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스티치> 리뷰
의심과 기대
내는 족족 꼬라박고 있는 디즈니 실사영화 시리즈. 저는 인어공주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해서 디즈니 오프닝 로고만 봐도 깜짝 놀라 팝콘통에 머리를 박고 바들바들 떠는데요. 과연 이번에는 어떨까요. 디즈니 이사진들은 주주들에게 팝콘을 맞지 않을 수 있을까요?
here’s stitch!
우주 연방의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창조한 ‘우주 실험체 626’. 그 위험성 탓에 의회에 회부되어 추방 명령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깜찍한 626은 신묘한 기지를 발휘해 탈출에 성공하고 한 행성에 추락합니다. 행성의 이름은 ’ 쥐-구‘. 물로 뒤덮여 있는 행성이죠. 마침 626의 치명적인 약점이 물이라고 하네요. 밀도가 높아져서 가라앉는다나 뭐라나. 아무튼 은하 연방 총사령관은 626을 만든 과학자 ‘줌바’와 괴짜 은하 연방 요원 ‘플리클리’를 파견해 체포 명령을 내립니다. 한편 626의 탈출선은 한 섬에 불시착하게 됩니다. 섬의 이름은 하와이.
하와이에 사는 여자아이 릴로는 또래에게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싸입니다. 친구가 생기게 해달라고 빌었더니 바로 다음날 로켓 배송으로 파란 털뭉치가 하나 도착했습니다. 야생 동물 보호소에 숨어있던 626을 입양해 집으로 데려옵니다. 부모님을 여의고 언니와 단둘이 살고 있던 릴로네 집에 새로운 가족이 생겼습니다. 비록 은하 저 멀리서 온 살인 기계일지라도 말이죠.
실사 영화라면 지긋지긋해
여러분은 의아하실 겁니다. 실사 영화의 평가가 갈수록 나락을 향하는데 디즈니는 어째서 이 프로젝트를 강행하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도 아는 걸 모르다니 바보인 걸까요?
물론 그들도 바보가 아닙니다. 저도 잘은 몰랐는데 이번에 찾아보니 디즈니가 실사 영화 시리즈로 돈 좀 만졌더군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부터 시작해, <정글북>, <미녀와 야수>, <알라딘>, 그리고 전 세계 흥행 15억 달러를 넘긴 <라이온 킹>까지. 위 말한 작품들은 흥행이 10억 달러를 넘기거나 그에 근접한 작품들입니다. 이외에도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긴 성공한 영화들이 즐비하죠. 어때요? 이러니 실사 영화를 안 만들고 배깁니까? 상대적으로 극장 흥행이 덜할 수밖에 없는 애니메이션 영화의 ip를 실사 영화로 만들어 수입을 두 배 이상으로 뽑아내는 거죠. 이게 창조경제지.
슈퍼 소닉 사태
물론 작품성이 흥행에 비례하진 않습니다. 최근작들은 작품성과 흥행 둘 다 나락을 가고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품에 모두의 귀추가 주목되었습니다. 예고편 때깔이 그럴듯했거든요.
’ 슈퍼 소닉 사태‘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소닉 실사 영화 시리즈의 첫 예고편이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지 않은데 진짜 개 징그러웠거든요. 패닉에 빠진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제작사는 과감한 결단을 내립니다. 캐릭터 디자인을 전면 수정해 보다 원작에 가까운 디자인으로 뜯어고쳤습니다. 덕분에 소닉 실사 시리즈는 세편이나 나올 정도로 성공했죠. 이 이후로 캐릭터 실사 영화에는 불문율이 생겼습니다. 원작의 캐릭터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따라갈 것. 덕분에 이번 영화 역시 우리는 징그러운 외계 바퀴벌레가 아니라 귀여운 스티치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고맙다 최고소닉아!
근데 줌바랑 플리클리는 왜…
하와이
스티치라는 캐릭터의 네임 밸류에 비해 영화 자체의 내용을 기억하는 분들은 잘 없을 겁니다. 원작 <릴로&스티치>의 매력은 ‘은하에서 온 귀여운 외계 생명체+하와이’라는 너무나 동떨어진 두 요소의 만남으로부터 기인합니다. 외계 생명체가 서핑을 하고 훌라 춤을 추는 이 기묘한 아이러니에서 오는 이국적인 재미. 그것이 이 시리즈를 지탱하는 원동력입니다.
