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시루떡을 무척이나 좋아하셨어.
늙은 몬난이 호박이 녹아든 김 폴폴 나는 시루떡에 물김치를 겨드랑이에 끼고서 돌아앉아 드시곤 했어. 누가 뺐어먹을까 봐 그랬을 거야. 빼꼼 뜬 눈이 마치 생쥐를 앞에 둔 괭이 같았어.
얇게 저민 꽁꽁 언 상어고기를 참기름에 듬뿍 적시곤 뽀얀 살점을 젖힌 고개 너머의 한껏 벌린 입 속으로 홀랑 넣으셨지. 지그시 감은 눈에 슬며시 올라간 입꼬리는 마치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표정이었어.
늘 혼자만 드셨지. 얼마나 맛있게 드시는지 두 눈 동그랗게 뜨고서 새끼 참새 마냥 입맛을 다시는 어린 자식들 조차 안중에 없으셨어.
수박은 또 어떻게 드셨게.
숟가락 들어갈 정도로만 꼭지 부분을 동그랗게 도려내고서는 신주 모시듯 껴안고 그 큰걸 혼자서 다 퍼 드시는 거야. 달콤 시원한 여름날의 수박, 얼마나 구미를 당기겠어. 파블로프의 개처럼 수박만 보면 침샘이 그득 고이는 건 결코 나의 게걸스러운 먹성 탓만은 아닌 거지. 간절함이 처참히 묵살당하면서 생긴 조건 반사인 거야.
애 어른 할 것 없이 먹는 걸로 삐치면 그거 추잡스럽지만 생각보다 오래가는 법이거든.
아버지가 세상을 버린 날, 작열하는 땡볕이 바늘처럼 쏟아지는 연병장을 박박 기던 날 하필 수박 생각이 간절했던 건 오랜 삐침이 송곳이 되어 삐져나온 탓이 분명해.
수박껍질로도 박처럼 나물반찬을 해 먹는다는 건 아마 거의가 모를걸? 하긴 배고픈 시절에 뭔들 맛이 없었겠어. 카스테라 종이, 심지어 옥수수 심지마저 단물 다 빠질 때까지 꾹꾹 씹어먹던 판에. 쭈쭈바 꼬다리, 요플레 뚜껑 핥아먹지 않을 정도가 부자의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이잖아. 다이소 가서조차 습관적으로 가격표부터 기웃거리는 이유도 다 그럴만한 사연이 있는 거지.
굶으면 하늘이 노오래 진다고들 하지? 진짜야. 나흘 굶으니까 온 세상이 희끄무리하면서 사물의 윤곽이 흐려지고 노래지는 거 있지. 근데 어느 순간만 넘어서면 공복의 쓰라림은 새까맣게 잊히고 만사가 평안해지는 게 아, 죽는 게 이런 거라면 그것도 뭐 나름 괜찮네 싶은 생각이 들더라니까. 가난한 이들에게 신의 가호란 참으로 얄궂지.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위로도 아득히나 먼 조상님으로부터 대물림이 된 지독한 가난을 탓하고 싶지는 않아. 까짓거 사나운 팔자소관이라 치부하면 배알은 편해지니까 그럭저럭 견딜 만은 한데, 가난 곁에 찰싹 들붙어 다니는 야박함은 그렇지가 않아.
내 아비는 천벌을 받은 게 틀림없다고 봐.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하고 많은 병을 두고 하필이면 후두암에 걸려 물 한 모금을 제대로 못 삼키게 되었으려고. 목이 잘렸었거든.
울대를 댕겅 날려버린 거야. 위장까지 연결되는 협소한 관을 삽입하려면 어쩔 수가 없었대나?
그렇게 좋아하던 시루떡이며 얼린 상어 살점, 찹찹한 수박은 고사하고 말조차 못 해서 허구한 날을 방바닥만 두들겨 댔지.
배는 태산만 한데 목구멍이 작아 제대로 먹어삼키질 못해 늘 배고픔의 고통을 달고 사는 귀신을 아귀라고 해. 굶어 죽은 귀신은 걸신이라고 하는데 얼마나 한이 사무친 귀신이겠어. 배고픈 설움에 견줄만한 비참함이 세상천지에 또 있으려나. 오죽했으면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그러겠어?
