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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gu Oct 31. 2023

역대급 한파를 맞이한 군인의 비명

정수기 수도관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이 이야기는 2022.01.17, 공군 조리병(상병 5호봉)으로 복무하고 있을 때다.

당시 브런치 작가를 지원했지만 되지 못했고, 이제야 글을 올린다.

조리병은 병사들의 아침을 위해 새벽에 일어나 근무를 나간다. 막내는 새벽 5시, 고참은 새벽 6시다.



5:30. 기상

부스스 일어나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창문을 보니 오늘따라 유난히 추워 보였다. 아직도 뜨지 않은 해가 원망스러웠다. 평온하게 자는 옆 동기들을 부러워하며, 내 처지를 한탄하며 세면실로 갔다. 가볍게 얼굴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출근이다.



6:00. 식당에 도착했다.

날씨가 추웠다. 따뜻한 국물을 마시고 싶었다. 

'찰팍!'

응...?

밑을 보니 물 웅덩이가 나를 바라보며 음흉하게 웃었다. 고개를 천천히 올리니 아름다운 호수가 식당 전체에 퍼져있었다. 번개처럼 상황 파악이 됐다. 그러니까 어디선가 수도관이 터졌고, 물이 흘러 호수가 되었고, 난 후임들과 이 물 웅덩이를 2시간이든, 3시간이든 걸쳐서 치워야 하는 상황인 거다. 

'촤악!'

'추아악!'

물을 쓸어낸 자리는 새로운 물들이 자리를 채웠다. 와중에 히터도 잘 작동하지 않아 식당 공기가 아주 차갑게 얼어붙었다.


'지그 덕..'


무심코 밟은 물 웅덩이에서 나온 소리였다. 문과 가까운 곳은 벌써 얼기 시작했다. 홀 세팅(아침에 해야 하는 일)을 부랴부랴 끝내자 병사들이 식사를 하러 들어왔다. 물 웅덩이를 보자 그들의 표정이 굳어진다. 


'우리도 어쩔 수 없었어...'

 

새벽부터 힘을 모두 소진하고 터덜터덜 밥을 담았다. 그런데 밥이 이상하다. 뽀얀 하얀색인 밥의 색깔이 세월의 역풍을 맞은 듯 노랗게 늙어있었다. 후임들도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깨끗하게 씻은 밥을 대야에서 다시 지었다. 

짜증의 연속이다.

으아아악! 모르겠다.



7:00. 본격적인 식사

출근하기 전 밥을 먹기 위해 병사들이 몰려들었다. 컴플레인과 온갖 비난이 들려왔다. 역시 밥이 문제였다. 밥의 색깔이 누렇고, 냄새도 이상한 것이 도대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인지 궁금한 것이다. 먹을 수는 있다. 아까 따뜻한 닭국이랑 먹었는데 맛은 없었지만 지금 이렇게 살아있으니 먹어도 죽진 않을 것이다.

"지금 쌀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서 인지 이상한 건 맞다. 불안하신 분들은 먹지 않으셔도 된다"

말을 복기해 봤는데, 참 이상한 말을 한 것 같다. 밥을 먹으러 온 사람들에게 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다니...



8:00 홀 마무리

정신없이 홀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시 생각났다. 식당엔 아직 큰 호수가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까 분명 쓸었지만 어디선가 다시 보충되었다. 간부님이 오시고 원인을 살펴보시더니 정수기로 불렀다. 정수기의 아주 얇은 수도관에서 물이 졸졸졸 나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물이 호수와 연결되어 있었다.

하...

허탈하면서도 저런 조만한 녀석이  일을 했다 생각하니 기특했다. 아주 기특해서 당장이라도 조각내주고 싶었다. 후임들의 사자후를 들으며 물을 쓸었고, 그렇게 군바리의 평범한 하루가 지나갔다. 




2년 전에 쓴 글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끔찍했던 군 생활이 모두 지났다니. 아직도 미묘한 뿌듯함이 남아있다. 군대 가는 친구들을 봐도 아직은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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