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배신을 당한 기분이다.
해마다 요맘 때면 연례행사처럼 틀림없이 챙겨줬었는데, 그것도 챙겨줄 거라고 저들이 먼저 안달을 부렸었는데 올해는 뭔가 많이 썰렁하다.
꿩 먹고 알 먹자는 음흉한 속셈을 숨기고 짬을 내서 일부러 들른 건데 이 싸한 냉기는 뭐란 말인가.
"올해는 책상달력 안 줘요?"
맡겨놓은 내 거 내놔란 투로 뾰로통하게 한마디를 건넸다.
돌아보는 앳된 알바생의 눈에 별 시덥잖은 인간 다 보겠네라고 써져 있었다.
머쓱함을 벗어나는 길은 더 뻔뻔해지거나 머리를 숙이고 딴청을 부리는 게 최고다.
"사장이 바뀌었나?" 어물쩍 변죽을 울리며 혼잣말인양 한마디를 더 보탰다.
"올해는 본사에서 아무것도 안 줘요!"
달력 하나 공짜로 얻어려다 꼴 사납게 되었다. 후라이드에서 꼬릿 한 맛이 날게 분명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낮에 책상달력이랑 다이어리를 챙겨 준다고 할 때 얼른 받아둘걸 하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자동차 영업맨인 친구가 해마다 연말 인사치레로 양말이며 각티슈, 노트와 달력이 동봉된 선물꾸러미를 내밀었다. 의당 본사에서 홍보차원으로 지원해 주는 물품인 줄 알았기에 그간 별 거리낌 없이 냉큼 받아 챙겼었다. 보험 일을 하는 지인으로부터 그 선물들 전부 생짜배기 자기 호주머니 털어 장만하는 거란 말을 전해 듣고는 도무지 덥석 받을 수가 없었다. 철면피도 아니고 양심에 털이 박히지 않고서야.
"더러버서 못하겠더라."
볼 때마다 재능기부 하라고 노래를 부르던 설비 사장이 어느 날부터 입을 닫았다. 집수리 재능기부팀에서 유일하게 타일 부문만 빠졌다고 늘상 바람을 넣다가 막상 조용하니 오히려 내가 먼저 입을 열게 되었다.
다들 없는 시간 쪼개고 제 주머니 털어가면서 봉사활동을 하는데, 보람은커녕 날이 갈수록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회의감만 든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내용인 즉, 무료 재능 봉사하는 사람을 제 집 종놈 대하듯 하대하는 것도 모자라 잡다한 요구를 일일이 들어주지 않는다고 역정까지 부린다는 것이었다.
일 년 남짓한 봉사 활동 중에 꾹꾹 눌린 한이 많았던 모양인지 여간해서는 남 말 않는 설비 사장이 대놓고 불만을 쏟아 놓았다.
"부자는 말이지, 자기 권리를 야무지게 챙길 줄도 알지만 그만큼 타인에 대한 대가도 인정을 해. 근데, 가난한 사람은 대체로 자기 것만 알고 남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데 인색해. 겪어보니까 그렇더라고."
북받치는 감정을 입으로 한동안 쏟아낸 후 기분이 좀 누그러들었는지 옅은 한숨을 내쉬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가난하게 사는 거지. 거지 근성이 별 건가?"
배려가 반복되면 권리라고 착각한다고 했던가.
인간 관계도 그렇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지만, 타인의 선의를 악용하는 경우를 숱하게 봐 왔다. 알면서 속아주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에 적당히 눈 감고 참아내는 사람은 바보라서 그런 게 아니다. 제 돈 귀한 줄 몰라 신발끈 빨리 메는 것도 아니다.
액자 두 개만 걸어 달래서 흔쾌히 수락했더니, 결국 15개를 달아 줬다면서 입이 댓 발 나온 지인이 있었다. 평소 사람 좋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양반인데, 선한 사람의 마음에 멍울이 한 겹 더 쌓였다.
삶이 그대를 속여도 노하지 말라고?
나는 그렇게 못한다.
똥을 피하는 것은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라고? 누군가 그 더럽다고 피하는 똥을 치우지 않으면 또 다른 이가 피해를 당하게 된다. 똥 싼 놈은 권리로 착각하고 대놓고 싸질러댈지도 모른다. 악의 순환이다.
나의 양보와 배려가 당신의 권리라고 착각하게 만들면 안 된다.
경기가 나쁘긴 확실히 나쁜 모양이다. 연말연시 지천으로 굴러다니던 인사용 책상 달력이나 노트가 사라져 버렸다.
단골 치킨가게에서 눈치만 실컷 얻어먹고서도, 내 거 빼앗긴 것 같은 서운함이 앞서는 이유는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