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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열은 이 영화에서 몇 번 기절했을까?

<외계+인 2> 리뷰

by 소려



나는 영화를 시랑한다

저는 영화를 사랑합니다. 그렇기에 영화에 쓴소리를 한다는 건 못난 자식을 바로 잡기 위해 드는 사랑의 회초리와 그 결이 같다고 말할 수 있죠.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회초리를 드는 나날이 저는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그날이 오늘은 아닙니다. 오늘은 거장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의 2편을 보러 가는 날이니까요. 1편이 1700만 관객이라는 파멸적인 흥행 기록을 경신하며 전 세계 영화인들의 이목은 모두 1년 뒤에 개봉할 2편으로 쏠렸습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로 이만큼 제 가슴을 떨리게 만든 후속작이 있었던가요. 글을 끄적이는 시간조차 아깝습니다. 당장 보러 가야지! 꺄울~!

출처: 나무위키




그런 건 너굴맨이 처리했으니 안심하라구

아 X발 꿈. 그리 슬피 우느냐고 물으신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었기 때문입니다. 믿을 수 없어... 이건 너굴맨의 소행이야... 최동훈 감독의 개쩌는 SF영화 돌려줘요...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저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슬퍼서가 아니라 안타까워서요. 온갖 산해진미를 갖다가 로제 마라 떡볶이를 끓여놨는데 울음이 안 나옵니까?


이대론 안됩니다. 오늘 사랑의 회초리 한 번 들겠습니다.

출처: 나무위키




시발점

700억을 들여 영화를 하나 만든다고 합니다. 선봉장엔 충무로의 거물 최동훈 감독이 섰습니다. 외계인이 쳐들어온 '미래'와 도술을 쓰는 신선들이 신검을 놓고 혈투를 벌이는 '과거'가 아찔하게 교차된다고 합니다. 김태리와 류준열 두 주연을 얼굴로 앞세운다고 합니다. 그래도 700억은 만만한 숫자가 아니라구요?

마침 쌍천만을 달성한 국산 SF블록버스터 <신과 함께> 시리즈라는 훌륭한 선례도 존재하고 어벤져스 시리즈의 성공으로 파트가 나뉘는 영화의 거부감도 그다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최동훈 감독은 <전우치>라는 필모그래피로 일말의 의심도 일축시켜 버립니다. 제가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이 영화에 투자 안 할 사람 손?


투자 안 하면 바보죠. 돈만 많았으면 제가 투자했을 겁니다. 휴, 돈이 없어서 참 다행이야. 아무튼 이 영화는 최근 나온 한국 영화들 중에서 가장 탄탄한 청사진을 들고 출발합니다. 이 영화의 성공은 거꾸로 덤블링하면서 봐도 자명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선봉장이 바나나 껍질을 밟고 미끄러졌습니다.




미술

이 영화 미술이 엉망입니다. 색감, 의상, 소품, CG, 세트, 캐릭터 디자인 등등 죄다 별로입니다. 이 영화의 시놉시스가 나왔을 때 저는 굉장히 기대했습니다. 위에 저 투자자들하고 같은 마음인 거죠. 근데 처음 예고편을 보고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했습니다. 외계인, 가드, 우주선 같은 캐릭터 디자인이 완전 구렸거든요. 90년대 비디오 게임에서나 볼 법한 비주얼 아닙니까 솔직히? CG의 퀄리티는 차치하고 디자인의 단계에서 이미 글렀다 이 말입니다. 과거 파트도 비슷합니다. 세트가 무슨 민속촌에서 찍은 것 마냥 단조롭고 공간감도 잘 살지 못했습니다. 특히 최종전이 벌어지는 그 공터는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제작비가 부족했나...? 왜 이런 장소를 택했는지 진심으로 궁금합니다. 웅장함, 비장함 이딴 건 1도 없고 동네 애들이 공터에서 개들이랑 싸우는 거 보는 것 같았습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캐릭터 아울렛

최동훈이 누굽니까? 그의 영화는 항상 캐릭터 명품관이었어요. <범죄의 재구성>으로 웬만한 건 다 정리가 되고 <타짜>까지 나오면 그냥 끝입니다 끝. 근데 그런 사람이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니 통탄할 따름입니다. 두 주인공 이안과 무륵 둘 다 썩 매력적인 캐릭터는 아니었습니다. 다 어디서 본 레퍼런스 같았습니다. 그나마 호평받는 흑설과 청운도 글쎄요...? 그닥 신선하다거나 매력적이진 않더군요. <전우치>의 초롱이만 하더라도 훨씬 좋지 않았나요? 가드는 물론이고 썬더에 민개인, 능파까지 다 맹숭맹숭합니다. 다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에요. 여전에는 명품관이었던 곳이 이제는 아울렛이 되어 철 지난 상품들에 할인 딱지를 붙여 팔고 있었습니다. 아울렛 가본 분들은 아실 겁니다. 싸긴 한데, 그닥 구미가 당기지는 않습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아이 유쾌해





