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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 날개를 달다

<파묘> 리뷰

by 소려




파와 고양이

오랜만에 글을 쓰는군요. 최근 꽤 바빴던지라 영화를 볼 시간이 없었는데요. 이제 여유가 생겨서 영화를 볼까 싶었는데 파묘라는 영화가 요즘 재밌다고 난리래요. 묘를 팠더니 귀신이 나오는 내용이라던데 그러면 제목을 "묘 파"로 했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이게 파묘잖아요. 비겁하게 흥행 치트키 고양이를 끼워 팔다니 홍보팀의 교활함이 통탄스러울 지경입니다. 네 이놈들 영화에 고양이가 나오지 않는다면 극장에 파 맛 츄르를 잔뜩 뿌리고 나올 테야. 귀신이고 나발이고 영화엔 고양이지!




무서운 걸 못 보는 내가 간만에 본 게 공포영화였던 건에 대하여

저는 무서운 걸 잘 못 봅니다. 어릴 때 <터널>이라는 동화를 보고 무서워서 학원을 가지 않겠다고(?) 울고불고한 적도 있었죠. 사실 진짜 무서운 건 학원 아니겠습니까?

근데 그랬는데도 학원 계속 다녔습니다. 귀신보다 무서운 건 학원이고 학원보다 무서운 건 바로 어머니입니다. 해병대도 귀신을 잡는다는데 이 정도면 귀신이 X밥인 게 아닐까요? 이름 석 자면 해병대도 그 자리에서 엉엉 울리는 게 바로 어머니라는 존재입니다. 어머니는 강합니다. 육아를 얕보지 마십쇼 여러분. 아들내미가 개수작 부린다고 깜빡 넘어갈 만큼 어머니란 존재는 나약하지 않습니다.





MADE IN KOREA

오컬트는 할리우드에서도 비주류 장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훨씬 더 비주류고요. 원초적인 공포와 무서움에 초점을 맞춘 호러 무비와 다르게 오컬트는 토속신앙, 엑소시즘 등 좀 더 구체화되어 있는 '초자연적인 학문'을 다루는 장르입니다. 그 업계에 통용되는 룰이 존재하죠. 단적으로 예를 들자면 '빙의'라던가, 십자가에 귀신들이 다가오지 못한다던가, 영적인 존재들은 '빛과 불'에 약하다던가 뭐 이런 것들 있잖아요? 따로 설명 안 해도 관객들이 아무 말이 넘어갈 수 있는 암묵적인 약속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런 약속이 많아질수록 접근성은 점점 떨어지고 소위 말하는 '고인 물'이 형성됩니다. 고인 물들은 이 세계를 더욱 깊게 탐구하고 개척하며 확장하죠. 이게 바로 '장르'입니다.

그리고 요컨대 '오컬트'는 많고 많은 장르들 중에서 좀 더 매니악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매니악하다는 건 흥행하기 힘들다는 얘기겠죠? 이런 장르일수록 가볍게 만들면 기존 팬층에게 외면받고, 깊게 만들자니 대중들에게 외면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파묘>는 어떨까요? 한국 오컬트 영화 선봉장 장재현 감독의 발자취를 한 번 쫓아가봅시다.




외골수

장편 데뷔 이래 총 3편의 영화, 모두 오컬트 장르, 그리고 3편 모두 손익분기점 돌파.

한 줄로 이미 장재현 감독의 능력은 입증이 되었습니다. <곡성>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먹히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3편 내내. 심지어 <파묘>의 흥행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천만 관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외계+인 2> 리뷰에서도 얘기했는데, 요즘 한국 영화의 흥행은 굉장히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잘되면 천만, 쪽박 차면... 예...

선택지가 'O'와 'X'로 나뉘어 있고 그중에 'O'를 받는 영화를 만든다는 것. 그리고 그게 한국에서 생소한 오컬트 장르라는 것. 이 사실만으로도 <파묘>의 흥행은 한국 영화계에 굉장히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매력이 뭘까?

그래서 왜 흥행이 잘되는 건데? 왜 이 생소한 장르가 재밌는 건데?

