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질 않는다.
준비하던 일도 만족스러운 결과로 마무리했고, 미뤄왔던 일들도 차분히 하나씩 시작하기 시작했으며, 요 근래 뜸했던 지인들과도 연락해서 약속을 잡고 이제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고 마음에 걸릴게 하나 없이 지내고 있는데, 잠이 오질 않는다.
출장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던 길에 한숨 잤으면 하는 피곤함과 노곤함이 오길래, 오늘은 애초부터 곯아떨어질 줄 알았는데 벌써 자정이 넘었다. (푹 자고 싶어서 퇴근하자마자 반신욕부터 했다.)
내 오랜 경험상으로는 아마 1~2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것이 분명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늦게 자더라도 일어나는 시간은 거의 일정하다는 것이다.
나는 보통 신경 쓰이는 일이 있거나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으면 이렇게 가벼운 수면 장애를 겪곤 한다.
이걸 해결하는 방법은 꽤나 단순하다. 제일 편한 잠옷을 골라 입고 손에 항상 쥐고 있던 핸드폰을 내 몸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트려 놓는다. 최소한의 조명만을 켜놓고 나서 잠들 때까지 항상 곁에 두는 텔레비전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눌러 화면을 꺼버리곤 멀리 치워놓는다. 잠들 때까지 무의식적으로 틀어놓는 음악도 모두 다 없애버린다.
그러고 나면 거실 한쪽에서 혼자만 본인의 역할을 수행해 내는 스탠딩 조명과 그 옆에 오도카니 소파에 앉아 멍 때리고 있는 나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보통 나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소파에 기대 있거나
신경 쓰이는 일들을 하나씩 떠올리면서 해결방안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잠을 못 이룰 만큼 신경 쓰이는 일이 없으니, 오늘은 아마도 소파 기대서 멍하게 앉아만 있을 듯하다. 그렇게 소파 위에서 잠을 위한 고행(?)을 겪고 나면, 슬며시 눈언저리부터 뻑뻑함이 조금씩 밀려 차오른다. 이때 어설프게 다시 핸드폰을 본다거나 텔레비전의 전원 버튼을 눌러버린다면 그간의 고생이 깃털처럼 훅 하고 날아가 버린다. 괜한 유혹을 참아내고 침실로 들어가서 익숙한 베개의 감촉을 느끼며 왼쪽을 향해 살짝 몸을 돌려 눕는다. 고개는 30도에서 45도 각도로 아래로 살짝 향하고 나머지 배게를 무릎 사이에 끼운 후 잘 때 내 곁을 지켜주는 공룡인형에 손을 얹고 나면 최적의 수면 자세가 된다. 그러면 잠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요란스러운 건 아니지만 가끔 잠이 오지 않을 때 수면을 취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가며 어떻게 해서는 잠을 찾으려는 내 여러 가지 시도 끝에 나온 방법이다. 거의 8~90퍼센트 잘 먹히긴 하지만 간혹 이 방법마저도 먹히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운명(?)이려니 하면서 겸허히 받아들이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밤을 새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럴 때 하는 일들을 보면 되게 사소한 일들로 시간을 낭비하면서 보낸다.
배민 어플을 보면서 곧 다가올 주말에 시켜먹을 음식을 골라본다던가, 치닝디핑(실내 턱걸이 운동기구)을 사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유튜브 동영상을 본다던가, 한 달 만에 다리 찢기 성공하는 동영상을 찾아서 본다던가..
뭐 이런 것들로 시간을 보내는데 쓰고 나면 제풀에 지쳐서 그런지 새벽 4시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또 그때쯤
눈이 슬슬 감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때는 괜한 오기가 생겨서 더 안 자고 버텨보려 하지만 나의 의식주를 유지하기 위하여는 근로생활을 꾸준히 해야 하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침실로 향한다.
조용한 싸움은 이렇게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