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리뷰
할로 에부리완
얼마 만에 영화 리뷰를 적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영화를 안 본 거냐 물으신다면 그건 아닙니다. 단지 글을 쓰고 싶게 하는 영화가 없었을 뿐입니다. 사실 이것도 다 핑계예요. 그냥 귀찮았을 뿐입니다.
이런 얘기로 서두를 장식하는 것도 슬슬 지겹네요. 성실해지던가 다른 핑계를 대던가 해야 할 텐데 성실해지긴 싫으니 그냥 후자를 택하겠습니다 헤헤.
대단원의 마무리
최근 들어 우리에게 작별을 고한 장수 시리즈가 많습니다. 오늘 이 영화 또한 그중 하나입니다. 장장 29년에 걸친 시리즈의 막을 장식하는 아주 뜻깊고 중요한 영화죠. 여러분은 얼마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사랑하십니까? 저는 솔직히 말하자면 광팬까진 아닙니다. 다만 신작이 나오면 극장에 꼬박꼬박 보러 갈 뿐이죠. 그럼에도 언제든 놀라운 스턴트 액션을 보여줄 것 같았던 톰 형의 마지막 영화라는 점은 가슴 한편을 먹먹하게 만들었습니다. 과연 에단 헌트는 이 영화로 퇴직금을 낭낭하게 받아갈 수 있을까요?
러닝타임
무려 2시간 50분짜리 영화입니다. 예전에 말한 적이 있나 모르겠는데 저는 긴 영화를 대단히 싫어합니다. 극장에 앉은 지 2시간만 지나면 제 디스크가 죽음의 진혼곡을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성인 ADHD라 집중력 또한 순식간에 곤두박질치죠. 웬만큼 재미있지 않으면 깜빡 잠에 들거나, 디스크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위치를 찾기 위해 엉덩이를 들썩이며 죽음의 트위스트를 춰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영화가 이런 걸 느낄 틈 없이 재밌었냐? 그건 아닙니다. 다만 그렇다고 지루하지도 않습니다. 초반 1시간 정도의 빌드업만 견디면 영화는 진한 홍삼 엑기스같은 액션 장면을 쭉쭉 뽑아줍니다. 그러나 문제는 빌드업이 아니라 영화의 ‘템포’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속도감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속도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거의 모든 시리즈가 관객이 지루할 틈도 없이 액션을 휘몰아쳐 사로잡습니다. 인심 낭낭한 액션 맛집은 존윅 이전에 미션 임파서블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 영화에선 특이하게 속도감을 포기합니다. 스케일이 유례없이 커졌기 때문인지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위험하고, 그렇기에 에단 헌트의 임무가 얼마나 막중했는지에 대해 계속 설명합니다. 덕분에 항상 화려했던 오프닝 시퀀스도 그냥 밋밋하게 넘어가버리죠.
이 선택을 통한 득과 실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이득은 관객이 스토리의 큰 그림을 명확히 인지한 채로 영화를 보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동안의 미션 임파서블을 떠올려 보세요. 스토리 제대로 기억나는 편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잔치국수 같은 액션 장면을 후룩후룩 삼켜야 하기 때문에 스토리는 비교적 잘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딱히 대단한 내용도 없지만요. 하지만 이번에는 차분히 관객들에게 설명하고 인지시킨 다음에 더할 나위 없는 액션신을 보여줌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습니다.
다만 이로 인한 손실이 있다면 약간의 지루함이죠. 원래 이러지 않았으니 관객들이 느끼는 역체감이 더욱 심할 겁니다.
설명충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겁니다. 영화가 말이 너무 많아요. 전편 안 봐도 이해할 수 있게 줄거리 요약하랴, 회수한 떡밥 친절하게 설명하랴, 긴장감 조성하려고 꼬아놓은 플롯 설명하랴 아주 정신이 없습니다. 쏟아지는 텍스트양에 잠시 정신을 잃을 뻔했지만 정신줄 꽉 잡고 자막을 읽으며 따라갔습니다만 그래도 놓친 부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후반부 교차 편집 부분에선 얘네가 각자 왜 이렇게 행동해야 하는 건지 혼자 정리하며 이해하는데 오래 걸렸습니다. 대충 맥락을 파악하고 나니 톰 형이 비행기에 매달려 있더군요. 안 그래도 러닝 타임이 길어서 힘든데 진짜 정신 잃을 뻔했습니다.
엔티티
전편의 엔티티를 보고 내심 감탄했습니다. 첩보 영화의 빌런이 고지능 ai라니 이보다 더 무서울 순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실제로 작중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도 대단히 무시무시했죠. 주인공 일행의 수단을 모두 장악해 무력화시키고 역이용하는 장면들을 보며 얼마나 이 빌런이 이 시대에 위협적인지 제대로 통감했습니다.
