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17> 리뷰
야끼소바빵
오랜만에 조조로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영화 시작하기 전에 시간이 좀 남아서 성심당에 다녀왔습니다. 이번에 새로 생긴 샌드위치 정거장에 말이죠.
여러분은 평일 아침에 오픈런하지 마십쇼. 빵이 없습니다. 결국 야끼소바 빵이랑 소세지 핫도그만 사서 이른 아침을 먹었습니다.
소세지 빵은 평범하고, 야끼소바 빵도 엄청 특별한 맛은 아닙니다. 간장 맛이 약하고, 특이하게 마요네즈가 들어가서 묘한 맛이 납니다. 약간의 매운맛이 있는데 이 세 가지가 어우러져서 무슨 맛이 나는지 아십니까? 놀랍게도 청양마요소스 맛이 납니다. 네, 먹태 찍어먹는 그거요. 이걸 뭐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재료는 실하게 들어가서 좋았습니다.
오티
왜 아침부터 영화를 보았는가. 바로 오리지널 티켓을 위해서입니다. 이번 오티 디자인이 역대급으로 잘 나왔습니다. 힘을 많이 준 게 보입니다. 두장이 겹쳐져서 나온 오티는 처음일지도?
저는 A타입을 받았는데 B타입도 예쁩니다. 몰랐는데 포스터도 주네요. 포스터 디자인들이 전체적으로 잘 뽑혔습니다. 아침 일찍 보러 간 보람이 있군요.
관상가 양반
이제 영화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예고편을 보고 이미 기대감은 많이 접었습니다. 예전에 말했었죠? 저는 예고편 관상가라고. 딱 보아하니 견적이 나와서 큰 기대 없이 극장에 갔습니다. 물론 가슴 한켠엔 제 오만한 예측이 보기 좋게 빗나가주길 바라면서요. 근데 말입니다, 결국 제가 맞았던 거 같습니다.
익스펜더블
주인공 미키는 사채업자에게 큰 빚을 지고 살해당할 위기에 처하자 같이 빚을 진 친구와 함께 우주 이주 프로젝트에 참여합니다. 빌어먹을 마카롱집을 열었기 때문이었죠. 한국엔 자매품으로 대만 카스텔라가 있습니다.
아무튼 이민선에 탑승한 미키는 ‘익스펜더블’이라는 직업에 신청합니다. 이 익스펜더블이 무엇이냐? 일단 대상자의 기억과 몸을 복사합니다. 그리고 대상자의 육체가 죽으면 새 몸을 프린트해서 복사해 놓은 기억을 이식하는 것이죠. 그렇게 임시적으로 불사의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익스펜더블입니다.
이 익스펜더블은 듣기만 하면 개 멋있는 거 같지만 실상은 모르모트 실험쥐 신세입니다. 합법적으로 인체 실험의 대상자가 되는 것이죠. 때문에 지구에선 금지된 기술입니다. 우주 식민 행성에서만, 그것도 우주선 당 1명만 익스펜더블이 될 수 있습니다. 거기에 주인공 미키가 지원한 것이죠.
멀티플
영화는 예정대로 죽었어야 할 17번째 미키인 ‘미키 17’이 운 좋게 살아남아 자신의 후임으로 새로 프린트된 ‘미키 18’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익스펜더블은 규정상 2명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 기술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 이걸로 인한 큰 문제가 있었거든요. 같은 인간이 두 명 이상이 되는 것을 ‘멀티플’이라고 하는데요, 이 멀티플이 생기면 규정상 기억과 육체를 모두 삭제당해야 합니다. 즉, 미키 중 한 명이 죽지 않으면 둘 다 죽어야 한다는 소리죠.
멀티플이 된 미키, 그리고 미키의 여자친구 나샤, 식민 우주선의 리더인 정치인 마샬 등등 다양한 캐릭터들의 대소동(?) 이것이 <미키 17>의 대략적인 줄거리입니다. 재밌죠?
봉준호
영화는 흥미로운 세계관을 감독 특유의 익살스러운 분위기로 호쾌하게 전개해 나갑니다. 죽음이 업무인 익스펜더블이라는 설정은 굉장히 진지하고 무거운 설정임에도, 봉준호 감독 특유의 시리어스한 상황을 익살스럽게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부담 없이 소화시킵니다.
본인의 개성이 영화에 짙게 드러나는 감독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몇 명 들어보자면, 크리스토퍼 놀란, 쿠엔틴 타란티노, 그리고 봉준호 감독이 있습니다. 봉준호의 영화를 보면, 영화가 아니라 봉준호의 영화를 봤다는 느낌이 듭니다.
괴물, 설국열차, 옥자, 그리고 미키 17. 봉감독의 장편 필모그래피 8개 중 4개가 SF 영화입니다. 그가 어떤 장르에 관심이 있는지 알 수 있죠. 때문에 그가 그려내는 세계관은 생동감이 넘치고 활력이 돕니다.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고요.
절반의 성공
원작 소설이 있다던데 저는 안 봤습니다. 자세한 설정들은 뭐 소설의 설정을 따르겠지만 좋은 소재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것이 감독의 임무입니다. 저는 그 측면에서 반은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봉테일’이라는 별명답게 세세한 연출의 디테일이 좋습니다. 인간이 프린트될 때, 한번 살짝 걸린 듯이 후진했다가 나머지가 출력되며 나오는 건 모르긴 몰라도 그냥 그럴듯해 보입니다.
