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다.
이 집안 권력의 정점이던 둘째 아들의 군입대는 그야말로 절호의 명분이었다. 오랜 시간 음으로 양으로 눈칫밥을 주던 성 여사의 구박이 노골화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 집의 둘째가 소심함에도 불구하고 나름 잘 나가던 장손을 잠재우고 당 순위 1위가 되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 평소 묻는 말 외에는 말 자체를 귀찮게 여기는 과묵을 넘어 횟간을 뒤집는 답답함 때문이었다.
나불나불 웬 종일 잠시도 입을 가만히 두지 않던 둘째의 질풍노도기는 묵언수행을 하는 수도승처럼 조용히, 그러나 모두를 질식시키는 전략을 들고 나왔다.
사실 부부싸움도 마찬가지지만, 입을 다물어 버리는 것만큼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은 없다.
성 여사의 친구들은 늘 조용조용 말이 없고 죽어버린 고추 같은 둘째를 미치도록 부러워했다.
누구는, 지 새끼는 누구를 뒈지게 패 지문이 닳도록 빌고 합의 보느라 돈은 돈대로 날려먹었다, 또 누구는, 대가리 피도 안 마른 년이 벌써부터 발라당 까져 가지고...에구, 내 팔자타령에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제 뱃속에서 난 자식들을 조리돌림 씹어댔다. 그리고 늘 마지막에 하는 말은 한결같았다.
"우짜면 너그 둘째는 저리도 얌전하고 애를 안먹이노?복 받은 년."
사춘기 사내놈들은 자고로 어디 가서 남 안 패는 것만 해도 효도하는 거라더니 그런 건가 싶은 게 홀몸으로 자식 둘을 건수 하는 성 여사에게 친구들의 넋두리는 큰 위로가 되기...는..개뿔! 너그가 보름만 같이 한 번 살아봐라 그런 말이 나오는지란 말로 쐐기를 박아버렸다.
입의 기능이라는 게 먹고, 말하고,뽀뽀하는 역할인데, 둘째의 쉼 없이 나불대던 입은 열다섯 살이 되던 어느 뜨거운 날, 너무나 뜨거운 날이어서 미처 잠그지 않고 빼꼼 열어 둔 문 때문에 헉하는 단말마를 끝으로 완전히 닫히고 말았다. 뽀뽀하는 입이 말하고 먹는 입을 눌러버린 날이었다.
그 뜨겁고도 어색한 날, 남친이 할 수 있는 거라곤 헛기침 두어 번 하면서 주섬주섬 바짓가랑이를 올리는 게 다였다.
결별한 아빠를 많이 닮은 둘째는 입과 동시에 시선도 닫고 방문도 닫았다. 굳게.
그 둘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엄마라는 호칭은 제가 알고 있는 언어에서는 지워진 듯했다.
"나 고양이 한 마리만 사 줘."
질식 직전에 몰렸던 성 여사가 까딱했으면, 나 털 알레르기 있어서 고양이는, 라고 말할 뻔했다.
꽝 방문이 닫히고 나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나 고양이털 알러지 있단 말야 목구멍에 걸어두었던 말을 흘려보낼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의 사단은 그 해가 수 십 년 만의 폭염이라며 온 언론에서 연일 대서특필을 하며 곧 지구가 어떻게 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던 무지 뜨거운 해였기 때문이었다.
성 여사의 여린 몸이 그 불같은 뜨거움을 견디기 힘들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