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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네는 식당 하지 마라. 그냥 하지 마 이 XXX야!

<더 베어> 리뷰

by 소려











위기


요즘 극장에 볼 영화가 없습니다. 마지막 영화 리뷰를 한 지는 1달이 되어가고요. 베놈 3편 줄거리를 보니 리뷰를 했으면 재미는 있었겠지만 그 정도로 제15,000원을 태우기엔 제 지갑 사정이 너무나도 비루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처음으로 드라마 리뷰를 한번 해볼까 합니다. 저는 평소에 드라마를 잘 보지 않습니다. 유명한 것만 봤어요. <더 글로리>, <오징어 게임>, <브레이킹 배드>, <기묘한 이야기> 등등 뭔 느낌인지 아시겠죠? 근데 그런 놈이 무슨 드라마를 리뷰 하냐고요? 저희 집 앞 냉면집에서는 겨울에 붕어빵을 팝니다. 까딱하면 죽게 생겼는데 장르고 나발이고 가릴 게 어디 있습니까. 돈 되면 하는 거지. 자, 시작해 봅시다.






위플래쉬 요리. ver


이 드라마를 한 줄로 요약하기에 아주 적절한 표현입니다. 꿈을 향한 열망, 광기, 그리고 무너지는 한 인간의 삶. 영화 <위플래쉬>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실제 요식업에 종사하던 분들은 트라우마가 되살아나는 기분이라 표현할 정도로 리얼하게 주방의 모습을 담아내었습니다. 요식업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너무 과장한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제 부모님이 요식업을 하셨는데요. 이거 과장 아닙니다. 드라마엔 돈통에서 돈 훔치는 알바라던가, 고객이랑 욕하면서 싸우는 직원이라던가, 가게 안에서 난동 부리는 배달 기사 같은 건 안 나오잖아요? 언제나 현실이 더 시궁창인 법입니다 여러분.







살면서 본 매체 중에 욕이 가장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모든 인물의 대사에 “FUCK”이라는 단어가 추임새처럼 숨 쉬듯이 쓰이고 듣고 있다 보면 영어임에도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로 욕이 많이 나옵니다. 이것보다 더 한 건 롤 채팅방정도 있겠네요. 이러한 특징은 빠르고, 정신없고, 난장판인 이 드라마의 템포와 함께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냅니다. 주방에서 일하는 장면 30분만 봐도 질려버리는 느낌입니다. 내가 저 주방 한복판에 서있는 것 같은 생동감과 더불어 피로감까지 같이 몰려와 나까지 피폐하게 만듭니다.






캐릭터


캐릭터는 이 드라마의 광기를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그릇입니다. 폭언과 욕설이 난무하는 광란의 현장에서도 캐릭터들의 개성과 매력이 뿌리를 깊게 내린 나무처럼 굳건합니다. 사실 하나하나 보면 다 미친놈입니다. 처음엔 시드니가 그나마 정상인 같지만 갈수록 얘도 미쳐갑니다. 모두가 엉망진창이지만 그래서 광기를 향해 치달리는 그 과정이 너무 재밌습니다. 비유하자면 센 불에 매콤하게 볶은 제육볶음 같습니다. 재료 하나하나 개성도 강한데 그걸 정신없이 활활 타오르는 팬 위에 서 달달 볶죠. 결과적으로 맛은 끝내줍니다. 그런 재미가 있는 드라마입니다. <더 베어>의 미덕은 광기입니다.






리치


드라마를 본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겠지만 가장 매력 있는 캐릭터는 주인공의 사촌 ‘리치’였습니다. 시즌 1 때만 하더라도 화면에 나올 때마다 짜증만 났던 캐릭터였는데 시즌 2에 돌입하고 나선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파인 다이닝 서버를 체험하면서 직업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도 성장을 하는 모습은 마치 소년 만화 같은 감성마저 느껴졌습니다. 원피스의 ‘2년 후’ 같은 느낌이었죠.

이 모든 건 배우의 훌륭한 연기력이 뒷받침된 덕이었겠죠. 아니나 다를까 에미상 남우조연상을 2번 받고 다른 시상식에서도 크게 주목받고 있더군요. 여러모로 <브레이킹 배드>가 겹쳐 보입니다.






음식


음식이 주제인 작품이지만 메뉴 자체가 주요하게 다뤄지진 않습니다. 보통 요리를 소재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라면 어릴 적 추억이 담긴 메뉴라던가, 함께 고민하고 어려움을 넘어 끝내 개발한 메뉴가 좋은 반응을 얻는다던가 하는 클리셰가 있잖아요? 이 드라마엔 그런 게 적습니다. 시즌 2에선 파인다이닝 식당 개업을 준비하면서 메뉴가 비중 있게 다뤄지긴 했었죠. 근데 시즌 3가 되자마자 미슐랭을 따려면 메뉴를 매일 바꿔야 한다며 시즌 2 내내 고생해서 개발한 메뉴들을 싹 다 폐기해 버립니다. 그래서 장르적 쾌감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이 점이 드라마의 가장 큰 호불호 요소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네요. <더 베어>는 명백한 ‘휴먼 드라마’입니다.