근데 이번 영화에선 그런 무서움이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미래를 예측하고 에단이 그대로 행동하게 만들어 목표를 달성하려 하지만 당연히 에단에게 그 미래를 보고도 똑같이 따라 할 리가 없죠. 그런데도 엔티티는 별 대책이 없습니다. 자기를 램프의 요정 윌 스미스로 만들겠다는데도 그걸 막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아요. 오히려 자기가 갖다 버린 가브리엘이 에단을 막으려 들죠.
아쉽습니다. 매력적인 빌런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한순간에 무료 버전 챗gpt 수준으로 능지가 떨어져 버렸네요.
아이고 일사 내놔라 이놈들아
일사 어디 갔냐고!! 죽은 척하고 살아있던 거 아니었냐고!!! 너희 그거 잘하잖아!! 아이고 일사 내놔라 이놈들아…. 우리 일사 선생님은 떠올리기만 해도 자다가도 몸이 벌떡 일으켜지고 밥이 꿀떡꿀떡 넘어가는데…
대신 그레이스를 드리겠습니다
저는 그레이스가 싫었습니다. 싫다기 보단 일사가 더 좋았죠. 배우의 매력을 차치하고 캐릭터적인 측면으로서도 일사는 훨씬 잘 만들어진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제작진은 일사를 에단의 동반자로 만들어주기보단 각성의 재료로 삼는 걸 택했습니다.
하지만 전편에선 고개가 갸웃거려졌던 그레이스라는 캐릭터의 존재 의문은 이번 편에서 고개를 끄덕여지게 만들더군요. 세계 최고의 소매치기.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임무가 후반에 부여됩니다. 후반부 교차 편집 장면의 모든 긴장감이 그녀의 손 끝에 집중되었죠. 그녀의 활약은 복선을 전편에 미리 깔아놓음으로써 억지스럽지 않고 훌륭한 카타르시스로 거듭납니다. 90년대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많이 보이는 기믹같아 정겨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극장에서도 다 같이 감탄의 탄식이 터져 나왔습니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제대로 들어서 좋더군요.
액션
말이 필요한가요. 명불허전 액션 맛집입니다. 위에서 말했듯 빈도수는 줄었지만 그만큼 액션 시퀀스 하나하나가 묵직한 한방이 있습니다. 거대한 스케일과 계속 서스펜스를 자아내는 잠수함 씬도 아주 훌륭했고, 경비행기 추격씬은 아직도 톰 크루즈가 보여줄 것이 남았다는 것을 우리에게 톡톡히 보여줍니다. 그의 달리기도 여전합니다. 톰 크루즈의 달리기엔 감동이 있습니다. 게다가 속도감이 전편보다도 훨씬 좋아졌습니다. 나이를 거꾸로 먹고 있는 게 아닌가 진심으로 궁금합니다.
떡밥 회수
마지막 편이라 그런지 팬서비스 차원의 떡밥 회수도 이루어졌습니다. 1편에서 알래스카로 좌천된 보안 담당자가 재등장해 아주 큰 역할을 하고, 떡밥(뿌리기) 전문가 JJ에이브람스가 뿌려놓은 희대의 떡밥 ‘토끼발’ 또한 이번 편에서 회수가 되었습니다. 비록 끼워 맞추기 느낌이 많이 들지라도 팬들의 입장에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을 이렇게 정성스레 짚고 넘어가는 게 큰 감동으로 다가오겠죠.
근데 그래서 토끼발이 뭐라고…?
시대와의 싸움
엔티티는 격변하는 시대의 표상입니다. 반면에 에단 헌트. 그리고 톰 크루즈는 아날로그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과도 같습니다. 3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시대는 점점 저물어가고 새로운 시대가 태동합니다. 시대의 영웅이 어느새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죠.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동시에 슬픈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달립니다. 넘어지고 쓰러져도 또 달렸습니다. 특수효과와 특수촬영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지금에도 그는 직접 몸으로 뛰어 극장에서 우리를 만납니다. 그 열정이, 그 뜨거움이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그의 존재를 여실히 증명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톰 크루즈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엔딩
30년의 시리즈의 마무리이자 톰 크루즈의 상징과도 같은 시리즈의 마무리이니 당연히 엔딩을 어떻게 낼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예상외로 아주 담백한 마무리를 보여주더군요. ‘언더그라운드’라는 팻말이 보이는 트라팔가 광장에서 그들은 눈인사를 주고받고 각자 군중 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에단 헌트 역시 그들을, 그리고 화면 밖의 우리를 한번 쓱 보고 군중 속으로 사라집니다.
우리는 음지에서 움직인다. 소중한 사람들과, 얼굴도 모르는 이들을 위해
마무리
30년간의 여정을 마친 톰 크루즈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시리즈의 중심이었으며 시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그 열정과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사랑해요 톰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