다만 원작이 나온 지 꽤 오래됐으니 당연히 시대 간의 간극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번 영화에선 하와이만의 특별한 매력이 잘 와닿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와이 못 가봤다고 심술부리는 게 아닙니다. 묘하게 현대화된 하와이의 모습으로 예전 원작에 나왔던 분위기를 재현하려다 보니 미묘한 어색함이 있달까요? 그리고 저는 실사 영화에선 실사 영화만이 취할 수 있는 장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크게 효과를 볼 수 있는 부분이 ‘촬영’이라고 생각하는데 영 힘을 쓰지 못합니다. 장면장면에 아름다움이나 힘이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아쉬운 부분이죠.
각색
원작과 달라진 부분도 많습니다. 원래 후반부 최종 보스로 등장해야 할 ‘간투’라는 캐릭터가 완전히 삭제당했고 그 자리를 줌바 박사가 이어받습니다. 원작에선 간투에 맞서 마지막에 아군이 되지만 이번 영화에선 계속 악역으로 등장하니 비호감이 되어버렸습니다. 원래 줌바는 호감캐인데 말이죠.
또한 코브라 버블스의 역할을 굳이 사회복지사와 CIA 요원 두 캐릭터로 나눠놓은 것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번 영화에서 코브라 버블스는 너무나도 불필요한 인물입니다. 사회복지사 역을 맡은 배우가 원작의 나니를 연기했던 성우라던데 특별 출연을 위해서였을까요? 사족만 늘린 안 좋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투투할머니 또한 굳이?라는 생각이 드는 캐릭터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스티치가 ‘미운 오리 새끼’ 책을 읽는 부분이 사라졌다는 점이죠. 영화의 핵심을 관통하는 상징인데 그걸 삭제하다니요. 덕분에 스티치가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 가족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되는 일련의 서사가 조금 밋밋하게 느껴집니다. 아쉽습니다. 그러니 원작을 안 보신 분들은 이번 기회에 원작을 찾아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귀여운 게 최고야
쓰다 보니 안 좋은 얘기만 늘어놨네요. 사실 저는 이번 영화를 굉장히 재밌게 보고 왔습니다. 위에서 말한 아쉬움? 사실 다 필요 없습니다. 스티치만 귀여우면 장땡이죠. 여러분도 그냥 스티치 보러 간 거 아닙니까? 애니메이션에서도 귀여운데 실사가 되고 두배로 귀엽습니다. 아니? 세 배! 아니? 네 배!! 최고다 스티치!! 스티치가 나오는 모든 장면마다 절로 아빠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스티치만 보고 와도 이 영화 티켓값은 뽑고도 남습니다. 톰 크루즈 형님이 아무리 날고, 뛰고 매달려 봐야 스티치가 ‘딸깍’ 한번 하면 다들 자지러집니다. 역시 귀여운 게 최고야. 아, 나도 스티치 한 번만 안아봤으면. 캡틴 아메리카처럼 하루 종일도 할 수 있는데….볼따구에 와랄랄라 해줄 수 있는데….
배우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배우 캐스팅인데요. 릴로역 배우를 너무 잘 뽑았습니다. 기대 안 했는데 너무너무 귀엽습니다. 원작보다 좀 더 악동 같은 면이 부각되면서도 어린아이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볼따구가 그냥….
나니 역시 원작과 다른 매력으로 좋았습니다. 미성숙한 보호자라는 점이 원작보다 더 잘 부각된 것 같습니다. 릴로와의 캐미 역시 두드러집니다. 정말 현실에 존재하는 자매처럼 익살스럽고, 때론 다정하며, 애틋합니다. 진짜 두 배우가 자매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보기 좋았습니다. 영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 기여한 두 일등공신이었습니다.
이스터 에그
저는 어릴 때 디즈니 채널에서 해주던 릴로와 스티치 TV 시리즈를 좋아했었습니다. 줌바 박사가 만든 다른 실험체들을 잡으러 다니는 내용이었는데요. 이번 영화에 스쳐 지나가는 장면에 이스터 에그로 넣어놨더라구요. 줌바가 626을 627로 개조할 거라고 말하면서 화면을 넘기는데 그중에 실험체 ‘624’와 ‘627’의 모습이 스쳐가듯 나옵니다. 너무 예상치 못한 이스터 에그라 깜짝 놀라기도 했고 너무 반가웠습니다. 후속작…. 혹시 내줄 거니…?
마무리
영화를 보는 내내 작년에 떠나보낸 저희 집 강아지가 떠올라 혼자 웃기도, 눈물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15,000원이 아깝지 않은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도 꼭 극장에서 보세요. 저는 한번 더 볼까 진지하게 고민 중입니다. 영화를 보고 스티치 같은 반려 동물을 들이고 싶으신 분들껜 비글을 추천합니다. 생긴 건 닮았는지 모르겠고, 집안 꼴은 비슷하게 만들어 놓을 겁니다.
Meega nala kwees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