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by 김석철


나는 자전거를 엉터리로 배웠다고 말했었다. 뒤를 봐줄 사람이 없어 자빠져가면서 혼자 익히다 보니 폼이 엉거주춤, 어설프기 짝이 없다.

페달에 한 발을 올리고서 힘차게 쭈욱 밀면서 날렵하게 훌쩍 올라타는 그런 멋진 자세는 언감생심 그림의 떡이다. 안장이 높고 휠이 큼지막한 때깔 나는 자전거는 그저 부러움의 대상일 뿐이고, 내 주제로서는 시장바구니가 달리고 안장을 이어주는 후레임이 동그랗게 땅을 향하고 있는 아주머니 마트 전용 자전거가 딱이다. 낸들 남들처럼 본새 있게 자전거를 타고 싶지 않겠나?

넘어지고 깨지는 게 두려웠던 날에 뒤를 잡아주고 격려해 줄 이 없어 홀로서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이 몸에 붙여둔 우스꽝스러운 자세다. 게다가 세월까지 덧입혀지니 '굳이 뭐'하는 자기변명 같은 것도 생겼고. 친구의 삼백만 원짜리 자전거가 하나도 부럽지 않은 이유는 내게 자전거란 자고로 안전하고 타기 쉬운 시장바구니 달고 내빼는 앙증맞은 녀석이 장땡이라는 자기 위안 때문일 거다.


수영은 어떻게 배우게 됐는지 도통 기억이 없다. 홀딱 벗고 꼬추 딸랑거리며 자맥질했던 친구들이 무지 어렸었고 나 역시 개구지게 우루루 같이 몰려다녔었다는 기억은 확실하다.

왜, 개헤엄이란 거. 가라앉지 않게 손발을 미친 듯이 허우적거려야 되는, 머리만 동동 뜨는 그런 생존형 수영 말이다. 죽기 살기로 용을 써도 고 자리에서만 뱅글뱅글 맴도는 촌티 나는 개헤엄만 믿고서도 겁 없이 저수지를 건너는 허세를 부렸었다.

물에 저항하지 않고 힘을 쭉 뺀 채 온몸을 맡겨도 가라앉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물 꼴딱꼴딱 마셔가며 자연히 몸에 체득이 된 것이다. 자연에 맞서는 인간의 저항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를 불식간에 몸으로 익혀버렸다.

죽어라 손발을 허우적대야 겨우 한 뼘 나아가던 수영 실력이 한 호흡, 가벼운 발길질 한 번으로도 물살을 갈라버릴 즈음에 들어서자 우습게도 삶을 대하는 자세마저 시건방을 떨게 되었다.


새빨간 경차가 연신 브레이크등을 밝히며 굼벵이 보다 느린 걸음으로 슬슬 기었다. 삽시간에 장사진을 이룬 뒤차들이 앞선 코딱지만 한 깜찍한 차 한 대의 느려터진 보폭에 맞춰 옴짝달싹을 못하고 뒤를 이었다.

'미안하다, 나는 글렀다!'


운전 험악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부산 서면의 거래처에서 고참은 내게 트럭 키를 냅다 던져주고는 차 끌고 먼저 회사로 돌아가라는 말만 남기고서 휘파람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운전면허조차 없는 내게 다짜고짜 대가리부터 들이미는 부산의 악명 높은 운전자들을 뚫고 귀사를 하라니 길 위에서 객사하란 말과 다를 바 없었다.

회사에서 몇 코너만 돌면 닿는 택배회사까지 서너 차례 왔다갔다한 경험이 전부인 기저귀 찬 내가 어떻게 살아남아 창원의 본사까지 무사고로 돌아갔었는지 지금 생각으로도 아찔하다.

단박에 면허증을 따고서 기고만장하게 큰소리쳤다.

"나 부산서 운전 배운 몸이라고!"

그 난폭하고 살벌한 부산의 도로 위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내 눈에 조깅 속도보다 굼뜬 앞 차 운전석에 찌그러들듯 앉아 정수리만 겨우 보이는 긴 생머리를 한 중년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곁에는 쉼 없이 손가락질을 해대는 앳된 숙녀의 옆얼굴이 함께 보였다. 너그 아부지한테는 때려 쥐긴다해도 운전 안배울란다며 귀찮다고 툴툴대는 딸레미를 반협박으로 꼬드겨 마실 나온 게 틀림없었다. 진땀 꽤나 빼는 모양이었다. 믿었던 딸레미는 지 애비 못지않게 구박에 잔소리를 해댔을 거고 안 보이고 안 들리는 엄마는 운전대만 죽어라 붙들고는 곁눈질 한 번을 못했을게 뻔했다.

씨익 웃음이 났다. 나는 이미 글러먹었다며 뒷 창에 큼지막한 글자로 공포를 하고 다니는 이에게 뭐라고 그러겠나. 도 닦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참아 줄 수밖에. 들릴 리도 없는 클랙슨 대신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팔꿈치 창턱에 올려두고 한 손으로 운전대 돌려가며 휘파람까지 부를 수 있게 됐으니, 자전거 탈 때의 모양새 빠지는 허접함을 만회시켜 준 것은 결국 고참 형님이 열쇠만 던져두고 꽁무니를 내뺀 덕분이다.

모처럼 부산을 가로지르는 운전을 한 날, 앗차 순간에 돌은 놈이 된 날이었다. 사정없이 대가리부터 들이밀고 인상 팍 구기며 빵빵거리는 풍경은 사십 년 전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이제는 같이 뻔뻔해진 나도 질세라 삿대질을 해줬다. 부산이니까.

역시 운전은 부산서 배워야 맛이다.

부산서 목숨 걸고 배운 운전이란 사실이 무지 뿌듯한 날이기도 했다.

부산 아재들, 고맙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