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픽셀

by 따개비

망원렌즈라고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에 아날로그 카메라로 자연을 담기 위해서 꼭 필요했던 시절이 있었다. 운이 좋게도 사진 취미를 가진 아빠가 있어서 나는 증명사진도 니콘 카메라로 집에서 촬영하는 호사를 누렸다. 당시 나는 집에 있는 걸 좋아했다. 어린 시절 나는 체력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승부욕은 있어서 에너지에 넘치는 일들을 하다가 종종 번아웃이 오곤 했다. 어릴 때 기억을 더듬어보면 유치원도, 학교도 아주 멀리 다녔다. 덕분에 오가는 길에 나는 사색을 많이 하는 편이었고, 그렇게 관찰한 잔잔한 풍경들은 벗이 되었다.


큰 살림을 맡아 관리하셔야 했던 어머닌 하교 후 집에 계실 때보다 아닐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서 별명이 악바리였다. 나의 연약한 부분을 드러날까 봐 애써 감춘 것과, 위아래 남자 형제 사이에서 생존하기 위해 아무도 권하지 않은 갑옷을 스스로 입고 자랐다. 하지만 그런 투쟁적인 자세가 때로 몸을 아프게도 했다. 유치원 때 심한 폐렴으로 꿨던 악몽도 여전히 생생하고, 홍역과 수두로 초등학교를 장기 결석한 적도 있었다. 운동회에서 릴레이 달리기 대표를 하다가 넘어져 큰 찰과상을 입은 흉터도 여전히 선명하다.


40이 넘어 중년이 되고 나는 깨달았다. 인생에는 각자 타고난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그 에너지를 계량하지 못한 채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활동을 하며 지내 온 것 같았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고급 카메라에 담긴 내 모습은 그다지 자연스러운 표정이 없었다. 여행 오면 힘들어서 집에 가고 싶은데 볕드는 천마총 앞에서 사진을 찍는 아빠가 얄밉기도 했다. 산과 들판을 렌즈에 담고, 가족의 일상을 열심히 촬영하시는 이유를 그때는 몰랐지만 어느 순간 내가 그 모습을 닮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시점이 나의 에너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인 때와 맞물린다.


땅과 하늘의 경계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작품이다. 바람이 밀어서 만든 구름, 생각들 틈에 숨구멍처럼 하늘 한가운데 열린 자리, 건초 더미들 모두 달려온 시간을 치유하고 거친 숨들을 쉬게 하기에 충분한 휴식처이다.

여전히 대자연은 우리가 렌즈에 담기가 미안할 정도로 크고 아름답지만, 픽셀 속에서만 그 가치를 해석하고 기억하는 인간이기에 오늘도 빛을 이해하기보다 그저 빛의 자리에 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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