이안과 무륵

캐릭터 얘기를 조금만 더 해보죠. 이안은 주인공입니다. 갓난아이 때 외계인에게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될 운명이었지만 가드가 그녀를 거두어 키웠죠. 이안에겐 결핍의 정서가 묻어납니다. 미래에 다시 돌아가기 위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부모같은 가드의 의지를 잇기 위해 그녀는 싸웁니다. 처절하고 고독합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이 캐릭터에 전혀 없습니다. 강인한 여전사가 아니라 고려 시대로 현장학습 갔다 온 여중생 같습니다. 이러니 마지막에 썬더와 작별할 때도, 다시 집으로 돌아와 빛바랜 가족사진을 들여다볼 때도 별 감정의 움직임이 없습니다. 모두 캐릭터의 매력 부재가 원인입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무륵의 경우엔 더 합니다. 두 편의 영화에서 무륵이 몇 번 기절하는지 아시는 분 계십니까? 저도 보다가 중간에 계속 기절해서 카운팅을 못했거든요. 그래도 얘보단 제가 덜 잔 것 같긴 합니다. 진짜 주인공이라는 놈이 툭 치면 기절하고, 툭 치면 기절하니까 뭐 했는지 잘 기억도 안 납니다. 게다가 얘가 뭘 말하고자 하는 캐릭터인지는 2부 후반에서야 알았습니다. 자신의 힘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얼치기. 그게 이 캐릭터의 기틀인 것 같더군요. 가드의 힘을 받은 덕에 능력이 생기지만 그걸 빼면 아무것도 아닌 인물. 그에게서도 결핍의 정서가 느껴집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전혀 살지 못했다는 거죠. 좀 더 극적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출처: 네이버 영화

몸 안에 요괴가 들어서 파문당한 게 아니라 사실 능력이 부족해서 파문당한 겁니다. 가드의 힘을 받아 도술을 부리긴 하지만 스스로가 그것 빼면 별 볼일 없는 인간임을 알고 있죠. 그런 그에게 이안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주는 유일한 인간입니다. 아무 능력 없는 보잘것없는 꼬맹이가 '선한 마음씨' 하나로 사람의 목숨을 구했으니까요. 가드의 힘을 잃고 원래 몸으로 돌아와도 그것이 그를 다시 일으키고 각성하는 불씨가 됩니다. 이안과 무륵이 서로를 보완해 주는 관계가 되는 거죠. 무륵에게 이안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주는 존재, 이안에게 무륵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고려 시대에서 처음으로 생긴 친구이자 가족이 되는 겁니다. 캬 그럼 둘이 헤어질 때도 절절하고 다시 만나러 갈 때는 더 절절하겠지? 크-뽕에 취한다!

라는 내용의 애니 추천받습니다. 사실 저 같은 일반인 나부랭이가 뭘 알겠습니까. 다들 이렇게 씹덕 망상 한 번씩 하잖아요 그죠? 아니야? 나만 그런 거야?




개연성

갖다 치웁시다. 욕할 시간이 아깝습니다.




류준열

류준열 배우는 성장의 여지가 더 남아있다고 감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쪽이 아니라 조금 부정적인 쪽으로요. 대체로 묵직한 역할을 맡을 때 그가 가진 매력은 배가 됩니다. 저는 <독전>의 컬트적 인기의 구심점엔 류준열 배우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선 그런 장점이 잘 살지도 못했고 새로운 매력을 어필하는 데도 실패한 것 같습니다. 저는 대체로 영화에서 배우가 문제라면 그것은 감독의 디렉팅 문제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솔직히 배우의 연기가 조금 아쉬웠습니다. 강동원처럼 능글맞진 않더라도 그에 준하는 폼은 보여줬어야죠. 하긴 영화 내내 계속 잠만 자는데 연기력을 뽐낼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역시 감독의 잘못이 맞는 것 같네요.

