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철쭉)
회색 빌딩 숲 사이를 빠져나와 몇 걸음만 더디게 오르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풍경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높은 산도, 먼 곳도 아니다. 도심 속에 숨은 듯 자리한 그곳에서, 산 전체가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는 장면을 마주하는 순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걸음을 멈춘다.
부산의 백양산은 이름만 들어도 익숙하지만, 봄이 되면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장소다. 4월이 되면 철쭉이 산길을 따라 빼곡히 피어나며, 평범했던 산이 어느새 화려한 봄의 무대가 된다.
그 장면은 누구든 손에 쥔 스마트폰 하나로도 충분히 사진작가가 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접근성’이다. 입장료도 없고, 주차도 무료다.
굳이 긴 여행을 준비하지 않아도, 잠깐의 시간만 내면 만날 수 있는 봄. 그래서 더 많은 이들이, 한 번 다녀온 이들조차도 다시 이곳을 찾는다.
부산진구와 사상구 사이, 금정산맥의 줄기를 따라 이어진 백양산은 높이는 크지 않지만 품은 자연의 깊이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철쭉)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선 도심의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
산길은 비교적 완만하고 잘 정비돼 있어 걷기 편하다.
산행이라는 표현보다 산책에 더 가까운 이 길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며, 등산복 없이도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철쭉이 피는 시기인 4월 말부터 5월 초 사이에는, 분홍빛 꽃잎들이 산 전체를 덮듯이 퍼져나가며 백양산을 또 하나의 계절로 만든다.
사람들은 이 풍경 속에서 ‘부산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은 놀라움을 느끼며, 계절을 가장 가까이서 체감하게 된다.
백양산은 단순히 꽃만 아름다운 곳이 아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철쭉)
이 산의 남쪽 기슭에는 삼국시대 동평현의 치소가 있었던 성터가 남아 있고, 동쪽 자락 아래로는 선암사라는 고즈넉한 사찰이 자리를 잡고 있다.
과거 ‘동래부지(1740)’ 문헌에는 ‘백양산’이라는 이름이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백양사는 금용산에 있었고 지금은 사라졌다’는 기록을 통해 이 산의 이름이 금용산에서 분화되어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백양산이라는 이름에 스며든 역사적 깊이를 보여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산을 오르다 보면 꽃 사이로 보이는 옛 흔적들과, 그 너머로 펼쳐지는 도시의 풍경이 절묘하게 교차된다.
이 길을 걷는다는 건 단순한 봄나들이를 넘어, 시간을 거슬러 걷는 경험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곳의 진가는 ‘일상의 연장선’에서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철쭉)
사람들은 멀리 떠나야만 좋은 풍경을 만날 수 있다고 믿지만, 백양산은 그 생각을 뒤집는다.
복잡한 준비 없이도, 잠시 짬을 내어 찾을 수 있는 이 산에서는 가벼운 봄바람에 흔들리는 철쭉과, 그 사이를 걷는 사람들, 그리고 한가로이 앉아 쉬는 가족들이 만들어내는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입장료도 없고, 주차비도 들지 않는 이곳은 진짜 ‘공짜’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공간이다. 그러나 풍경만큼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봄의 감동을 선물한다.
산을 오르며 숨이 조금 가빠질 때쯤, 시야가 열리고 꽃길이 펼쳐진다.
그 순간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들게 되지만, 결국 가장 오래 남는 건 마음속의 한 장면이다.
다가오는 4월 말, 누군가에게는 반복되는 일상이겠지만, 백양산에 오르는 이들에겐 또 한 번 새로운 봄의 기억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