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아이가 하나 있다. 어쩌면 나에겐 딸이지만 글선생님이기도 하다. 아이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혼자 자란 아이라 어릴 때부터 책을 친구 삼아 지냈고,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혼자 읽던 책을 엄마가 다시 읽어주기를 항상 졸랐다. 고단한데 밥도 못 먹고 무릎에 앉혀 책을 읽어주다 보면 목도 아팠지만 아이가 원했던 것은 이미 아는 책 내용이 아닌 신체적 밀착이었던 것 같다. 내가 하던 일은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이의 입장에서 책이란 지치고 배고픈 엄마를 합리적으로 묶어둘 수 있는 도구였던 것이다. 하루 종일 떨어져 있던 아이가 반갑게 엄마를 맞이하면서 내 무릎을 방석 삼아 밀착할 수 있는 최고의 휴식처이자 그리움을 채우는 전략이었던 것이었다.
사춘기가 되자 아이의 전략은 보다 생존적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한국에는 급식이 있지만 도시락을 싸는 이곳은 엄마에게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과거에 비해 한식이 대중적이라 해도 특유의 향 때문에 메뉴가 제한적이다. 고등으로 올라오면서 학생들은 카페테리아에서 서서 식사를 하는데 한국 음식은 서서 먹기 편한 게 많지 않다. 학생 수에 비해 식당 수용공간이 충분치 못하다 보니 대부분의 아이들은 간편식이나 근처 플라자에서 패스트푸드로 해결하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대한민국 엄마는 밥 심의 중요성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작년 9월에 고등 입학과 함께 학교생활을 익히고 적응하느라 애쓰는 아이를 위해 과감하게 집에 와서 밥을 먹게 허락을 했다. 사실 그게 가능한 게 여기는 점심시간의 외출이 가능하고 그 시간도 무려 1시간이 넘는다. 게다가 겨울엔 체감온도가 -20~-30도까지 떨어지는 일도 다반사라 교실(homeroom)이 없는 강의실 생활을 하는 이곳 고등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갈 곳이 별로 없다. 집이 가까운 아이들은 대부분 집에 와서 밥을 먹는 풍경이 흔하다. 다행스럽게도 학교-집이 도보 10분 거리인 아이는 점심시간에 집으로 온다.
나에게는 저녁밥을 못 먹고 무릎에 앉아 끝없이 책을 읽어주던 시간이 이제는 삼순이 식도락 뒷바라지로 역할이 바꼈다. 한국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지만 아침을 잘 먹지 못하고 가는데, 이국 땅에서도 엄마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은 밥상을 차리는 일인 것 같다. 나는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행인 게 빨리 만드는 재주는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곳은 모든 것을 집에서 만들어야 하는 아시안 인프라가 부족한 조용한 백인마을이다. 눈이 많이 와서 길이 미끄러울 때는 점심시간에 데리러 가기도 하고, 짧은 거리를 네 번씩 오가는 일도 많지만 그 덕분에 요리가 많이 는 것 같다. 3-4가지를 한 번에 운영할 수 있으니 역시 세상은 이가 없으면 잇몸이고, 사람 사는 곳의 모습은 다 비슷한 것 같다.
어릴 적 아이가 동화책 스토리를 양식 삼아 엄마와 교감을 했다면, 하루 세끼 엄마가 만든 음식만 먹고 지내면서 아이는 또 다른 사랑을 채우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