출처: 네이버 영화




세계관

제가 가장 화가 나는 부분입니다. 저는 현대 장르물의 핵심은 '독창성'이 아닌 '관객을 설득시키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반지의 제왕에 놀라고 스타워즈에 놀라던 시대는 이미 저 멀리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걸작들의 유산은 현대에 레퍼런스로 남아 살아 숨 쉽니다. 다양한 창작물속 이미 지겹도록 반복되는 레퍼런스. 이 안에서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듯한 독창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자신이 만든 세계를 사랑할 줄 알아야죠. 비빔빕에 비유하자면 방앗간에서 갓 짠 들기름이나 10년 숙성한 보리고추장이 필요한 게 아니라 내가 가장 맛있게 만들 수 있는 재료들을 슥슥 넣고 비벼 야무지게 한 큰 술 남에게 먹여줄 수 있는 그 정성과 믿음입니다. 그게 이 영화에는 없습니다. 감각이 올드해져서가 아닙니다. 제가 누군가의 노력을 멋대로 판단할 수도 없는 거구요. 하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이 영화 속 세계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손에서 만들어졌다는 걸요.

슥 훑어봐도 문제점은 다양합니다. 지구에 가두는 외계인이 한 종류만 있는지, 얘네 능력은 정확히 뭔지, 왜 하필 지구이고 인간인지, 가드는 우주를 통틀어 한 명인지, 마지막에 가드도 죽고 썬더도 죽는데 그럼 이제 죄수는 누가 가두는지, 벽란정의 타임 게이트는 왜 뜬금없이 잔존 에너지가 남아 신검 없이도 이동을 할 수 있었는지 등등 다 헤아리자면 밤을 새워도 모자랍니다. 설명이 부족하고 납득이 안됩니다. 디자인이 구려도요 체계적으로 짜여있고 살아 숨 쉰다고 느끼면 그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연스레 생깁니다. 이 영화, 다양한 오마주 장면들이 눈에 띕니다. 킬빌, 에일리언, 해리포터, 서유기, 쿵푸허슬 등등 많습니다. 하지만 그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외계+인>은 이 영화의 세계관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만든 영화 같습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장점

장점도 물론 존재합니다. 제가 가장 높이 사는 이 영화만의 가치는 바로 '장르적 뽕맛'입니다. 도술 거울을 통과한 총알이 거대해져 보호막을 부순다던가, 요괴를 베는 요검으로 외계인에게 치명상을 입힌다던가, 고려시대부터 전해져 온 선조의 검술을 익힌 후손이 도술로 검을 부린다던가, 신선이 아이언맨처럼 아머를 입는다던가, 뭐 이런 거 있잖아요. 얘기만 들어도 두근거리는 거. 물론 문제는 얘기로 들었을 때만 두근거리고 본편은 조졌다는 것이겠지만 이 얘기는 그만합시다. 아무튼 굉장히 멋진 명장면들의 청사진이 존재했다는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더 울분이 차오릅니다. 탄탄한 서사적 빌드업과, 기깔나는 대사, 그리고 지리는 음악과 함께 저 장면들이 세상에 나왔다면 어땠을까요? 저는 또 눈물을 흘리며 그런 세상을 상상할 수밖에 없겠군요.

출처: 네이버 영화





대사

저 좀 그만 괴롭히세요 진짜!!!#!!@!




눈물

더 하면 울 것 같으니까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무대인사를 다니시는 감독님의 짤이 몇 개 돌아다니는데 하나 같이 위축되고 우울해 보이셔서 개인적으로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최근 한국 영화의 흥행 경향이 특이합니다. 한 마디로 중간이 없는데요. 잘되는 영화는 초대박(범죄도시 3, 서울의 봄) 안 되는 영화는 그냥 쪽박(너무 많아서 생략)을 차버리고 맙니다. 세상에 이유 없는 일은 없듯 무언가 작용이 있었기에 나타나는 반응이겠죠. 아무튼 다음 영화는 아무쪼록 잘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게 왜 열심히 벽돌 깎고 대리석 닦아서 시멘트만 바르면 되는 판에 딱풀을 가져오십니까. 스타워즈는 모른 척 리부트해도 눈 감아줄 수 있는데 이 영화는 안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이제 별로 궁금하지가 않습니다. 감독님의 700억 도 문제지만 저에겐 이 영화에 태운 돈 3만 원이 더 큰 문제입니다. 에휴 이번 달은 맥날 단품만 먹어야겠네. 감튀를 포기하는 것만큼 슬픈 일이 또 없죠. 저도 잘 이겨낼 테니 감독님도 이번 사태의 상심을 잘 털어내고 부디 좋은 작품으로 다시 찾아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독님은 그래도 감튀 시킬 형편은 되시죠...?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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