불친절


시끄럽고 난폭하고 정신 사나운 데에 이어 이 드라마는 불친절하기까지 합니다. 중요한 대사가 너무 빨리 지나가 나중에 다시 돌려봤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인물에 대해 묘사만 할 뿐 구체적인 행동 원인을 제시하지 않기도 합니다(카르멘의 어머니). 잘 써진 설명서를 읽는 게 아니라 대충 흩뿌려놓은 퍼즐을 맞추는 기분으로 드라마를 보아야 했습니다. 심지어 몇몇 조각은 없는 채로요. 그래서 처음엔 집중도 잘 안되고 짜증도 났습니다. 뭔 말인지 알아먹지도 못하겠는데 지들끼리는 또 핏대를 세워가며 서로를 향해 저주를 퍼붓고 있죠. 아주 환장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불친절함을 어느새 받아들이고 하나 하니 세세하게 이해하려 하기보다 분위기에 몸을 맡기고 흐름에 녹아들다 보면 여타 작품에선 느낄 수 없는 독특하고 중독적인 매력을 느끼게 될 겁니다. 그 순간부턴 ‘다음화 재생’ 버튼을 즉시 누르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카르멘


여기 등장인물들이 전부 돌아있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최고 미친놈은 역시 카르멘입니다. 은은하게 돌아있는 눈 좀 보세요. 우리는 현실에서도 리치보단 카르멘 같은 사람들을 더욱 경계해야 합니다.

시즌 1 오프닝에서도 나왔듯이 카르멘은 자신의 내면 즉, ‘곰’과 마주합니다. 제어할 수 없는 거친 야성이 그의 내면에 잠들어있죠. 그 야성은 가족에서 비롯된 사랑의 결핍으로 시작하여 비뚤어진 꿈과 광기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고 형의 죽음으로 인해 잠에서 깨어납니다. 이 드라마에선 너무나 많은 사건과, 인물과, 감정이 부딪히고 폭발합니다. 하지만 그 중심 속에서 카르멘만이 항상 고독하게 스스로를 우리에 가두어 놓죠. 그는 우리에 갇힌 곰을 제어하지 못합니다. 냉장고에 갇히자 그는 숨기고 있던 이빨을 드러내고 발톱을 마구 휘두릅니다. 곰은 카르멘이었습니다.






꿈과 열정


드라마에서 가장 제 마음을 건드렸던 장면은 시즌 3 중 1화, 카르멘의 회상 장면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카르멘이 심리적으로 끝까지 내몰림 상태에서 만든 음식을 시드니가 먹는 장면입니다. 광기로 점철된 꿈이 어떤 결과를 몰고 오는지 우리는 잘 압니다. 궤양, 공황 장애, 그리고 악몽. 카르멘은 원점을 어느샌가 놓치고 다른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 만들어낸 음식이, 곰이 만들어낸 음식이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고 또 다른 꿈을 제시합니다.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유산’입니다. 스스로의 유산을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카르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꿈이 되었습니다. 비극적이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그렇게까지 해야만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저는 반대입니다. 그 고통스러웠던 일조차 카르멘의 스스로의 힘이자 능력이 된 거죠. 그의 힘은 저주가 아니라 ‘유산’이 되었습니다. 이거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힘들더라도 꿈을 향해 달리는 이유가 아닐까요?






시드니


그렇기에 무너진 카르멘의 삶을 긍정해 줄 수 있는 건 시드니뿐입니다. 종착역은 클레어겠고요. 하지만 시즌 3가 끝난 시점에서 카르멘과 시드니의 관계는 양갈래 길에 도달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자신을 망가뜨린 옛 스승처럼 시드니를 망가뜨릴지도 모릅니다.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죠. 시즌 4가 더욱 기다려집니다.






마무리


시즌 1은 시작이었고 시즌 2는 장르적 재미가 풍부해 재미있었습니다. 시즌 3는 쾌감이 덜한 대신에 잔잔하고 깊었죠. 기승전결의 ‘승’까지 본 것 같습니다. 시즌 4가 나오고 봤어야 하는데 언제까지 기다리나 모르겠네요. 아무튼 자영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 극한직업에서 류승룡 아저씨가 그랬죠. 소상공인들 다 목숨 걸고 장사한다고. 그러니 소중한 목숨을 잃기 전에 조용히 월급이나 받아먹으면서 살자고요 우리. 아무튼 장사는 하지 말자 이겁니다. 아시겠어요? 하지 말라면 그냥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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