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우대 멀쩡한 네 놈이 굴비 엮인 듯 줄줄이 엮여 여름 방학 며칠을 졸지에 선생님 자택에 강제구금을 당하고 말았다. 죄명은 컨닝, 그것도 도긴개긴 오십 보 백보인 수준의 돌대가리 넷이 집단 컨닝을 하다 현행범으로 달려들어간 것이다. 평소 팔랑개비 돌듯 구르는 돌멩이 짓거리를 하고 다녔으니 옳다구나 싶었던 담임 선생님은 가차 없이 방학을 압수하는 가혹형을 때려버렸다. 좀이 쑤시고 삭신이 근질거렸다. 나흘간이나 방위병처럼 정시 입소, 다섯 시 귀가를 했으니 피가 들끓는 고1 청춘들에게는 엉덩이에 빠따 몇 대 맞는 것보다 더 환장할 노릇이었다. 특히 생글 웃는 얼굴로 하나도 이쁘지 않은 멀대 같은 네 놈에게 잊지 않고 귤이며 사이다, 김밥 등을 챙겨 먹이는 사모님을 마주하는 일은 더더욱 죽을 맛이었다. 있는 듯 없는 듯 늘 과묵하고 진중한 선생님은 태산같이 버티고 앉아서 돌콩 네 놈에게 공부란 궁둥이의 힘으로 하는 것이라고 몸소 시범을 보이셨다.
아이러니하게도 선생님은 곧 부산의 명문인 모 국립대학의 정교수로 당당히 이직을 하셨고, 자택 구류를 당했던 제자 놈 중에 하나가 또다시 선생님의 제자가 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수능시험 때 옆자리 덕을 톡톡이 본 덕분이라는 설이 분분했지만 공범의 의리상 우리들은 개과천선한 벗의 피나는 학구열의 결과였을 뿐이라고 변호를 해준다.
선생님은 묵묵히 척박한 땅에 팥을 뿌리고 김을 매셨다. 튼실하게 꼬투리를 맺은 이가 있는 반면 쭉정이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적어도 팥이 아닌 콩을 맺지는 않았다.
아무도 몰랐다. 떼를 지어 썰물처럼 빠져나간 텅 빈 교실에 남겨진 한 사람의 존재를.
야간자율학습 시간 전 인근 여고생들이랑 뒤엉켜 라면에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울 분식점을 향해 뜀박질하는 무리들 중에는 늘 한 명의 낙오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홀로 남겨진 교실, 해질녘의 한 시간은 오롯이 외톨이가 되는 시간이었다. 두 끼니분의 도시락을 챙기지 못하는 가난한 친구는 홀로 남은 텅 빈 공간에서 냉수로 주린 배를 채워야 했다.
식후 짧은 막간의 자투리 시간 내내 팔팔한 학우 이 삼십 명이 작은 테니스공 하나를 두고 우루루 몰려다니며 힘을 소진할 동안에도 가난한 친구는 어김없이 초병처럼 자리를 지켰다.
"그 순간 나는 결심했지, 나는 선생이 될 거다. 내 길은 선생이다.'
덮였던 책 속에서 뛰쳐나온 편지봉투, 한 사람의 인생길을 바꿔놓은 하얀 편지였다.
'00아, 밥은 굶지 마라, 키 안 큰다.'
짧은 글과 만 원짜리 지폐 세 장.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밀고 올라오는 뜨거움, 그 말할 수 없는 뜨거움은 가슴에서 눈두덩이로 옮아갔다. 가난이 서러웠던 것일까, 배고픔 보다 더 짙은 외로움이 북받쳤던 것일까.
선생님은 또 팥을 심으셨다. 가난하고 황량한 텃밭이었다. 누구도 몰랐던 뒷켠 구석진 곳에 방치될뻔한 보잘것없는 땅에 한 톨의 팥을 던져놓았다.
홀로 태풍을 이기고, 가뭄을 견디더니 곧 수백 수천 개의 팥이 꼬투리에서 터져 나왔다.
중등교사가 된 친구는 자기의 싹을 틔워준 선생님의 팥을 고스란히 또 다른 제자들에게 대물림을 했다. 수억 개의 팥이 사방팔방으로 뛰쳐나갈 것이다. 콩이 팥이 때가 되면 단단한 꼬투리를 한껏 비틀어 꼬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터진다.
한 톨의 볍씨가 싹을 틔우면 한 둘의 이삭을 밀어 올린다. 한 이삭에 매달리는 알곡은 대략 2,000~4,000개. 한 톨이 많게는 8,000개의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것이다.
맹자는,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고 형제들이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땅을 굽어보아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음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들을 얻어 가르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라고 했다.
영재면 어떻고 둔재면 또 어떤가.
팥이 된 나의 학우는 평생의 길로 선택한 접장질을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요즘 애들은 당췌 인정머리가 없어 우리만 같지 않다고 투덜대면서도 정성껏 물을 주고 김을 메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나도 올해는 땅콩밭 언저리에 녹두나 팥을 서너 개씩 심어야 할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