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복치와 나무늘보

by 김석철


나 잡아봐라~



생존에 관한 자연계 최대의 이변을 꼽는데 나무늘보와 개복치를 빼고서는 말이 되지 않는다.
다들 나름의 생존 전략이나 필요한 무기 한 둘 정도는 기본 장착을 하고 있는데, 나무늘보와 개복치는 도대체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여즉 멸종을 당하지 않고 개체를 유지한다는 자체만으로도 기적이다.

돌쇠 아재의 생존 전략은, 포식자 앞에서는 지문이 닳도록 손바닥 비비면서 팍 엎드리는 것이다. 힘도 빽도 없는 놈이 괜히 눈치없이 머리 쳐들다가는 한방에 훅 갈 수 있으니 그저 알아서 기는 게 최고다. 쥐 죽은 듯이 찌그러져있는 것, 앞서거나 뒤서지도 않고 딱 중간만 가는 것, 적게 먹고 가늘게 싸는 것...생존 전략이야 숫하게 많다. 눈 질끈 감고 비굴한 자의 자리에 붙으면, 삶이 평온해지는 법이다.

분에 고작 4미터를 이동하는 초초 굼벵이 나무늘보가 살아남는 비결이 돌쇠 아재와 꼭 닮았다. 돌쇠는 돌덩이도 소화시킬 수 있는 야무진 위장이라도 가졌지만, 순둥이 늘보는 배부르게 먹고도 소화를 못 시켜 굶어 죽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저주받은 몸뚱이가 틀림없다. 포식자에게 발각되지 않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 수단임에도 용케 종을 이어가는 나무늘보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야 한다.





예민함의 끝판왕, 요상하게 생긴 대표 생명체, 방어 무기라고는 거대한 떡대 꼴랑 하나. 개복치 얘기다.
나무늘보야 주야장천 납짝 엎드려있는 데다 동작이 하도 굼떠 포식자에게 들키지 않을 최소한의 생존 무기라도 있지, 개복치는 도대체 무슨 용빼는 재주로 3미터에 몸무게 1톤을 넘길 만큼 육중한 성체로 살아남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불가다.
짜리 몽땅한 체구에 꼬리지느러미조차 없어서 공격과 방어는 잼병인 대표적인 쪼랩이 살아남은 것과, 별 영양가 없는 해파리를 주식으로 하면서도 폭풍성장을 하는 것을 보면 생명의 신비에 감탄이 저절로 난다.



개복치 골격, 조류야?


내놓을만한 변변한 무기 하나 없이도 혹독한 생존의 무대에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한 나무늘보와 개복치, 빠릿빠릿하거나 얍삽함도 없고, 물려받은 손발톱도 없다. 아등바등 서두르지도 않는 것 같지만 오늘도 눅진하게 잘 살아내고 있다.
느리게 살아서 아름다운 생명체 나무늘보와 개복치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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