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품은 양은냄비.
동춘 서커스단을 아시나?
넓다란 공터에 게르처럼 생긴 알록달록한 돔형 가설무대가 뚝딱 세워져. 짙은 화장을 한 삐에로랑 원숭이, 악단이 나발과 북을 울려대며 연일 요란하게 동네를 행진하면서 흥을 한껏 북돋워. 애 어른 할 것 없이 가장행렬을 뒤따라다니며 당분간은 신바람에 난리가 나는 거야.
박치기왕 김일이 야비한 반칙쟁이 안토니오 이노끼에게 죽도록 얻어터지면서도 천신만고 끝에 죽사발을 내버리는 대역전의 통쾌함, 무쇠다리 차범근이 쪽발이 수비수 열댓 명 사이를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피해 다니면서 작살을 내버릴 때는 온 대한민국이 들썩거렸더랬어. 잊어선 안돼. 박세리, 찬호, 김연아가 있기 전엔 김일이랑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고 외쳤던 7전 8기의 홍수환, 차범근과 동춘 서커스단이 있었다는 사실을.
외발 자전거 묘기, 원숭이 코끼리가 벌이는 신통한 재주들, 굉음을 울리며 원형통 속에서 폭주를 하는 오토바이의 간을 졸이는 공연, 피에로의 마임과 키 작은 소녀들이 펼치는 아크로바틱 한 기예... 시간 가는 줄을 몰랐지.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역시 공중 그네 타기였어. 까마득히 높은 허공에서 줄 하나에 매달려 아슬한 재주넘기를 할 때면 오줌을 질금거리기도 했어.
장내가 쥐 죽은 듯 고요해지면 작은북의 트레몰로가 점차 천정 끝까지 소리를 높여가.
손에 땀이 흥건히 고이고 심장은 미친 듯이 요동을 치지.
날았어. 허공에서 한 바퀴, 두 바퀴...
열두 살의 땡꼬마는 콩만 할 때부터 노래를 귀가 막히게 잘 불렀어. 쪼그만 계집아이가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얼마나 간드러지게 잘 불렀는지 손에서 사탕이랑 아이스케키가 떨어질 날이 없었지.
명절 때나 동네잔치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마을 공터에서는 올겐 하나에 엠프가 딸린 키만 한 스피커가 올려진 오부리 특설 무대가 세워졌어. 마을 어귀에 현수막이 걸리지. 고향 방문을 환영합니다 라면서.
이장 집 치직거리는 스피커에서 저녁에 농협 창고 공터에서 노래자랑이 열릴 예정이니 주민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석하라는 엄포가 쩌렁쩌렁 울려 퍼져.
헤일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동백꽃잎에 새겨진 사연
말 못 할 그 사연을 가슴에 묻고
오늘도 기다리네 동백 아가씨
가신 님은 그 언제 그 어느 날에
외로운 동백꽃 찾아오려나.
(이미자, '동백꽃 아가씨' 가사)
거나하게 취해서 한사코 한 곡만 더 부르고 내려갈 거라고 땡깡을 부리는 아재는 항상 있게 마련이야. 삑사리는 기본이고, 아예 작정을 하고서 인기상을 노리는 음치도 있어.
동네 콩쿠르 대회의 막판은 언제나 개판 오 분 전이었어. 무대 위와 아래는 완전히 따로국밥이 되어 도떼기시장인지 노래자랑 대회인지도 모를 지경이 되어버려. 그 쑥시기판에서 노래는 또 잘도 불러.
한가위 콩쿠르 대회에서도 동네 가수 땡꼬마가 일등을 차지했어. 이미자를 감히 누가 이기겠어.
양재기, 플라스틱 다라이, 양은 냄비를 경품으로 하나씩 들고 집으로 향하는 걸음이 종적을 다할 때 까지도 수런거림은 이어졌지.
밤하늘에 총총 박힌 별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몰라.
아, 땡꼬마는 노래자랑 일등 상품으로 작은 라됴를 받았더랬어.
그럼 골목 담벼락에 붙은 최우수상 16인치 테레비 증정 현수막은 뭐냐구?
다 암시롱.
그땐 그래도 되는 시절이었거든.