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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느려지는 여행, 영천 팔공산 은해사로 떠나다

by 트립젠드

한적함 속 깊은 고요
천년 고찰의 가을 산책
팔공산에서 찾는 사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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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관광공사 (경북 영천 팔공산 은해사, 저작권자명 여행노트 김병윤)


사방에서 바람이 느리게 흐르는 길을 걷다 보면 고요가 먼저 말을 걸어오는 순간이 있다. 붉고 노란 잎이 산자락을 타고 흩어질 때, 오래된 건물들이 세월을 머금은 채 숨을 고르고 서 있다.

어딘가에서 은은하게 울리는 목탁 소리는 마음을 다독이며 발걸음을 자연스레 깊은 숲길로 이끈다.

그 길의 끝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장면이 있다. 천년의 시간을 품은 사찰이 올가을의 빛을 조용히 받아내는 풍경이다.


팔공산 자락에 깃든 고찰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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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관광공사 (경북 영천 팔공산 은해사, 저작권자명 여행노트 김병윤)


영천시 청통면 팔공산 기슭에 자리한 은해사는 신라 헌덕왕 시기 해철국사가 창건한 해안사를 모태로 삼은 사찰이다.


당시 정세의 격랑 속에서 희생된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 왕의 참회를 돕고자 세워진 사찰이 훗날 이름을 바꾸어 지금의 은해사가 되었으며, 이곳은 오랜 세월 동안 지역의 중심 사찰로 역할을 다해왔다.


조선시대 본산으로 위상이 높았던 은해사는 미타도량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여러 암자와 말사를 거느려 불교 교육의 요람으로 자리해왔다.

팔공산 자락에 펼쳐진 은빛의 풍경에서 비롯된 ‘은해’라는 이름은 사찰 주변을 감싼 안개와 구름이 바다처럼 겹겹이 일렁이는 모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라의 고승이 “은빛 세상이 층층이 펼쳐진다”라고 표현했을 만큼, 이곳이 품은 자연은 오랜 시간 찾는 이들을 매료시켜 왔다.


소실과 중창을 거듭한 건축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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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관광공사 (경북 영천 팔공산 은해사, 저작권자명 여행노트 김병윤)


은해사는 임진왜란의 전란 속에서도 큰 피해를 피했으나, 19세기 중반 큰 화재를 겪으면서 극락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을 잃었다.


이후 지역과 왕실의 시주가 이어지며 3년여의 불사를 거쳐 다시 가람을 복원해냈다.


이때 세워진 대웅전, 보화루, 향실 등 주요 전각들은 오늘날까지도 사찰의 중요한 골격을 이루며, 특히 대웅전과 보화루에 걸린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중정이 있는 가람 배치 구조는 사찰에 들어서는 순간 시야를 자연스럽게 넓히며 대웅전의 위용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가을이 되면 붉은 단풍과 오래된 목조건물의 색감이 어우러져 세월의 깊이를 한층 더 느끼게 한다.


가을 사찰 여행을 완성하는 체험과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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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관광공사 (경북 영천 팔공산 은해사, 저작권자명 여행노트 김병윤)


은해사는 역사 탐방은 물론 차분한 휴식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 템플스테이를 운영한다. 전 연령 참여가 가능하며 예약이 필수인 1박 프로그램을 통해 고요한 산중에서의 하루를 경험할 수 있다.


사찰 내 성보박물관은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공개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 계절과 관계없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다만 매주 월요일과 명절 연휴에는 문을 닫으므로 방문 전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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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관광공사 (경북 영천 팔공산 은해사, 저작권자명 여행노트 김병윤)


사찰 곳곳에는 대웅전, 보화루, 심검당 등 주요 전각들이 정연하게 자리해 있으며, 경사로와 장애인 화장실 등 편의시설도 갖춰져 있어 누구나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다.

가을빛이 완연해지는 시기, 은해사 일대의 소나무 숲은 300년 가까운 세월을 버텨온 고목들이 줄지어 서 있어 한적한 산책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바람에 실려오는 솔향과 전각 사이로 떨어지는 낙엽들은 사찰 특유의 정적인 분위기와 어우러져 깊은 계절감을 선사한다.


천년 사찰에서 만나는 고요한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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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관광공사 (경북 영천 팔공산 은해사, 저작권자명 여행노트 김병윤)


말사와 암자를 아우르며 지역 불교의 중심 역할을 이어온 은해사는 지금도 수행과 교육, 포교에 힘쓰며 전통을 지켜가고 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머무는 여행을 찾는 시니어 독자에게 이곳은 복잡한 설명이 없어도 자연스레 마음을 느리게 해주는 공간이다.


천년의 시간과 가을의 빛이 한 자리에서 머무는 은해사의 풍경은 조용한 사찰 여행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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