저는 감독이 실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편 데뷔작 <검은 사제들>은 원초적인 장르적 재미에 초점을 맞춘 느낌입니다. 영화의 모든 기운이 하이라이트인 구마 의식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덕분에 퇴마 장면의 재미는 확실히 잡은 대신 캐릭터와 서사와 주제의식은 흐려졌습니다.

반면에 <사바하>는 반대입니다. 확실하고 자극적인 장르적 재미를 충족시켜 주기 단단한 줄기를 따라 끈기 있게 한발 한발 내디뎌 나가는 묵직한 느낌을 줍니다. 두 영화 다 완성도와 별개로 오컬트로 보여줄 수 있는 두 개의 선택지를 보여준 셈이죠.

그리고 <파묘>는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가 일정 비율로 섞여있는 느낌입니다. 8:2 정도?

이 비율의 맛이 어느 정도 흥행하는지를 확인했으니 제 생각에 차기작은 사바하 7에 검은 사제들 3 정도의 비율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흥행하는 공식은 확인했으니 내가 만들고 싶은 거 만들었을 때의 반응도 확인해야죠. 장재현 감독님은 꾸준히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이 영화는 힙합니다. 한복 말고 가죽 코트 걸치고 있는 무당, 온몸에 경문을 문신으로 새기고 헤드폰으로 음악 듣는 법사. 좀 더 전문화되어 새롭게 다가오는 '풍수사'라는 직업과 무속이라는 범위에 미묘하게 줄을 타는 장례사의 이색적인 매력. '현대'와 '오컬트'가 만나면서 오는 이질적인 재미. 이 영화는 그런 매력적인 설정으로 관객들을 확 빨아들입니다. 굿하는데 컨버스 신은 거 보세요.

출처: 네이버 영화

신발끈 묶어주면서 굳이 한번 더 보여주죠? 그러다가 굿이 시작되면 영락없는 무당의 모습입니다. 이게 장르적 재미입니다. 그리고 자세히 설명되진 않았지만 무당들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는 도제 형식의 기술 전수 방식도 흥미롭습니다. 이 설정을 더 파면 영화 하나 더 나오지 않을까요? 화림과 봉길의 프리퀄 이야기 혼자 조심히 기대해 봅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비틀기

영화 전반적으로 크고 작은 반전 요소가 많습니다. 관을 따는 게 사실은 영안실 관리인이고, 박지용에게 전화를 건 게 사실 귀신이었고, 사실 관이 하나 더 있다던가. 그중에서도 가장 큰 반전의 요소는 후반부의 흐름을 완전히 바꾼 '정령'의 존재입니다. 대부분의 오컬트 영화에서 귀신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약점이 있는 존재입니다. 작중에서도 화림의 입을 설명하죠. 혼과 육체가 공존하는 인간에 비해 귀신은 육체가 없기에 불안하고 거기에서 인간이 귀신을 제압할 수 있는 역전의 포인트가 생깁니다.

그런데 정령은 육체가 있는 귀신입니다. 걍 짱짱 셉니다. 퇴마사들이 혼령이랑 싸우니까 비벼지지 타노스랑 싸우면 이길 수 있겠어요? 덕분에 정령의 존재는 영화를 일종의 크리쳐물로 탈피시킴과 동시에 더 강한 위기감을 조성합니다 대신 실체가 보이니까 공포감은 줄어듭니다. 영화의 호불호 포인트도 여기서 나오죠. 하지만 저는 괜찮은 클리셰 비틀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쪽에서 오는 장르적 재미도 확실하거든요. <콘스탄틴>에서 십자가 샷건 쏠 때, <황혼에서 새벽까지>에서 성수 물풍선 던지고 말뚝 석궁 쏠 때 어땠나요? 겁나 재밌습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음양오행의 이론을 빌려 불속성의 금속을 물속성의 나무, 경문이 새겨진 곡괭이를 자신의 피에 적셔서 다이묘를 격파하는 장면은 오컬트적 카타르시스가 넘치는 장면이었습니다.

물론 이 장면의 지나친 대사의 품질에는 물음표가 생기네요. 이 얘기는 뒤에서 하도록 하죠.