처자식을 외면했던 야박한 아버지는 결국 아귀가 되고만 거지. 기마이는 피 한 방울 튀지 않는 남들한테 다 쓰고 정작 생때같은 새끼들은 굶는지 어쩌는지 나 몰라라 하셨어. 본인이야 입만 열면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쎄가 빠진다고 그러셨지만, 기억에 우리를 그나마 걸신 들지 않게 한 건 노가다판이며 함바식당 같은 데서 밤낮없이 뼈 빠지게 일한 엄니 덕분이었다고 봐. 호떡장사, 포장마차, 공사장 데모도... 이루 헤아리기가 힘들어.
엄니는 홍시랑 고구마를 엄청 좋아하셔.
엊그제도 수확한 고구마 남들 다 나눠줬다고 삐쳐서는 입이 댓 발이나 나왔었어. 하긴 엄니에게 아깝지 않은 게 어딨겠어. 태반은 쓰레기통으로 처박히는데도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는 통에 제수씨는 제수씨대로 뿔이 나서 툴툴거려.
"야들이 머시라 카노? 이 아까븐 거를 와 버린단 말고?"
엄니의 십팔번, 억만 번은 듣고 들었을 레퍼토리야. 조건반사라고 했지? 내게 수박이 그런 거라면 억척같이 살아남았던 엄니의 왜 멀쩡한 것을 아깝게 버리고 지랄이냐는 말은 파블로프의 개가 흘리는 침과 같다고 봐야겠지.
양잿물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마다치 않았을게 뻔해. 어쩌면 남몰래 좁디좁은 정지 바닥에 주저앉아 양잿물도 들이켰는지는 알 수가 없지. 속이 씨꺼멓게 다 타버린 까닭이 달리 뭐겠어.
오랜 세월, 얼마나 이를 악물고 살았는지 엄니는 성한 이빨이 하나도 없어. 이물감 때문인지 입 안에서 따로 논다면서 틀니는 아예 거들떠도 보지 않으시니까 저작은 하는 둥 마는 둥 대충 오물거리다 삼켜버리기 일쑤지.
잇몸만으로 씹는데도 아직 소화불량으로 애 먹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으니 이걸 복이라고 하기에도 좀 그렇고.
젊어서는 슬하에 옹기종기 모여 입을 벌리고 있는 새끼들 먹인다고 못 드시더니 늘그막에는 자식들이 대접하는 맛난 것은 정작 씹을 이빨이 없어 눈만 멀뚱이 셔.
"야야, 내는 마이 무따. 너그들이나 마이 무라."
거짓말이야. 쌔빨간 거짓말. 평생 들어온 징글징글한 거짓말을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
가뜩이나 작은 엄니의 키가 한 뼘 더 쪼그라든 것, 이빨이 죄다 도망가 버린 것, 그래서 앞에 놓인 맛난 거 슬며시 같이 늙은 자식 앞으로 깡그리 밀어 놓는 것.
"우리 아들 덕분에 애미가 호강을 하네, 이리 맛있는 음식도 다 먹어보고."
빌어먹을.
내 밥그릇은 또 고봉밥이 됐어. 엄니의 테이블에 있었던 그 맛난 것들이 또 내 앞으로 죄다 소복이 쌓인 거야.
"옴마는 내 새끼들 밥 묵는 거만 쳐다봐도 배가 부르다."
어머니 위장이 비워지면 새끼들은 피눈물로 뱃속이 채워진다는 사실은 정말로 모르시는 걸까?
엄니는 홍시를 좋아하셔.
대가리 투미한 자식 놈은 그렇게 믿고 싶었지. 홍시만큼은 언제든 마다치 않고 싹싹 핥아 남김없이 드셨으니까. 고메, 홍시는...
그래, 고메랑 홍시는 혀로 으깨서 먹을 수 있음을 미처 몰랐던 거야.
며칠 전, 달포를 선반 위에서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맛이 제대로 든 몰캉한 홍시를 엄니 손에 쥐어 드렸어. 홍시 닮은 얼굴로 아기처럼 활짝 웃으셨지. 아버지가 홀로 퍼 드시던 수박, 그때의 그 천진한 표정 그대로였어.
이가 다 달아나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사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확실히 아는 것도 하나 있지.
엄니가 내 새끼 먹는 거 쳐다만 봐도 배가 부르다고 한 말. 골백번도 더 들어왔던 말.
곧
그 말이 듣고 싶어,
밤새 눈물로 긴긴밤을 지새우게 될 거란 사실을.
못난 자식의 사모곡으로
베갯잇에 흥건히 아로새겨질 날이 가까웠음을.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눈이 오면 눈 맞을 세라 비가 오면 비 젖을 세라
험한 세상 넘어질 세라 사랑 땜에 울먹일 세라.
(나훈아의 '홍시' 가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