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2
아이를 키우는 스무고개
아이가 처음 헤비메탈을 크게 틀어놓았던 날이 있었다.
나는 그 음악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차 안에서 아무 말 없이 함께 들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소리가 언젠가
내가 스스로 찾아 듣게 될 줄은.
탯줄이 끊어지는 순간,,
우리는 아이를 얻는 동시에
서서히 보내기 시작한다.
그 이후의 모든 시간은
아이가 자기 길을 찾는 과정이고,
부모는 그 곁에서 배우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품 안에 있을 때는
“내 아이, 내 책임”이라는 생각에 몰두한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며
부모와 다른 결을 드러내기 시작할 때
우리는 깨닫는다.
분명 바깥의 어떤 접촉이 있었음을.
태권도로 주니어 블랙벨트까지 갔다가
고등학교에 들어서며
주짓수, 레슬링, MMA, 무에타이에 더 깊이 마음을 두었다.
지금도 그는 주짓수를 성실히 이어가고 있다.
그 순간들 어딘가에
줄탁동시처럼 안팎에서 동시에 두드리는
어떤 울림이 있었을 것이다.
그 울림이 취향이 되었고
길이 되었을 것이다.
음악도 그랬다.
헤비메탈과 데스 메탈의 열렬한 팬이 되어
주 경계를 넘나들며 콘서트를 다녔다.
나는 분명히 느꼈다.
부모와는 다른 세계를 걷고 있구나.
저녁 식탁 위에
니체의 위버멘쉬를 올려두고
사이파이 소설을 진지하게 이야기하던 날,
우리는 경이와 함께
낯선 세계에 대한 불안과 호기심을 동시에 느꼈다.
마음이 새로운 주파수에 맞춰
조율되는 듯했다.
아이가 대륙의 끝으로 대학을 떠난 뒤,
나는 어느 날 우연히
그가 즐겨 듣던 음악을 다시 틀었다.
그리고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에
한동안 더 찾아들었다.
내 안에도 그런 씨앗이 있었던 걸까.
아이가 조용히 싹 틔워 준 것일까.
우리는
‘아이’라는 하나의 프리즘을 통해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색을 본다.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우리는
아이를 통해 확장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나 역시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 글들은 화요일과 금요일에 한 편씩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