출처: 네이버 영화




이도현

<파묘> 흥행 성공의 일등 공신 이도현 배우를 위해 모두 박수 칩시다. 가뜩이나 중간에 쓰러져서 대사도 적은데 있는 거라곤 죄다 경문 구절이고, 빙의되고, 피 토하고, 가위눌리고, 오니가 배에 구멍내고, 기껏 누워서 쉬나 했더니 옆에서 계속 떠들고 발을 간지럽히기까지? 배우계에도 군대식 부조리가 있나요? 왜 최민식 배우가 송이버섯을 먹는 동안 이도현 배우는 발바닥 간질간질을 당해야 하냐 이 말이에요.

근데 놀라운 사실은 이 장면이 대역을 쓴 장면이라는 것입니다. 에 구멍 뚫리는 건 참아도 간지럼은 못 참죠. 이도현 배우의 발바닥 역을 열연한 배우분께 존경을 표하고 싶네요.

저도 발바닥만 예뻤다면 이 업계로 나가볼 수 있었을 텐데. 그날 닥터 피쉬 수조에 발을 조금 더 담그고 있었더라면 어땠을까요. 아들내미 발바닥이 파인애플에 재워 놓은 불고기 마냥 뭉개질까 봐 빨리 나오라고 재촉하시던 어머니의 부름이 오늘따라 괜히 야속하게만 느껴집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소설

영화의 구성이 '책'의 구성과 흡사하다고 생각한 분 계시지 않은가요? 챕터로 나누고 소제목을 붙인 형식도 소설의 형식과 비슷하고 영화 초반과 후반에 나오는 나레이션 역시 '영화 속 독백'보다는 '소설 속 독백'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최후반부 다이묘를 퇴치할 때 최민식 배우가 음양오향의 원리를 설명하는 장면이 호흡이 너무 길었습니다. 이 영화가 진짜 소설이었다면 어울렸겠지만 영화는 영화만의 표현 방식이 있는 법입니다. 초반에 복선을 깔고 화면 언어로 표현했어도 충분히 더 세련될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구구절절 원리를 설명하는 게 영화의 품질을 떨어뜨렸습니다. 어르신들 꼬셔서 서커스 천막 안에서 약 팔아먹는 약장수 같잖아요. 솔직히 조금 유치했습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반면에 '음과 양'이라는 작품의 주제를 관통하는 내용에 대한 설명은 굉장히 부족합니다. 부족한 게 아니라 거의 없는 수준이죠.

영화는 빛과 어둠, 조화, 균형의 순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망자들과, 망자를 다루는 자들. 혼령과 주인공 일당은 음과 양으로 각각 구분됩니다. 이 개념을 조금 확장하면 떠나간 과거의 잔재는 '음', 미래를 살아갈 이들은 '양'입니다. 주인공 무리는 이 경계선에 있는 존재들입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균형을 맞춥니다. 음도 아니고 양도 아닙니다. 마지막 결혼식 단체 사진 장면에서 상덕은 화림, 봉길, 영근을 불러 함께 사진을 찍습니다. 가족사진인데도 불구하고요.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 음지의 나그네들. 그들이 양지의 사진 속에 기록되어 남습니다. 경계선에 있는 자들의 처지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멋진 장면입니다. 아니, 멋진 장면이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초반과 후반 묘사를 제외하면 전무하다 싶을 정도의 서사 탓에 장면이 힘을 잃었습니다.

아쉽습니다. 설명이 필요한 곳에 힘을 빼고 엉뚱한 부분에 힘을 주었습니다. 전작들에서도 드러난 감독의 약간은 허술한 이야기 실력이 또 발목을 잡았습니다. 다음 영화가 분수령이 되겠네요. 감독의 고질적인 문제로 자리 잡을지 아니면 극복하고 더 좋은 영화를 만들지. 후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마무리

재밌는 영화였습니다. 오랜만에 극장을 갔는데 포만감이 상당히 만족스럽습니다. 캐릭터 디자인이 하나같이 매력적이라 프리퀄이나 시퀄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이미 떡밥도 뿌려둔 거 같은데 과연 어떻게 될는지요.

볼 영화들이 참 많습니다. 특히 올해 최고 기대작 <듄 파트 2>가 남았습니다. 남들 다 봤는데 나만 못 봤어! 듄 네 이놈 게 섰거라 어둠의 이동진이 간다!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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