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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수필

예비군 훈련-1일 차

by 소려




동원 훈련을 왔다. 전역 후 처음 오는 예비군이다. 전역한 지 1년 반 밖에 안 지났음에도 굉장히 옛날 옛적 일처럼 느껴진다. 다행히 군복은 아직 잘 맞는다. 군복 차림의 머리 긴 사내가 거울 속에 어색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간부가 된 것 같아서 약간 신날지도.


차를 타고 훈련장에 간다. 내 원래 부대는 강릉에 있다. 하지만 강원도는 대전에서 가기 그다지 만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다행히 이 시스템엔 일말의 '합리'가 작용하고 있었기에 나는 가까운 세종으로 훈련을 받으러 갈 수 있었다. 9월이지만 아직 덥다. 내 입대일이 9월이었기에 잘 알 수 있다. 나는 9월을 가을로 치지 않는다. 9월은 명백히 여름이다. 내 살갗을 조용히 익히고 있는 이 따가운 햇살이 그 증거이다.


군부대 특유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나를 반긴다. 군대라는 곳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다지 대단해 보이지 않는 법이다. 다만 이따 금식 들리는 군인들의 제식 구호 소리나 저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사격 훈련장의 날카로운 총성이 이곳이 분명 군부대임을 나한테 상기시키고 있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일렁인다. 묘한 그리움이었다.


군복에는 특이한 힘이 있다. 규격이 통일된 어떠한 틀로 쿠키 반죽을 찍어내듯이 사람의 모양이 정해진다는 느낌이다. 반죽이 얇던 두껍던 우리는 군복을 입고 군화를 신는 순간 모두 똑같은 모양의 쿠키 반죽이 된다. 줄지어 오븐 트레이에 얹어져 구워지기를 기다리며 축 늘어져있다. 그 모습이 꽤나 웃기다.


모두가 병장이다. 그 말은 즉슨 무언가를 일일이 알려줘야 할 귀찮은 햇병아리가 없다는 뜻이다. 알아서 자기 장구류를 고쳐 매고 알아서 방탄을 자기 머리에 맞추어 조절한다. 원래 그래왔던 것 마냥 아무 주저 없이. 오래된 공장의 설비를 다시 켠 것처럼 케케묵은 먼지에 쌓여있던 기억들은 여전히 잘만 가동한다. 뚝딱뚝딱.


나는 운전병이었다. 간만에 수동 차를 운전하니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배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콤한 매연의 향과 거칠게 으르렁거리는 엔진 소리가 나를 그때로 다시 되돌린다. 다행히 내 몸은 아직 수동 기어의 조작감을 잃지 않고 있었다. 부드럽게 변속하고 달릴 때의 쾌감이란.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기 무섭게 3단 기어를 5단에 잘못 넣고 말았다. 역시 차는 오토미션이지.


예비군에 처음 가시는 분들께 알려드리겠다. 꼭 드라이기를 챙겨가길 바란다. 수건으로 몇 번 털면 보송해지던 빡빡이 시절과 다르게 이곳의 낡은 시설은 사회에서 잔뜩 자란 내 머리칼을 보송하게 말려주기에 역부족이었다. 꼭 챙기기 바란다. 꼭.


역류하는 물이 발 언저리로 차오르는 더러운 샤워장에서 샤워를 마치고 채 말리지 못한 머리로 침상에 눕는다. 모포는 참 신기하다. 여타 이불과는 다른 설명 못할 특유의 포근함이 모포에는 있다. 지친 몸을 달래듯 따스하게 몸을 감싼다.

생활관에 불이 꺼지고 가만히 천장을 들여다보았다. 입대 첫날밤이 생각났다. 그리고 전역 전 마지막날 밤이 생각났다. 아마 나는 그 두 장면 모두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스쳐가는 그저 그런 시간이 아니라 내 인생이라는 굵은 거목에 아로새겨진 깊은 홈이었다. 나는 가만히 천장을 응시하며 그 틈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쉽게 잠이 들지 않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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