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계획대로 크지
않아도 괜찮았다

아이의 선택과 성장의 변화

by Jin S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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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아이는 홈스쿨을 마친 뒤,
중학교부터는 공립학교로 돌아가 또 다른 세계를 마주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아이를 이끌기보다,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며 지켜보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홈스쿨을 하던 시절의 나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하루를 계획하고,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한 사람이었다.


더 좋은 환경을 찾고 싶어서 학교를 옮겼고,
아이의 반응을 읽어내려 애썼고,
작은 일에도 민감하게 요동쳤다.


그 시절 나는 정말 바빴다.
아이를 위해서 그랬다고 믿었지만,
어쩌면 그 바쁨 속에는 내 불안이 함께 섞여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학교에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고
아이와 함께 집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선택은 쉽지 않았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은
내가 아이를 가르친 시간이기보다
아이에게서 배운 시간이 더 많았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이름도 묻지 않고
충실히 놀기만 해도 충분하다는 것.


엄마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다툼을 감정으로 해결하지 않고
권리와 설명으로 풀어낸다는 것.


식탁 위에서도
각자의 개성과 필요가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혼자가 아니라는 것.


아이가 자라면서
나는 점점 더 자주
내 마음속에서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왜 저렇게 하지?”
“왜 그렇게까지 양보하지?” “

"왜 그걸 그냥 넘어가?”


밴드부 회장 자리를
스스로 다른 아이에게 양보해 버린 날도 그랬다.


나는 그 자리가 얼마나 귀한 자리인지 알았고,
그걸 대학 원서에 쓰면 얼마나 ‘좋은 스펙’이 되는지도 알았다.


그래서 아이의 선택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말했다.
그 친구가 너무 하고 싶어 했다고.


그 말 앞에서
나는 내 욕심이 얼마나 재빨리 올라오는지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욕심을
아이에게 요구했던 내 마음도.


아이가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생애 첫 차를 샀을 때도 비슷했다.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멋진 새 차였고,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어느 날 식당에서 나오는데
큰 트럭이 바로 옆에서 아이의 차를 긁었다고 했다.
바로 옆에서 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물었다.

“리포트 썼어? 보험 처리해야지.”


아이는 말했다.

“그냥 가라고 했어.”

“왜? 새 차인데!”


아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엄마, 그 사람은 힘들게 살아가는 것 같았어.
부담 주고 싶지 않았어.”


아이는 덧붙였다.

“차는 어차피 언젠가는 다 긁히게 마련이야.
다음에 또 상처 나면 그때 한꺼번에 고치면 돼.”


그 말을 듣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가진 기준은 정확했다.
하지만 아이가 가진 기준은… 조금 더 넓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아이에게 뭔가를 가르치려는 마음이
조금씩 물러나는 것을 느꼈다.


아이가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아이가 나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어느 날엔 멀리서 전화가 왔다.
드물게 화가 난 목소리였다.


나는 한참을 듣고 있다가 말했다.

“그래. 전화 잘했어.
다음에 화나면 또 엄마한테 연락해.”


그러자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지더니

“Yes, I will.” 하고 통화가 끝났다.

그래도 마음을 들어줄 수 있는 엄마여서 다행이었다.


그 순간, 오래된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우리 아이가 어릴 때
회초리를 내게 갖다 주며 했던 말이다.

“엄마, 잘 놔둬.
내가 잘못하면 매매해야 되니까.”


그때는 그저 귀엽고 웃기기만 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엄마라는 자리는
의무와 책임이 참으로 무거운 자리였다.


요즘은 내가 요리하다가 음식을 태우면
아이가 부드럽게 말한다.


“엄마, 난 요리할 땐 요리만 해.”


그 말이 예전에 내가 하던 말과 너무 비슷해서
나는 속으로 웃는다.


“공부할 땐 공부만 해.”


한식과 각종 요리를 독학하던 아이는
요즘엔 더 깊이 요리를 배운다.


그리고 이제는
내게 요리 개인 교습을 해준다.


또 어느 날, 부엌에서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내가 어릴 때는
엄마가 이 세상에서 제일 키 큰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아니네요.


그땐 엄마가 천장 가까운 높은 것도 다 꺼내니까
난 엄마가 정말 키가 큰 줄 알았어요.”


내 머리가 아이의 턱에 닿을 즈음부터
나는 슬금슬금 요리에 자신이 없어지고 있었다.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가 오면
앞치마를 두른 아들이 부엌에 선다.


높은 곳, 낮은 곳을 지휘하며
어느새 한 사람의 셰프처럼 움직인다.


나와 가족들은 감탄사를 터뜨리고
그렇게 우리는 자주 즐거운 디너를 갖게 되었다.


요즘은 내가 해주는 밥상보다 더 자주
아이의 초대 손님이 된다.


나는 점점 더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부모가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좋은 길을 찾아 애써도
아이의 인생은 결국
부모의 계획대로 자라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그렇다고 그 모든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


그 경험들이 오늘의 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동시에 나를 바꾸었다.


아이는 자기 힘으로 자기 길을 찾아가고,
나는 그 길을 대신 만들어주기보다
조급해하지 않고 옆에서 지켜보는 법을 배웠다.


부모의 계획대로 크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아이의 삶을 응원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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