은 불씨처럼 붉게 타오르는 꽃들은 봄이 아직 멀었다는 현실을 무색하게 만든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감미로운 매화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담벼락 위로 삐죽이 고개를 내민 홍매화 가지들이 불쑥불쑥 반갑게 손짓한다.
바람이 스치면 꽃잎이 가볍게 떨리고, 마치 속삭이듯 이른 봄의 인사를 건넨다.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것은 벚꽃이 아니라 이 작은 홍매화일지도 모른다.
탐매마을의 골목길은 그 자체로 살아 숨 쉬는 풍경이다. 바람에 실려 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손을 꼭 잡고 꽃을 감상하는 연인들의 속삭임, 카메라를 들고 조심스레 셔터를 누르는 여행자의 설렘이 한데 어우러진다.
이곳에서는 시간조차 한 박자 느리게 흐르는 듯하다.
한참을 걷다 멈춰 서면, 꽃잎이 천천히 바람을 타고 내려앉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마을에서 홍매화는 단순한 꽃이 아니다.
겨울을 견디고, 차가운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피어나는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이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피어난 홍매화처럼, 우리도 그렇게 계절을 건너가고 있는 게 아닐까.
탐매마을의 하루는 바쁘게 흘러가는 도시의 시계와는 다르게, 느리고 고요하다. 그저 꽃을 바라보고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지는 곳.
아직 완연한 봄이 오기 전, 이곳에서는 계절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겨울과 봄 사이, 붉은 꽃들이 가득한 이 마을에서, 시간은 잠시 멈춰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