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종이를 줄까?

by 김석철


"흰 종이를 줄까, 빠알간 종이를 줄까?흐흐흐흐..."

바람이 숭숭 새는 낡은 판자대문 옆에 거적때기 달랑 하나로 구분을 지은 통시에는 귀신이란 귀신은 다 붙은 듯싶었다. 긴 머리는 산발을 하고 눈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째려보는 한 많은 처녀귀신, 장가를 못 가 구천을 떠도는 몽달귀신, 다리 한 짝을 잃어 통통 튀어 다니면서 내 다리 내놔라며 보채는 외다리귀신, 달걀귀신. 하여간 동네 구신이란 구신은 다 모여들어 아이들 똥 눌 때 놀래킨다고 어른들이 귀띔을 해줬다. 특히 발을 걸치고 앉은 좁다란 판자 두 개 사이로 허연 손이 쑥 올라오면서 흰 종이, 빨간 종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냅다 토껴야한다고 신신당부까지 했었다.

"행님아, 행님 밖에 있제?"

"씨부리지 말고, 퍼뜩 똥이나 싸라."

일분도 채 지나지 않아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또 부른다.

"행님아, 행님아!"

신문지 벅벅 문질러 뒤처리는 하는 둥 마는 둥 다급하게 뛰쳐나오는 걸음에 바지가 궁뎅이에 반쯤 걸쳐있다. 희멀건한 손이 뒷덜미라도 거머쥘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아 날 살려라 꽁무니를 내뺐다.

주름살이 자글자글한 고모는 떡떡 갈라 터진 손을 오줌물에 넣고 한참을 비벼 씻었다. 효과는 별로였는지 나이보다 일찍 늙어버린 큰 고모의 손등은 일 년 내내 피가 비쳐 나왔다.

물 때 맞춰 펄이 널따랗게 드러나는 날에는 바지락이며 쏙을 잡느라 온종일 무릎으로 뽈뽈 기어 다녔다. 갯일에 찌든 얼굴은 동동구리무를 암만 두텁게 발라도 소금끼만 배어 나왔지 꺼멓게 그을린 얼굴 고대로였다.

방학만 되면 어머니는 진해의 속천항에서 여객선에 형과 나를 태워 거제로 유배를 보냈다. 입 하나라도 더 덜어보자는 뻔한 심산을 모를 리 없는 큰고모는 그 가난한 와중에도 군말 없이 우리를 건수해 주셨다.

비록 오줌에 쩔은 손으로 깍두기를 썰고 시금치나물을 무치느라 조몰락 대기는 했지만 말이다.

거지 중의 상거지 꼴을 하고서 사촌형들과 미친 듯이 산이며 바다로 쏘다녔다. 집채만 한 소떼를 몰고, 뽈똥과 개암을 찾아 온 산을 헤집었다. 철사로 올가미를 엮어 토끼덫을 놓고 대바구니에 작대기를 모로 걸친 새 덫도 놓았다. 소 등에 올라타기, 달밤의 쥐불놀이. 돼지 오줌보로 만든 축구공 하나를 두고 꽁꽁 얼어붙은 논바닥에서 애 어른 할 것 없이 떼를 지어 우루루 몰려다녔다.

도회지에서는 상상도 못 할 거칠고 박력 넘치는 놀거리가 어린 형과 나의 혼줄을 홀랑 사로잡는 사이 온몸은 꼬질꼬질한 사촌형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갔다. 깡통만 차면 영락없는 각설이 형제였지만, 누구 하나 추잡다고 군소리를 하지 않았다. 숙제하느라 이불에 엎드릴 필요도 없었고, 양치는 물론 심지어 세면도 안 한 채 잠자리에 들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신문지로 처덕처덕 대충 갈무리를 한 낮은 천정 위에서는 쥐떼들이 몰려다니느라 밤새 북새통이었다. 가끔씩 형은 주먹으로 천정을 쿵쿵 두들겼다. 쥐들은 역시 성가신 존재였다.

껌뻑거리는 백열등의 흐릿한 불빛 아래 배꼽을 다 드러낸 다섯의 촌뜨기들이 수제비 반죽 마냥 뒤엉켜 잠이 들었다.


눈뜨기가 무섭게 큰형은 익숙한 놀림으로 큼지막한 가마솥에 솔가리로 불을 지피고는 걸쭉한 쇠죽을 끓여 한 되박씩 통나무 여물통으로 던져 주었다. 매캐한 생솔 연기가 뒤틀려 아귀가 맞지 않는 방문 틈을 파고들어 콧구멍을 찔러댔다.

