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 도리기 할까요?...1.

by 김석철

샬롬~~


여전히 낯설고 어색하기만 하다.
문명에서 한 발짝 비켜 선 나로서는 돌아서면 딴 세상과 만나는 신비 속에 산다.

얼마 전 지인들과의 식사 모임 중 쇼킹한 일을 겪었다. 원시인도 아니고 웬 호들갑이냐고 핀잔을 들었지만, 내게는 그저 뉴스에서나 봄직한 일이 눈앞에서 펼쳐졌으니 신통할 수밖에.
서빙용 로봇이라는데, 얼마나 은밀하게 다가왔는지 마치 암살자가 옆구리를 훅 치고 들어 온 느낌이었다. 빈 그릇을 암살 로봇의 몸통 위에 조심스레 올려드리고 촌놈 티 내느라 요기조기 살피며 신건이처럼 촐싹거렸다.
"가!"
갔다. 기계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다니! 발칙한 녀석이다.

주문은 받으러 오는 게 아니라네? 테이블 위에서 그저 손가락 몇 번 토닥거리면 된다면서 이런 것도 모르냐며 면박을 준다. 나는 여전히 이모를 외치고 넌덕스러운 농을 나누고 싶은 사람인데, 발 빠른 문명은 사람 냄새나는 꼴은 용납을 못하겠다는데 어쩌겠나.


자리에 앉은 지 십여분이 지나도록 서비스 직원은 종무소식이다. 셀프란다. 전장의 몽골 기병이 그랬던 것처럼 샤브샤브도 셀프로 알아서들 드시란다. 현대문명의 자본과 기술력, 경영기법으로 중무장을 한 이 식당에서의 선택권은, 법이 그러니 암시롱 않고 납짝 엎드리든지 문명권 밖으로 튕겨나가든지 둘 중의 하나다. 지랄 맞은 세상이다.
이 신식 식당에 들어서서 사람 냄새라고는 출입문 열 때, 어서 옵쇼를 외치는 쥔장의 영혼 없는 상투적인 인사 때뿐이었다. 쥔장의

간드러진 인사는 제 발로 걸어오는 '돈'에 대한 반가움이 틀림없다.
신통방통한 로봇에게는 은근히 보이던 이모의 풍만한 가슴골도 없고, 이쁜 알바 학생의 생기발랄한 에너지도 느껴지지 않는다. 당연히 빈 그릇 아래 접어 두었던 만 원짜리도 행방을 감추고 말았다.

무식하게 요즘 시대에도 지갑에 현금 넣어 다니냐고 볼 때마다 동생이 놀려댔다. 배불뚝이 지갑과 뻔질나게 밟아야 하는 은행 문턱. 숫제 돈을 받는 사람조차 구시렁댄다. 오가는 현금 속에 싹트는 인정은 아득한 옛말이다.


밤늦은 시각, 은행의 주차장에 갇혀버렸다. 뒷 차들은 빨리 나가자고 잡아먹을 듯이 빵빵거리며 성화를 부리는데, 차단봉은 요지부동으로 버티고 서서 옴짝달싹을 않는다. 현금을 먹는 구멍이라곤 눈 씻고 찾아도 없으니 졸지에 빼박의 경찰차에 갇힌 꼴이 되었다.
뒷 차주가 본인의 신용카드를 긁어서 출감을 시켜주는 어이없는 일을 당하고 나서야 돌쇠아재의 현금주의는 떠밀리 듯 막을 내렸다. 물살에 몸을 맡기는 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이 풍진 세상.
느릿느릿 가면서 사람의 온기를 조금이라도 더 붙잡아두고 싶은데, 세상은 빨리 걸으라고 등을 떠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식탁에 마주 앉아 잔을 나누고 건배를 외칠 이는 기계가 될 것 같다.
적어도, 눈만큼은 마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여전히 플라스틱 카드보다는, 침 퇘퇘 튀겨가며 세는 종이돈이 좋다. 억수로 좋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바보의 자전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