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침번 2번 초는 안 좋은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너무 피곤하다. 아니 근데 원래 예비군도 불침번하는 거야? 또 나만 몰랐지?
PX를 여태껏 못 가다가 1시간만 열어준다길래 가보았다. 이지덤 뷰티, 그리고 동생이 부탁한 로카티를 사기 위해서였다. 근데 웬걸 PX가 코딱지만 하다. 운전병으로 복무를 하면서 수없이 많은 부대의 PX를 가보았지만 이렇게 작은 PX는 처음 본다.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왔다.
한국인은 참 특이하다. 어딘가 잘못된 게 있어도 남들이 다 그렇게 하고 있다면 잘못된 걸 그대로 따라 한다. 튀어 보이기 싫어서겠지. 나 역시 그런 성격이긴 하다. 하지만 왜 식기통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거꾸로 꽂는 건지는 도통 이해가 가질 않는다. 덕분에 식사를 할 때마다 거꾸로 꽂힌 식기들을 입이 닿는 부분을 손으로 집어야 한다. 개중에는 매너 없는 누군가가 괜히 손으로 만지작거린 식기도 있다. 제대로만 꽂아놓는다면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이다. 이해가 안 간다.
골뱅이 소면에 가리비를 넣었다. 이런 건 처음 보는데 당연히 맛은 좋다. 가리비가 두툼한 게 아주 실하다. 아무래도 골뱅이 쪽이 더 취향이긴 하지만.
군부대 안에 있으면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핸드폰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도 그건 똑같다. 시장 가판대에 널어진 고등어처럼 누워 하루종일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물론 집에서도 다를 건 없지만 아무튼 다르다. 이곳은 시간은 좀 더 길고 농밀하게 흐른다. 아무튼 다르다.
집에서 책을 챙겨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액정만 쳐다보느라 시큰해진 눈을 환기시켜 주기에 아주 적당하다. 훈련소 시절 생각도 나고 여러모로 좋다. 느리고 농밀한 이곳의 시간에선 독서가 TPO에 맞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읽는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 읽은 건 군대 안에서였다. 따분한 훈련소 격리 기간에 그의 수필은 많은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 예비군의 신분으로 하루키의 책을 읽다니 기분이 무척 묘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예나 지금이나 그의 문장은 내 삶의 위로가 된다. 틀림없이 말이다.
예비군 부대 마크를 떼니 그 아래 붙어있던 이병 약장을 발견했다. 초심을 잃지 말라고 내가 상병이 됐을 때 후임들이 붙여준 것이었다. 부끄러워 얼른 원래 부대 마크를 이병 약장 위로 붙인다.
초심이라. 그 단어가 생경하게 느껴진다. 지금의 나는 그때와 많이 달라졌을까?
더러운 세면장과 냄새나는 화장실, 지루한 일과와 덥고 불편한 군복. 1년 반이 지나 다시 마주한 그것들은 추억의 보정이 이루어졌음을 감안하더라도 결코 좋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나는 아직 답답한 사회의 공기가 더 좋다. 하지만 과거에 두고 온 내 군생활의 기억을 어루만지는 건 무척 뜻깊은 일임은 분명했다.
내 군생활이 이야기로 쓰여진다면 예비군 훈련은 분명 에필로그에 속하겠지. 물론 이야기로 엮을 만큼 내 군생활이 대단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것은 내 인생의 목차에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이야기임에는 틀림없었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오직 나만이 출연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하나하나가 그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참으로 잔잔하면서 울림이 큰 에필로그 아닌가.
다시 입대하는 건 사양이지만 그래도 가끔. 아주 가끔은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생각 없이, 농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천천히 익어가고 싶다. 그런 이야기다. 나의 군생활은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