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멍청이라 말했지.

by 김석철




내 품 속에서 자란 어미에게서 판박이로 태어나 함께 한 개냥이 2세가 '노랑이'다. 부르기도 전에 귀신같이 달려와 발꿈치를 빗장 걸어대고 발라당 드러누워 무방비로 배를 까보인다. 둘이 마주 앉기에도 솔은 작은 작업실 의자에 앉아 글을 읽고 쓰거나 음악이라도 들을 시는 틀림없이 무릎에 올라앉아 고롱대거나 꾹꾹 발길질을 해대며 훼방을 놓는다.

몬난이와 이쁜이가 소리소문 없이 야생으로 돌아갔고 넷이나 되는 형제들도 애비 애비의 길로 따라가 버렸다. 홀로 남은 '노랑이' 역시 외로웠던 것일까.

삐쩍 마르고 짧게 잘린 꼬리를 한 갓 젖을 떼었음직한 어린 괭이가 '노랑이'의 영역으로 도둑처럼 숨어들었다. 새하얀 몸에 푸른 쪽빛 하늘을 눈에 넣은 앙칼스럽기 짝이 없는 들고양이의 은밀한 노략질을 노랑이는 그저 모른 척했다. 기척만으로도 줄행랑을 치기 바빴던 야생의 어린 고양이와의 간격을 좁히는 데는 오직 기다림 뿐이었다. 모르는 척, 안 보이는 척 그렇게 두어 달이 넘어서야 손 내밀면 겨우 닿을 거리의 간격이 되었다.

어젯밤에서야 비로소 날카롭지만 가소로운 발톱을 드러내고 군것질거리를 낚아채는 거리조차 허물어졌다. 손에 쥔 과자를 손 아닌 입으로 받아먹었다. 여전히 궁뎅이는 뒤로 빼고 시리도록 푸른 눈을 똥그랗게 뜬 채로 내 영역 속으로 첫발을 디뎠다. 오랜 기다림었다. 홀로 남겨졌던 숲 속의 시간, 이방에 대한 두려움과 의심의 날들이 떨어져 나가는 순간이었다.


"야가 쪼매이 멍청하네."

동작이 굼떠 매번 맛있는 별식거리를 빼앗겨버리는 노랑이가 보기에 안쓰러웠는지 어떤 이가 다 들릴만큼 큰소리로 말했다.

하양이의 식탐은 노상 굶어 버릇하던 야생 때의 몸에 깊숙이 벤 생존본능이다. 날카롭고 공격적이면서 쉽게 곁을 내어주지 않는 하양이가 먹이 앞에서 손톱을 드러내고 하악질로 적의를 보이는 일은 내게는 조금도 낯설지가 않다. 사이좋게 나눠먹으라고 두 개를 던져주면 날쌘 하양이는 잽싸게 제 몫은 외진 곳에 숨겨둔 채 유순한 노랑이 몫을 노략질한다. 덩치가 삼분의 일에도 못 미치는 녀석의 얄미운 입질에도 노랑이는 마치 기성자의 닭처럼 반응이 시큰둥하다.

이 모습이 보기에 답답했던 어떤 이가 선택한 단어는 하양이의 '날렵함'이 아니라, 노랑이의 '멍청함'이었다.

"야가 쪼매이 멍청하네."

"아뇨, 순한 겁니다. 착한 거지요."

나는 돌아서면서 들릴락 말락하게 읊조렸다.

"이왕이면 듣기 좋은 말도 많을 텐데..."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순둥한 노랑이는 노릿 노릿 잘 익은 삼겹살을 하양이에게 순순히 나눠주고 있었다.


노랑이가 가는 곳에는 어김없이 하양이가 쫄랑쫄랑 따라붙는다. 껌딱지처럼 들붙어 부비적댄다. 노랑이의 외로움과, 하양이의 두려움은 둘을 하나로 엮었다. 외로움으로 텅 비었던 공간 속으로 살기 위한 본능만 남아 눈알을 번뜩이던 하양이는 한 걸음씩 들어갔고, 마침내 두려움을 깨뜨렸다.

노랑이의 멍청함이 날카로움을 부순 것이다.


기성자의 싸움닭.

노랑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순하디 순한 한마리의 고양이가 일깨운 나의 아둔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