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런데 위로는 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늘은 위로의 온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위로는 말이 아니라, 온도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사람들은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어 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기의 고통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아주 적절한 온도와, 적절한 언어로 위로의 말을 건네지 못한다면
그 위로는 오히려 초대하지 않은 손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의 위로가 필요할까.
아니면 단지 위로의 말이 필요할까.
만약 고통을 말하고 싶은 마음이 전부라면
AI에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AI는 그럴듯한 위로의 말을 건네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AI는
눈과 코와 귀와 입과 얼굴과 살과 뼈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순수한 언어의 조합에만 기대어 위로를 느끼려 한다면,
그래도 사람의 마음은 어느 정도 치유될까.
그 치유는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벤딩머신에서 나온 음료처럼
위로의 언어가 가슴에 소복소복 떨어지는 풍경을 떠올린다.
사람의 따뜻한 눈빛과 마음이 전해지는 온도,
한 번 손을 잡아주는 감촉이
언어와 함께 사람에게 진실한 위로가 된다면
우리는 더 깊이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나누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어느 때보다 빠르게 발전하며
불확실한 변화 속을 건너는 이 시간에,
원시 시대에 천둥이 칠 때 느꼈던 공포처럼
보이지 않는 공포가 떠돌고 있다.
그 모든 것은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환경 속에 있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해결하며
서로를 돕고 안전하고 평화롭게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위해
우리 스스로를 돌보아야 하지 않을까.
존중과 열린 마음으로
자녀를 지켜보고 응원한다면,
아이가 힘들어할 때
따스한 눈빛과 다정한 손길로
마음을 안아 주는 말을
조용히 건넬 수 있다면,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아이를 준비시키는 일은
부모에게도 분명
보람으로 남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