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을 맛깔나게 부는 한량 형님이 있었다.
마산의 모 대학교 앞에서 전통찻집을 운영하는 형수님에게 얹혀사는 전문 백수였다.
고작 밥값이랍시고 하는 일이라곤, 새벽에 어시장에 나가 당일치 장사 식자재를 사다 주는 게 전부였다.
그리곤 웬 종일 빈둥거렸다. 그럼에도 정작 본인은 늘 바쁘다고 징징거렸다. 왜 바쁜지, 서울에서 처자를 떠나 혼자 생활할 때는 뭘 했는지 묻는 이도 없었고 본인 역시 입을 닫았지만 정치바닥의 시궁창 속에서 꽤나 오랜 세월 허우적거렸다는 사실은 암암리에 다들 알고 있었다. 애시당초 권모술수가 횡횡하는 바닥과는 어울릴 수가 없는 인물이 발을 디딜 곳은 아니었다.
체구는 왜소하지만, 잘 생긴 인물에 꽤나 좋은 학벌을 가지고도 맹탕 퍼질러 앉아 허구한 날 방바닥 치수나 재고 있으니, 형수님만을 뺀 주위의 시선은 늘 따가울 수밖에 없었다.
아는지 모르는지, 누가 뭐라든 형님은 늘 행복했다. 팔자 늘어진 백수 한량이지만 한편으론 딱 제 자리다 싶을 정도로 존재에 대한 이질감이 조금도 없었다.
형님의 자가용은, 대학가라 가뜩이나 주차가 어려운 판국에, 자그마치 2.5톤 트럭이었다.
꼴랑 가까운 시장에 가서 파나 고추 같은 푸성귀 몇 줌 사 오는 게 전부인 용도의 차가 2.5톤이다. 시장통, 대학가 둘 다 차 한 대 비집고 들어설 공간은 바늘을 세울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경차도 버거울 판에 무려 2.5톤이라니.
적어도 차라도 좀 바꾸라고 핀잔을 주면, 형님은 가챦은 표정으로 시큰둥하게 말했다.
"아무리 복잡해도 차 크다고 주차 못 한적 없고, 내 차 댈 자리는 있더라. 그리고, 누가 들이박아도 제 차가 깨지지 내 차는 까딱없고. 지들이 피해 다니지 내 차가 비켜날 일 없고."
적어도 시내에서 만큼은 버스를 빼면 천하무적이라고 두 돈 반 짜리 승용차를 싸고돌았다.
그렇다, 백수 형님의 내공은 뱁새인 우리가 입에 담을 수준이 못되었던 것이다.
타인의 시선, 관습, 평가 이딴 굴레에 속박을 당하지 않으니, 백수 생활도 어쩌면 그 누구보다 당당하고 행복했는지 모르겠다.
가끔 맘 내키면 뜬금없이 '대금'을 입에 물었다. 일순 거짓말 같이 온 주위에 적막이 돌고 시선들이 한 점으로 쏠렸다.
피리 부는 사나이, 그 순간만큼은 형님과 객, 그리고 우리의 시간은 쉼표 속에 갇히고 말았다. 늘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은 얼굴에 웃음기는 가시고 , 대금과 하나가 된 날 숨에서는 가늠할 수 없는 구슬픈 한이 가락이 되어 사방의 공기를 눌러댔다.
올 사람은 오고 갈 사람은 떠나시게.
그리움도 미움도 잠시만 내려놓으시게나.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리.
한바탕 신명 나게 잘 놀다 가면 그뿐이지.
아마, 형수님이 대책 없는 무능력자 형님 구박하지 않고 이쁘다 하는 게, 피리를 든 남자에게 꽂혀서가 틀림없다.
쌍골죽과 구애받지 않는 삶을 알려준 피리를 든 사내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고향으로 돌아가 나름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다. 남 말 좋아하는 동네 할매, 할배들이 쑥덕거리든 말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