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가는 풍경...1

목간통과 굴뚝

by 김석철



우리 마을 면사무소 코 앞에는 해마다 어김없이 한 달간 '내부수리'를 하는 요상한 곳이 있다. 내가 첫발을 디딘 십 년 전에도 그랬지만, 그 뻔뻔한 레파토리의 핑계는 훨씬 더 역사가 깊다.

한 달 동안의 내부수리 기간은 도대체 뭘 어떻게 뜯어고쳤는지 맹탕 하나도 바뀐 게 없었다. 핑크핑크한 싸구려 수건이랑 동그랗고 하얀 알뜨랑 세면비누, 실밥이 너덜거리는 퍼렇거나 뻘건 이태리타월은 늘상 같은 자리를 지켰다.

그냥 기름값도 안 나오는 여름 한 달간은 문을 닫아버리겠다고 아싸리 하게 자백한다손 누구 하나 시비를 걸거나 발걸음을 끊을 이가 없을 텐데, 매 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가로막아 선 낡아빠진 롤러 셔터에는 날짜만 그때그때 바뀔 뿐인 똑같은 공사안내판만 대롱거렸다.





시큼한 곰팡내와 목욕탕 특유의 야시꾸리한 냄새가 범벅된 지하계단의 벽에는 손주가 그렸을 성싶은 몇 점의 유화가 붙들려있고 그 끝에는 노부부가 교대로 얼굴만 빼꼼 내밀고서 금붕어 마냥 눈만 뻐끔거리고 있다.

작은 창틈으로 타월 두장을 내밀고는 빤히 쳐다보는 것으로 더 필요한 건 없는지를 묻는다.

"영감님은요? 요 며칠 안 보이데요?"

"영감탱이, 가삤다(가버렸다)."

더 이상 묻지 않는다. 굳이 궁금해서 물어본 것도 아닌 데다, 십 년을 줄창나게 봐왔지만 그닥 친한 사이는 더더욱 아니기 때문에 말을 아끼기로 한다.

세 개의 날이 박힌 일회용 면도기를 사들고 꽃문양이 큼지막하게 아로새겨진 커튼인지 출입문인지를 열어젖히고 들어서면 어김없이 아무렇게나 훌렁 벗어던진 낡은 운동화 두어 켤레가 기다린다. 인구 몇 명 되지도 않는 작은 동네에서 희한하게도 꼭두새벽이건 한낮이건 사람이 없는 경우는 없다.

손톱깎이랑 재떨이가 평상 위에 뎅그렁이 놓여있고 40번이 마지막 번호인 퍼런 수납장이 3단으로 세월과 함께 차곡 쌓여있다. 옷장을 잠그고서는 고무줄 달린 네모난 열쇠를 손목에 걸어야 할지, 발목에 차야 할지를 늘 고민하게 된다. 참 없어 보인다 생각이 들지만 도리가 없다. 발목에 찬 열쇠가 손톱만 한 모자이크 타일에 부딪혀 요령 흔드는 소리를 내면서 바짝 따라붙는다.

색 바랜 허연 플라스틱 천정에는 물방울이 조롱조롱 달려 누구 머리 위에 떨어질지를 노린다. 이미 탕 속에는 온몸에 주름살이 져 마치 구겨진 마분지처럼 보이는 이가 머리만 빼꼼 물밖으로 내밀고서는 연신, 어, 어, 어이쿠 시원허다며 끙끙 않는 소리를 내면서 민망한 부분을 다 드러내고 있다.

앗 뜨!

어찌 된 놈의 영감탱이들은 당췌 뜨거운 걸 모르는지, 탕 속 물이 맨살을 홀랑 익힐 정도로 펄펄 끓고 있음에도 온수 밸브를 힘대로 꺾어놓는다.

용도를 알 수 없는 때밀이용 플라스틱 테이블이 놓인 반대편 모퉁이에는 덜덜거리면서 기어코 한자리를 차지한 때밀이 기계가 있다. 등짝을 붙이고서 부들부들 몸을 떨어대는 이를 마주 볼 재간은 여간한 강심장으로도 버겁다. 보는 이가 더 민망하기 때문에 사실 뭐라도 가릴만한 걸 앗아주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하다.

찜질 사우나실은 숨통을 들이 막는 열기를 잃어버린 지가 언제인지도 모른다. 싼 티 나는 알루미늄 샤시 문이나 제대로 여닫힐는지 모르겠다. 찜질방에 연이어 붙은 냉탕 역시 구색일 뿐 여지껏 그 누구도 몸을 담그는 걸 본 적이 없다. 꼬맹이들이 전멸해 버린 욕탕에는 헤엄치다 등짝을 두들겨 맞는 모습이나 냉온탕을 뻔질나게 뛰어다니던 요란함이 사라진 지 오래다.

'강한 남성, 넘치는 자신감'

벽체 중앙의 기둥에는 시계와 한 덩어리를 이룬 포경수술, 정관수술 전문임을 요란하게 알리는 근처 비뇨기전문 개인병원의 광고판이 십 년이 넘도록 걸려있다. 정작 의사 본인의 문제는 팔팔한지 궁금해지는 까닭은, 광고 글귀 하나하나에는 자신을 찾는 순간 세상의 고자란 고자는 한 명도 없을 거란 자신감이 넘쳐나서다.

'탱크주의 선언! 00남성 병원.'

조만간 00병원의 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될 거 같다.


면사무소 계단길 아래 18년째 용케 버티고 있는 00 목욕탕은 언제까지 보일러 불을 지필수 있을까?

영감님이 떠난 자리를 자식 중에 어떤 이도 이어받은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뽀글 머리를 한 안주인이 오래오래 건강하기를 바랄 도리 밖에 없어 보인다.


서로 너 한번 나 한번 등짝 돌려가며 안부를 묻던 지난날, 나이 속여가면서 엄마 손에 질질 끌려가던 날 홀딱 벗고 마주한 짝사랑 미순이에게 꼬추 다 보여주었던 그날...

그날들이 잊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