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이다. 고로 저항한다.
성포의 앞바다에는 해안선 둘레길이가 고작 4km 남짓의 여러모로 애매한 자그마한 섬이 파도에 몸을 싣고 있다.
이름대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섬 수도는 행정구역상으로는 통영시 용남면의 부속섬이지만, 생활권은 거제도의 성포다. 엄연히 상주 주민이 오래전부터 터를 잡고 있음에도 제 이름조차 없어 주소가 인접섬인 용남면 지도리에 얹혀있다. 지도의 선착장은 용남면의 원평, 수도는 거제의 성포다. 지척이지만 생활권 자체가 나뉘어 주민 간의 왕래가 없는 한 주소, 두 주민인 요상한 섬이 통영과 거제의 어정쩡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통영시 용남면 지도리 1-124번지
극도로 피하는 작업의뢰가 섬에서의 공사다.
물불 가리지 않고 미친 듯이 덤벼들었던 한창때에, 통영의 어떤 섬에 2박 3일 일정으로 타일시공을 떠났다가 갑작스러운 태풍과 기상 악화에 붙들려 졸지에 옴짝달싹 못하고 근 일주일 가까이를 파도만 대책 없이 바라본 적이 있었다.
장승포의 지심도에서의 경우는 더 얼척이 없었다. 타일 서너 장만 더 시공하면 깔끔하게 마무리가 되는 판에, 관광객을 잔뜩 태운 마지막 여객선은 빨리 가자고 우뢰와 같은 고동소리를 뿜어내며 성화를 부려댔다.
동백섬인 지심도의 옴팡한 선착장에서 수백 개의 눈총과 뱃사람들이 질러대는 고함소리로 좌불안석, 그야말로 모골이 송연한 게 진땀을 한 바가지나 쏟았었다.
애 먹었던 두 번의 경험 탓에 도서지역 작업은 회피 일 순위가 되고 말았다.
좁은 공간에서 함께 부대끼는 이틀 동안 귀에서 피가 날 것만 같았다. 일이고 나발이고 헤엄을 쳐서라도 섬을 탈출하고 싶었다.
두어 번 타 현장에서 함께 작업을 해 본 부부 업자의 걸레를 입에 문 듯한 쌍소리와 거북스러운 욕설 때문이었다.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내내 욕을 입에 달고 살았다. 조공을 하는 나이 지긋한 부인에게 하대를 하는 정도를 넘어 곁에서 지켜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윽박과 욕설이 거침없이 이어졌다. 피할 공간도 없고, 그렇다고 남의 부부간의 일에 팥이니 콩이니 입을 댈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여간 섬 하고 나와는 궁합이 진짜 아니다 싶은 게 입도가 후회막심했다.
참는 것도 한도가 있지 아무리 남의 부부간 일이라지만 둘만 일하는 것도 아닌데, 이틀째 오후에는 슬슬 속에서 심사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여차하면 터지기 직전이었다.
마감을 앞두고 시간이 촉박해지자 욕설이란 욕설은 다 튀어나오고 개차반도 그런 개차반이 없었다. 발기발기 찢긴 부인의 자존심에 민망함이 표정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남들도 있는데, 말 좀..."
"저 00년이 싸가지 없이 말하는 거 좀 보소. 디질라꼬 환장을 했나?"
중간중간에 친구지간인 가주도 말 좀 가려서 하라고 끼어들기도 했지만, 5초를 넘기지 못했다.
사색이 된 부인은 무안함과 쪽팔림에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를 모르고 당황하여 실수가 더 잦아졌다. 악순환이었다.
"에이, 니미 00! 이거 보자 보자 하니까 해도 너무하네. 여서 당신 혼자 일 하요?부부싸움 할라면 당신 집구석에서나 하지, 뭐 하는 짓꺼리요."
들고 있던 랭가망치를 냅다 바닥에 패대기치면서 버럭 큰소리를 질렀다. 급발진에 집주인, 업자부부가 순간 얼음장같이 굳었다.
내가 또 승질이라면 한 성질 하는 돌쇠아재다.
"나 같으면 마누라 노가다판에 델꼬 다니는 것도 미안해서 업고살겠다, 니미"
1.9톤, 8미터가량의 소형선박이 보슬보슬 흩날리는 빗속을 뚫고 수도를 벗어나 성포로 맹렬히 달아났다. 피차 뻘쭘한 서먹함을 싣고 뱃길 20분가량을 내달렸다.
"아짐, 저 양반 집에서도 저 지랄인교?"
비를 피해 조타실 구석에 몸을 말고 찌그러져 있는 부인의 모습이 마치 비 맞은 발바리 같았다. 무뢰배 남편의 눈으로는 진짜 개로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밖에서 새는 바가지, 집구석인들 안 새겠습니까? 저 양반 입은 저래도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더. 썽이 나도 때리지는 안 해예."
"이혼할 생각은 안해봤는교?"
"불쌍하다 아입니꺼!"
아, 스톡홀름아, 이 죽일 놈의 스톡홀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