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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땅을 밟다...1.

by 김석철



대공( 다이공)이라는, 소위 '보따리상'의 일원이 된 건 순전히 물귀신 같은 친구 녀석의 꼬드김 때문이었다. 팔랑귀 친구 녀석의 집요한 회유와 통사정에 방학기간에만 경험 삼아 해 본다고 나선 일이었지만, 세상살이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니다.


대련에서 인천항으로 주로 고춧가루와 참깨를 운반하는 일이었다.

팔랑귀 친구는 남이 돈 된다고 하면 오로지 자신의 감 하나에만 기댄 채 물 불 가리지 않고 무대뽀로 덤벼들고, 쫄딱 말아먹기도 밥먹듯이 하는 단세포 인간이다.

세상이 자기를 자꾸 속인다나 뭐라나.

이 단순무식한 친구가 끔뻑 신봉하는 정보원은 십중팔구 서민갑부 같은 티브이의 카더라 성공신화 프로그램이다.

돈 될 거 같으면 속닥하게 지들 일가친척끼리 소리 소문 없이 다 벌어먹지 머리에 총알 맞았다고 동네방네 외고패고 하겠냔 말이다. 우리 같은 소시민에게 돈 된다는 정보가 굴러들어 올 정도라면, 단물 다 빠진 끝물 아니면 막판 호구 잡으려는 작전세력의 농간일 확률이 농후하다. 하지만 이 친구에게 티브이는 하나님의 계시 이상의 절대 진리다.

스스로 제 보다 잘났다고 인정하는 사람의 말에는 머리 팍 수그리고 무조건 신봉, 반대의 경우에는 부모고 나발이고 마누라, 친구 할 것 없이 절대 무시다. 이쯤이면 안 망하는 게 비정상이지만, 똥고집을 그 누구도 꺾을 수가 없으니 다들 아예 입을 닫아버린다. 그런 친구가 인생 역전의 기회라며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고 우정에 읍소를 한 것이다.


초보 보따리상이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농산물을 주로 취급했지만, 위험을 조금 감수한다면 부피와 무게가 적게 나가는 품목도 심심챦게 다루게 된다.

중국은 마약류에 대해서는 노이로제 증세를 띨 정도로 엄격하고 예민하다. 자칫 영문도 모른 체 난감한 상황에 빠지는 경우도 왕왕 생긴다. 특히 여행객들은 각별히 조심을 해야 한다. 뱃삯 좀 아끼려고 괜한 부탁 들어줬다가 신세 망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잘 건조된 고춧가루에 물을 뿌린다. 그래야 잘 뭉쳐지고 압축이 잘 되어 많은 양을 운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도와 건조의 여부가 농산물 품질을 결정적으로 좌우지를 하는데, 물을 잔뜩 머금은 고춧가루가 운반 과정에서 변질을 하니 당연히 품질이 엉망으로 저하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 돈벌이를 위한 장난질이다.

잘 볶은 참깨를 압축기에 눌러 짜낸 순도 100%의 참기름 가공 공정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고서 인천항으로 운반을 했다.

꿀과 참기름은 애미 애비도 믿지 말라는데,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물 팔아 사기 친 일은 그야말로 모기발에 워커 수준의 놀라운 뻥튀기기 기술이 시전 된다. 순수 참기름이 한 단계만 거치면 장장 일곱 배로 불어난다. 돈 버는 재주 하나는 귀신 뺨을 친다.

가마득한 오래전 경험이라, 지금까지 그럴리는 없을 거라 확신은 한다.

인천항 입항의 몇 시간 전부터 각자의 가방을 복도에 한 줄로 죽 세워놓고 새치기를 막기 위해 웅크리고 앉아 무한 대기를 한다. 시간과 줄 서기의 싸움이다.

육지에 발을 디딛기가 무섭게 재빨리 셔틀버스에 짐을 욱여넣고 순서에 맞춰 통관심사대를 빠져나와야 한다. 산더미 같은 보따리 물품을 이고 지고 미친 듯이 달리고 밀친다. 돈,돈,돈이 달린다.

일반 승객이 다 빠져나가면, 짐과 다이공들로 북새통이 된 통관장에는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끌고 나오려는 사람들과 저지하는 세관직원들 간에 한바탕 숨 막히는 실랑이가 벌어진다. 넘으려는 자와 막아서는 자, 둘 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이지만 버겁고 치열한 건 매 마찬가지다.

규정 보다 한참을 넘어서는 짐의 무게는 당연히 통과가 안 되는 거지만, 사람이 사는 것, 다 요령이 있고 사바사바란게 있는 법이다. 적당히 눈 감아 주고 뒤로 인사치레 하고...뭐 다 그런 거다.
인천항 내의 거래처 상인들에게 물량을 넘기면 소변보고 오줌 털 시간도 없이 후닥닥 중국 편 배에 다시 올라야 한다. 아차 지체를 하는 순간 출국배표를 구하지 못해 꼼짝없이 일주일을 손가락 빨면서 입맛만 다셔야 한다. 입항과 다시 출항하기까지의 시간이 워낙 촉박하기에, 시간과 줄 서기는 다이공의 밥줄과 직결이 되는 치열한 전투다.

인천항의 야경이 아련히 멀어지는 깊은 밤,

어두운 밤바다에 점점이 박힌 도시의 불빛들을 바라보며 잠시 총성이 멎은 다이공의 하루는 기운다.

경쟁자이자 동료인 낯선 이방인들이 집보다 익숙한 객실에 모여들어 서로의 살을 부비며 잠이 든다.

아들 딸이 어쩌고 저쩌고... 살아가는 그저그런 얘기들이 자장가가 되어 고단한 삶을 재운다.



물귀신 친구 녀석에게 백두산 여행을 떠나겠노라 선언을 하니 아니나 다를까 펄쩍 뛰었다.

악착 같이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한량 같이 한가롭게 여행이라니. 그리고, 말도 한마디 통하지 않는 이국땅에서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나서는 '나 홀로 여행'이란 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짓인지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중국인들의 삶 속에 잠시만이라도 섞여보고 싶었다. 북한의 땅을 한 발 만이라도 생이 다하기 전에 꼭 밟아보고 싶었다.

떠나자, 이것저것 재다보면 꿈만 꾸다가 세월 다 보낼게 틀림없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돈 벌려고 짐짝을 챙기는 친구를 뒤로 한 채 대련역으로 발길을 옮겼다.
마침내 백두산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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