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2/2

다시 대학병원으로

by 무연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다시 가져간 조직검사 블록을 대학병원에 가지고 갔다.

최종적인 결과는 암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생각하며 과거를 복기하면 한도 끝도 없다는 건 알지만

자꾸 지나간 일을 가정하며 '이랬으면 어땠을까'라는 마음을 한동안 떨치지 못했다.


더 이상 스스로 가라앉지 않고 내 모든 상황에 감사한 마음을 갖기로 했다.


이 정도에 발견된 거에 감사하고,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내 공백을 채워주는 직장동료들에게 감사하기로 했다.


수술날짜가 결정되고는 모든 게 계획대로 흘러갔다. 수술 전 MRI와 CT촬영을 별다른 부작용 없이 잘 받았고,

수술 일정이 가장 바쁜 시기와 겹치지 않았고, 미처 마무리되지 못한 일은 팀장님의 도움을 받아 모든 게 순조롭게 잘 흘러갔다.


수술날짜가 잡히기 전까지는 하루하루가 더디고 지겨웠는데 막상 수술날짜를 받고 나니 모든 게 순식간에 지나갔다. 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 것인지, 빨리 이 상황이 보내버리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 듯했다.


금요일 수술이라 하루 전 목요일에 입원을 해야 했다. 며칠 동안 입원을 할지는 모르나 그래도 오랫동안 집을 비울 수도 있어서 대청소에 돌입했다. 안 입는 옷도 버리고, 물건도 버리고, 냉장고의 음식들도 새로 채워 넣지 않고 최대한 비워냈다. 병원에 가지고 갈 생활용품들을 미니 캐리어에 차곡차곡 담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즐거운 여행을 다녀오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인터넷에 입원생활 꿀팁을 검색해 가며 필요한 용품을 주문했다. 나름 이 과정이 재밌기도 했다.


막상 입원 당일이 되니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입원 전 수술 위치 표시를 위해 초음파실에 들렀고, 그 후 곧바로 입원을 했다. 병동에 도착하니 간호사선생님께서 5인실의 창가 쪽으로 자리를 주셨다. 넓은 자리라 꽤 맘에 들었다. 편한 입원생활을 위해 준비한 나름의 준비물들을 꺼내면서 오후 시간을 보냈다.

입원하는 동안 여유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책도 두 권 정도 챙겨갔지만, 잘 읽히지는 않았다. 괜찮은 것 같아도 내심 긴장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처음 안내받은 수술시간은 오전 11시였는데, 중간 전달과정에서 미스가 있었는지 혹은 스케줄 변동이 있었는지 오후 2시 30분이라고 안내를 다시 받았다. 젊은 사람일수록 수술시간이 늦어진다는 말은 얼핏 듣긴 했는데 내가 수술 마지막 시간이라는 걸 보면 내가 가장 나이가 어린 환자였나 보다. 결국 수술은 4시가 다 되어서야 받을 수 있었다.


수술 전 링거도 다리 쪽에 하나 더 추가해서 거동이 조금 불편해졌다. 금식의 배고픔과 기다리는 지겨움에 서서히 지쳐갈 때쯤 수술 전 항생제 투여를 위해 간호사 한분이 오셨다.

팔에 있는 링거에 주사를 놔주셨는데 항생제를 맞자마자 토기가 심하게 올라왔다. 휴지통을 붙들고 한참 동안 헛구역질을 했다. 물론 먹은 게 없어서 나오는 건 위액뿐이었다.

수술 전 날 주삿바늘의 고통을 참아가며 테스트받았던 항생제였는데 토하기까지 하다니, 수술 전에 대차게 푸닥거리 한번 하는구나 했다.


서너 번 헛구역질을 하고 나니 속이 괜찮아졌다. 혹시 이렇게 토한 거 때문 거 수술이 딜레이 되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수술장으로 향하였다.


수술장으로 향하는 길에 뭔가 많은 생각이 들고 생경한 감정이 생기지 않을까 했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다만 수술 끝나고 팔, 다리에 꽂혀 있는 링거를 빼내고 빨리 밥을 먹고 싶을 뿐이었다.



몽롱한 정신 속에 처음 드는 생각은 '내가 혹시라도 수술 중에 말실수했으려나?'와

다리 한쪽에 빠진 링거를 보고 '이제 편하게 걸을 수 있겠군'이었다.


수면마취와 국소마취로 진행된 수술 덕분에 저녁식사는 순조롭게 바로 할 수 있었다.

가슴 한편에 삐져나와있는 배액관을 보고 수술을 받았다는 실감이 났다.

수술을 받은 당일 저녁 몸이 무겁고 뻐근했지만 처방받은 진통제 덕분인지 아직 덜 풀린 마취 기운인지 불편하거나 아프진 않았다. 수술 후 통증이 어느 정도로 느껴지냐는 간호사의 질문에 제일 낮은 강도의 수치를 선택해서 대답했다.

혹시나 마취가 풀려 아프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퇴원 할 때까지 수술부위의 특별한 고통은 없었고 오히려 드레싱 할 때 뜯어내는 의료용 테이프와 배액관 소독이 따끔따끔했을 뿐이다.



배액관이 30ml 미만이 되면 퇴원할 가능성이 높다는 글을 보았다. 수술이 끝나고 저녁밥을 먹고 그다음 날 아침을 먹을 때도 배액관에 피 몇 방울 바닥에 고여만 있을 뿐 5ml도 안 되는 것을 보았다. 이러다가 바로 퇴원하는 거 아니야 라는 착각을 할 때쯤 드레싱을 순서가 되어 받으러 갔다.

뜯어내는 테이프가 따가웠고 배액관을 꽂아놓은 쪽 피부를 소독할 때는 몸이 움찔할만끔 따가웠다. 드레싱을 마치고 옷을 여미면서 눈에 들어온 배액관에는 많지는 않은 양이지만 순식간에 피가 배액통 밑바닥을 채웠다.

나의 흔들리는 시선이 느껴졌는지 간호사는 친절하게 드레싱 하는 과정에서 막혀있던 배액관의 길이 열리면서 고여있던 피가 빠진 거니 놀라지 말라며 설명해 주셨다.

혼자서 배액관에 피가 별로 고이지 않는 걸 보며 퇴원을 빨리 하겠다며 좋아했는데 막혀서 그랬다는 사실을 알고 조금은 기운이 빠졌었다.


목요일 오후에 입원하여 수술 위치를 표시하고 금요일 오후에 수술을 받고 토요일 점심 무렵 드레싱을 받았다.

그 사이에 팔에 있는 링거줄까지 제거했다. 활동은 편해졌으나 시간이 멈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수술이 끝난 후의 병원 생활은 굉장히 지루하고 또 지루했다. 배액관의 눈금을 보았다. 당장 퇴원해도 될 거 같다는 굉장히 주관적이며 제멋대로인 판단을 내렸다. 물론 아무 의미 없었다. 지루한 만큼 수술이 잘되고 회복이 잘 되고 있다는 신호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일요일 오전에 받은 드레싱은 토요일에 처음 받았을 때보다는 조금 덜 따끔거렸다. 수술받은 쪽의 뻐근함은 거의 다 사라졌다. 몸이 편해질수록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병원 내 산책도 하고, 계단도 타고, 이것저것 다 해봤지만 무료한 시간을 잘 흘러가지 않았다.

일요일 오후가 이리 더디 가는 건 살면서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요일 오후

월요일에 퇴원을 해도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술이 금요일이었으니, 퇴원은 빨라야 그다음 주인 화요일이나 수요일이 되지 않을까 했었는데 수술이 잘되었다는 말 다음으로 너무 기분 좋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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