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무대에 남아
아무도 없는 객석을
본 적이 있나요
음악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 채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정적만이 남아있죠
고독만이 흐르고 있죠
어김없이 찾아오는 공허함
이제 깨어나 제자리로
돌아가야 하는데
아직 꿈속을 헤매듯
널 그려 매일을
더 이상 연극은
연극이 아니었음을
난 사각 안의
틀에 사는 어린 광대
빨간 불이 나를 밝히면
또 다른 내가 돼
오늘 잡은 당신의
손 놓아야만 하나
연극이 끝나면
이 가면 벗어야만 하나
힘찬 박수도
뜨겁던 관객의 찬사도
이젠 다 사라져
객석에는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배우는 무대 옷을
입고 노래하며 춤추고
불빛은 배우를 따라서
바삐 돌아가지만
끝나면 모두들
떠나버리고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샤프. '연극이 끝난 후' 가사)
관객 한 명 없는 텅 빈 극장.
마지막 회차의 상영, 오직 나 혼자만의 관객을 위해 필름이 걸렸다.
알프레도만큼 나이가 든 영사기사는 암말 없이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챙겨 넣었던 5센티 두께, 직경 45센티미터 가량의 원형 갈바 필름통 세 개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극장을 폐관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은 이미 영사기사인 최 기사의 귀에도 전해졌을 것이다.
평생을 서너 평 공간에서 보냈고 늙어버렸다.
오드리헵번을 짝사랑했고,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흉내 내며 청춘을 필름 속에 묻었던 최기사였다.
365일.
일 년 삼백육십오 일을 단 하루도 극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늙어버린 최 기사는 곧 영원히 암실에서 퇴장을 해 열린 세상 속으로 나갈 것이다. 어쩌면 더 비좁고 숨 막히며 잔인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생소한 세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로 나아가게 될 최 기사는 손 때 묻어 닳고 닳은 육중한 영사기 앞에 마주 섰다.
스크린에서 가장 멀찍이 떨어진 이층의 구석진 자리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적막 그리고 어둠.
어둠에 붙들린 빛이라고는 영사실의 좁은 창으로 삐져나오는 형광등 불빛과 스크린 옆의 비상구 위에 매달린 파란 비상등을 지르밟고 재빠르게 내달리는 작은 인간 사이를 비집은 불빛이 전부였다.
영사실 안에서 필름이 좌르르 소리를 지르며 한 뼘 창을 빠져나왔다. 소리의 전부였다.
지하 4,000미터 깊고 깊은 갱의 막장에서 마주했던 절대 고요와 어둠이 주는 끝 모를 평안이 떠올랐다.
눈을 감았다.
일상의 잔상이 지워지고 시간이 정지된다.
12 몽키즈.
부르스 윌리스, 브레드 피트가 출연한 망할 세상은 결국 망하고 만다는 세기말적 아포칼립스 세계관의 무거운 분위기를 그린 영화가 곧 문을 닫게 될 운명의 극장과 묘하게 맞물렸다.
영사실 내의 최기사는 생의 마지막 상영작이 될지도 모를, 바이러스가 창궐한 종말 직전의 세상과 고군분투 싸우는 12 몽키즈를 보고는 있을까.
나의 부산행은 최종 실패를 했다.
극장 인계에 대한 협상은 파토가 났고, 대표로부터 폐관의 결정을 통보 받았다.
텅 빈 극장에 홀로 남겨졌다.
필름은 여전히 돌아간다.
알프레도를 추억하는 토토가 있는 한.
그래서, 시네마는 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