새벽닭이 울고 동녘이 불그레 달아오르면 지게를 어깨에 걸치고서 한 손엔 낫을 든 채 삽작거리로 향하는 사촌형을 따라나섰다. 아침부터 눈칫밥을 먹지 않으려면 땔감 한 짐씩의 제 밥값은 해야 했다. 삶은 고메나 배추꽁다리를 하나씩 손에 든 또래의 형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고샅길을 따라 산등성이로 향했다. 공부하고는 완전히 담을 쌓은 쫀뜨기들이 샘도 나면서 새삼 우러러 보였다.


낡은 슬레이트랑 함석지붕은 바다 먼 곳으로부터 출발한 짭짤한 바람이 조금만 용을 쓰도 찌걱찌걱 사지를 뒤트는 듯한 비명을 질러댔다. 발 디디는 곳곳이 성한 데라곤 없었다. 삶에 지친 사람들이나 닥지닥지 엉겨 붙은 다랭이 논 밭, 바다를 안고 있는 언덕배미에 엎드린 코딱지만 한 집들 할 것 없이 한결같은 아우성을 질러댔다. 삐걱삐걱, 끼익 끼익.

한동안 나는 삐걱대는 바람소리가 한 많은 처녀귀신이 문지방을 손톱으로 긁어대는 것만 같아 머리칼이 쭈뼛거렸었다.

천만다행인지 고모네는 적어도 먹거리 때문에 한숨을 쉬는 경우는 없었다. 어머니가 한사코 어린 우리 형제를 바다 건너의 땅으로 보낸 절박한 이유 중의 하나였는지 모른다.

찢어지게 가난한 건 매일반이었지만 사촌형네는 지붕 아래건 광이건 각종의 남새들과 깡냉이, 고구마가 그득히 메달 리거나 쟁여져 있었다.

방 방의 구들목에는 키만 한 투박한 궤짝 안에 고메가 한가득이었다. 장독간 옆의 평상 위에는 허연 분칠을 한 빼때기가 해풍과 햇살을 받아 빠사삭 바스라지는 소리를 냈다.

고모네 밥상에서는 늘 쇠죽이랑 비슷한 냄새가 풍겼다. 구수한 듯 꿈꿈한데다 가끔은 누룩 냄새, 발효된 막걸리 같은 향기도 섞여있었다. 사촌형들의 방구냄새도 똑같았다. 그러고 보니 벽지건 쇠똥이건 다 비슷비슷했다. 나는 집집마다 비스무리한 진득한 이 냄새를 '촌냄새'라고 부르기로 했다. 개학을 하면 친구들은 코를 끙끙대며 누가 소똥을 묻혀왔나 그랬다. 친구들은 '촌냄새'를 모르는 진짜 촌놈들이었다.


사실, 고모님이 정성껏 차려주는 된장찌개, 총각김치가 놓인 제법 구색을 갖춘 밥상보다는 입에 달고 사는 흔해빠진 물김치를 곁들인 삶은 고메나 깡냉이가 더 좋았다.

밤마다 요강에 손을 담그고 있는 고모, 처진 어깨를 눌러대는 부스스한 머리카락에 땟국물이 배어있는 남루한 몸빼... 짝이 맞지 않는 젓가락과 쟁반이며 숟가락에 붙어있는 고춧가루. 하루하루를 살기에 벅찬 고모의 밥상에는 같이 있어서는 곤란한 것들이 치렁치렁 따라다녔다.

마산의 엄마집에는 틀림없이 소금에 조선간장이 쬐금 섞인 맹물에 눈깔을 부릅뜬 메르치, 그리고 뚝뚝 뜯어 넣은 밀가루반죽이 전부인 수제비가 밥상에 올라와 있을게 뻔했다. 투정조차 부릴 수 없는 수제비에는 고모집과는 달리 옅은 멸치똥 냄새가 났다. 엄마나 고모가 짊어진 삶의 무게는 우열이 따로 없었지만, 밥상의 냄새만큼은 확연히 달랐다. 나는 더 가난한 엄마의 진절머리 나는 수제비 밥상이 백배는 좋았다.


강냉이와 고구마는 나이가 들대로든 지금에도 여전히 먼 과거를 불러내는 태엽시계다. 바다 너머에는 지지리도 가난했지만 누구보다 정직하고 열심히 산 고모가 잠들어 계신다.

빨강 종이를 줄까, 하양 종이를 줄까.

고모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전히 고모가 차려주는 밥상은 글쎄요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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