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비온
가로, 세로, 높이 각 1 M. 1루베다.
이 좁디좁은 1루베의 공간에 갇혀 온종일 허리 한번 못 펴고 쪼그려 앉아 생활하는 이들이 있다.
토사 유출이나 홍수시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강변이나 하천변의 경사지에 돌망태를 연결해 둔 것을 '매트리스'라고 하고, 도로변의 법면 붕괴나 사태를 막기 위해 돌멩이를 채워 넣어 겹겹이 쌓은 돌 축대를 '게비온'이라고 부른다.
이 게비온 덕분에 강원도 양양, 속초, 고성에서 밀양, 영종도, 양평, 다시 여수.... 제주도만 뺀 방방곡곡 구석구석을 다 다녀봤다. 태생적으로 역마살을 타고난 떠돌이 인생인 내게는 꿩 먹고 알 먹는 안성맞춤의 직업인 셈이었다.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대, 오로지 종이 지도 하나만 달랑 들고 초행길들을 어떻게 용케 잘 찾아다녔는지, 궁즉통이라고 막상 맞닥 뜨리면 죽이 되건 밥이 되건 답은 나오기 마련이다.
살면서 스스로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하고만 직업이 이 '게비온'이라는 작업이었다.
다른 여타의 일들은 대체로 피곤하고 힘에 부쳐 고생을 하는데, 게비온 작업은 어이없게도 '아파서' 못한다.
아마, 궂은날 무르팍에 찬바람이 팍팍 드는 것도 게비온 일 할 때 골병이 들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늘 드는 생각이지만, 노가다는 골병의 댓가로 먹고사는 직업임이 분명하다.
하루 벌어 처자식 먹여 살리고, 또 하루 벌어 노후 대책하고, 하루 벌어 돈 많은 의사들 먹여 살린다던 선배들의 넋두리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1 입방미터의 철망을 조립하는 것으로부터 작업은 시작된다. 철망을 안착시키면 그 속에 쪼그리고 앉아 돌멩이들을 테트리스 쌓기와 같은 방식으로 이빨을 맞춰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도로에서 보이는 전면부를 잘 쌓고 나면 남은 공간은 그냥 돌을 채워 넣기만 하면 된다. 이 단순한 테트리스 게임을 진짜배기 돌멩이를 가지고 종일 쪼그려 앉은 채 반복해서 한다.
딱새같이 구부정 불편한 자세로 허리 한번 제대로 못 펴고 쪼그려 앉아 종일을 버틴다는 것은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피곤한 건 차치하고, 일단 온 삭신이 쑤시고 아프니 정말이지 못 해 먹을 짓이다. 하지만, 극심한 아픔을 애써 참아내며 열심히 살아가는 1루베 속의 사람들은 오늘도 전국을 누비며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한다.
어쩌면, 타인의 골병, 한숨, 넋두리 위를 지르밟고서 당신의 자동차가, 그리고 인생이 내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픔과 동행한 게비온 덕분에, 방방곡곡을 떠돌며 인생 무대의 한 막장을 잘 놀아 보았다.
매트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