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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gu Oct 31. 2023

프랑스 아이들의 아비투스

파리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느꼈던 감정들




아비투스(프랑스어: habitus)는 인간 행위를 상징하는 무의식적 성향을 뜻하는 단어이다. 교육 사회학에선 특정한 환경으로 형성된 성향 및 사고, 인지 등 행동 체계를 의미한다.

아비투스적 문화적 자본이라 함은 그 계층에서 누릴 수 있는 실체 문화자본을 말한다.






19.10.2023 

파리에 도착했다. 여유와 빵 냄새가 가득할 것 같던 파리는 지린 내와 비위생적인 화장실로 맞이했다. 머릿속에 있던 환상이 깨진 상태에서 곧장 루브르 박물관 역으로 향했다.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은 꼭 방문해야 할 장소였다. 어릴 적부터 미술 작품과 그에 담긴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수행평가에선 각종 미술 작품들을 녹여서 스토리를 짜거나 보고서를 쓰곤 했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윌리앙 아돌프 부그로, 오르세미술관, 1850년)

루브르와 오르세는 교환학생을 하고 있는 나에게 공짜 티켓을 주었다. EU국의 학생이라면 공짜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오르세 미술관이 첫 방문지였다. 오디오 투어 기기를 받고 미술관을 걷기 시작했다. 모네, 부그로, 마네, 르누아르 등 거장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책에서만 봐야 했던 작품들을 보기 시작하자 마음이 두근거렸다.


미술관을 걷다 보면 견학하러 온 어린아이들, 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박물관으로 현장체험학습을 갈 때면 항상 종이에 무언가를 써오도록 시키셨다. 자세히 보니 이 어린 친구들도 별 다를 게 없었다. 똑같이 종이를 들고 이리저리 바삐 돌아다녔다. 처음엔 이렇게 생각했다.

'다 똑같구나. 아무리 좋은 박물관에 와도 어릴 땐 모르지'


학생들은 스케치북을 들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거장의 작품을 모방하는 학생, 의자를 두고 정물화를 그리는 학생, 미술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을 스케치하는 학생. 미술 하는 친구들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문득 알 수 없는 찌릿함이 뚫고 지나갔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학생들


미술관의 전경을 다시 봤다. 많은 학생들이 다양한 표정을 지으며 미술 작품 앞에 서있었다. 그것이 숙제처럼 느껴지든, 아름답게 느껴지든, 공부처럼 느껴지든, 아무튼 학생들은 미술 작품 앞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느껴야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저 듣고 보는 것만으로 학생들은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있었다. 손만 뻗으면 모네와 마네의 그림이, 각종 세계에서 온 미술 작품들을 볼 수 있으며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원하면 앉아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했다.

루브르 박물관은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힘을 가진 자가 욕심쟁이처럼 작품들을 모아놓은 곳 같았다. 전 세계, 다양한 시대에 제작된 작품들이 한 곳에 모여있었다.


루브르 박물관을 돌아다니며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해선 작품의 크기에 압도됐다. 본 적도 없는 크기의 작품이 엄청난 퀄리티로 제작되어 액자에 걸려있었다. 그리고 프랑스의 학생들은 작품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어린 친구들도 열심히 설명을 들으며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순간 오르세 미술관에서 느꼈던 감정이 다시 꿈틀거렸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억울하기도 했고, 미래 세대에게 미안하기도 했으며, 질투심이 차올랐다.


분명 한국에서도 박물관과 미술관을 가며 경험을 쌓았을 것이다. 우리 교육 시스템도 학생들의 교양을 쌓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접할 수 있는 문화재의 종류, 크기, 작가, 이야기의 깊이가 달랐다. 한마디로 프랑스 학생과 한국 학생의 아비투스적 문화자본이 너무 달랐다.


한국의 것이 더 못나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필자가 가졌던 아비투스와 눈앞에 있는 학생들의 아비투스가 너무나 달랐구나를 깨달았을 뿐이다. 



밀로의 비너스, 루브르 박물관, 기원전 130년



21.10.2023

파리에서 돌아왔다.







국제 비즈니스 수업을 친구와 들으면서 파리 미술관에 대해 이야기했다.

친구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학생들이 누리고 있던 문화적 풍요가 너무 부러웠고 즐거워 보였다고. 미술 작품을 조금씩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들의 아비투스가 부러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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