식사에 초대되어 먹는 인공육 소품도 꽤나 그럴듯합니다. 예전에 어디서 본 실제 인공육과 굉장히 흡사하게 생겼습니다.
복제인간인 미키에게는 인공육을, 카이에게는 실제 고기를 주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지나치기 쉬운 이런 작은 요소들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챙기는 게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아바타>가 왜 사랑을 받았는지 생각해 보세요.
절반의 실패
감독이 예쁘고 깔끔한 무대를 준비해 놨습니다. 하지만 그 무대에서 캐릭터들이 신나게 뛰어놀지 못합니다. 연극을 하랬더니 자기들끼리 깨작깨작 소꿉장난이나 치는 걸 보다 온 기분입니다.
복제인간 윤리는 이제는 너무나도 뻔한 담론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걸 또 깊게 파고드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죠. 그 부분에서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영화는 거기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고 오히려 가볍게 넘어갑니다. 다만 이와 함께 설정 역시 가볍게 소모됐다는 게 아쉽습니다.
조금 더 발칙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솔직히 다른 건 몰라도 마지막에 미키를 잔뜩 복사해서 때거지로 전투를 벌이는 액션씬 하나 정도는 기대했거든요. 꼭 이게 아니더라도 그런 비슷한 쾌감이 있는 장면을 하나 바랬습니다. 장르 영화니까요. 이 정도 기대는 해도 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 영화는 점점 고조시키다가 맥없이 꺼집니다. 부족한 뒷심. 그리고 거기에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얌전한 상상력. 그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패착입니다.
‘일침’이 아닌 ‘이야기’
생명 윤리, 계급 사회, 부패한 관료, 동물 보호, 환경 문제 등 봉준호의 영화들에서 숱하게 다뤄온 문제를 이번 영화에서도 건드립니다.
대신 다양하고 얕게 건드립니다. 어느 하나에 깊게 들어가지 않습니다. 의도된 것이라고 봅니다. 이 영화는 <설국 열차>와 <기생충>처럼 노골적으로 계급 사회를 비판하지 않고, <옥자>처럼 제대로 동물, 환경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의견을 늘어놓지도 않습니다.
늘 보던 맛. 늘 그가 해오던 이야기들이 녹아있는 봉준호의 세계에 흥미로운 설정들을 녹여 만들어낸 하나의 세계입니다. 이 영화는 일침, 혹은 질문이 아닌 그냥 ‘이야기’입니다. 봉준호가 들려주는 재밌고 즐거운 이야기. 그 정도의 무게감, 그리고 그 정도의 재미입니다.
나샤
나샤는 왜 그렇게 미키를 사랑한 것일까요? 서로 왜 사랑에 빠졌는지는 자세하게 다루지 않고 시작부터 물고 빨기부터 시작하니 굉장히 화가 납니다. 절대 부러워서가 아닙니다. 사랑에 이유를 찾는 건 모솔들이나 하는 짓이지만 영화라면, 이야기라면 우리에게 설득은 시켜달란 말이야! 다시 말하자면 절대 부러워서가 아닙니다.
….. 아무튼 아닙니다.
그래도 둘의 사랑은 꽤나 애틋하게 그려집니다. 미키가 죽을 때 함께 방호복을 입고 들어가 그를 안아주며 안심시켜 주는 장면은 짧지만 깊은 울림이 있고, 둘이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이해시켜 주는 장면이었습니다.
마지막에 서로 만든 체위를 통해 신호를 전달하는 장면도 재밌었습니다. 그 장면이 영화의 도파민 고점이었다는 게 유일한 흠이지만.
그나저나 나샤 임플란트 어디서 했나요? 이빨로 밧줄 무는 거 보고 식겁했습니다. 저도 나중에 틀니 하러 미국으로 가야겠습니다.
연기
영화의 1등 공신은 로버트 패틴슨이었습니다. 발연기로 놀림받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스스로를 증명해 냅니다. 영화의 익살과 유쾌함은 모두 로버트 패틴슨의 훌륭한 연기에서 기인합니다.
뒤에서 훌륭하게 받쳐준 마크 러팔로와 토니 콜렛 역시 좋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크리퍼도 좋습니다. 연기가 좋다는 게 아니고 그냥 귀엽습니다. 암튼 귀여우면 됐잖아요. 때때로 세상에 다양한 문제가 ‘귀여움’ 하나로 해결되기도 합니다. 꼬우면 귀여우시던가.
소스
소스의 대한 일파의 사랑은 영화를 관통하는 강력한 상징 중 하나입니다. 영단어 ‘Source’는 원천, 혹은 근원이라는 뜻을 품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소스는 원물을 가공하여 만들어낸 가공의 산물입니다.
사망한 미키의 육신은 녹인 후에 재구성되어 새 몸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소스가 되었다가 다시 돌아오는 모양새입니다. 하지만 미키의 근원, 미키의 소스는 육신이 아닌 정신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미키라는 소스를 혐오하는 일파의 태도는 그녀가 얼마나 편협적이면서도 과시적인 인물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마무리
전체적으로 힘을 많이 뺀 영화 같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은 역대 최고인데도요. 좀 더 발칙한 영화였으면 어땠을까 싶은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습니다. 나는 장인의 오마카세를 먹으러 갔는데 까고 보니 애슐리였던 것 같은 실망감입니다. 강력하게 추천한다고는 말씀드리기 힘들겠습니다만 킬링 타임으로 그럭저럭 볼만한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